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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im Feb 23. 2024

애정하는 나의 아메리칸 조식

나의 아침식사는 바뀌었지만..

어릴 적 아침밥이 먹기 싫을 때마다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내 또래 아이를 부러워했다. 

‘미국에 살면 매일 계란과 맛있는 햄, 베이컨만 먹고살겠지? 아 저 팬케익에 흘러내리는 시럽 봐’ 


먹기 싫은 밥을 억지로 한술 뜨며 온갖 달달한 종류의 잼과 시럽을 경이롭게 쳐다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미국식 아침식사를 참 좋아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한 달에 한 번 호텔을 돌며 조식 뷔페를 갔고 그것이 마치 성공의 상징처럼 생각되었다. 엄마가 학교 가기 전에 억지로 먹인 밥이 아닌 내가 스스로 주체적으로 골라 먹는 식사. 마치 이것이 진정한 어른의 표식인 양 우쭐했다. 


미국에 살게 되면서 아침 식사 걱정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향긋한 커피를 내리고, 빵을 데우고, 사치를 부릴라 치면 감자나 달걀, 소시지, 햄, 베이컨 등을 구우면 되겠지. 다 준비해 봐야 10분이면 충분하다. 그러니 이 얼마나 멋지고 여유로운 아침인가. 

어릴 적 경이롭게 쳐다보았던 그 장면을 매일 연출할 수 있다며 호기롭게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마트에 가서 랜치, 블루치즈, 이탈리안 등 온갖 종류의 샐러드드레싱과 각종 잼을 샀다. 베이글, 식빵, 도넛도 샀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초콜릿 하나도 안 먹었던 내가 어느새 단 것만 찾고 있었다. 설탕의 맛을 알아버린 게다. 분명히 한국에 있을 때 보다 훨씬 잠도 많이 자는데 항상 피곤하고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힘이 부치니 조금이라도 힘을 내려고 또 단 것을 먹었다. 건강은 당연히 나빠졌다. 분명 조금만 먹는데도 살이 쪘다. 살이 찌니 평생 저혈압이던 내가 어느새 고혈압 위험군에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혹시 가족 중에 혈당이 높은 사람이 없냐고 물어보셨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나의 생활을 살펴보았다. 아침에는 잼 바른 빵 하나와 커피, 점심에는 피넛버터 바른 빵, 피자 한 조각을 먹었다. 하루종일 몇 잔을 마시는지 헤아릴 수 없는 커피를 주야장천 마시고 있었다. 그나마 저녁은 제대로 갖춰 먹었지만 소위 말해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고 단당류로 버티고 있었다. 내가 기대했던 여유롭고 건강한 삶이 아니라 지루하고 피곤한 삶이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챙겨 먹기 시작했다. 어릴 적 엄마가 누누이 했던 말. “아침을 잘 먹어야 하루를 잘 보낸다”라는 말을 기억하며 그토록 좋아하던 아메리칸 조식을 끊었다. 쌀을 씻고, 국을 끓였다. 계란탕, 된장찌개, 어묵탕.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지만 최선을 다해 나를 위한 요리를 시작했다. 당연히 토스트 한쪽보다는 시간이 훨씬 더 걸렸지만 정성스럽게 차리는 음식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밥 한 공기, 국, 약간의 밑반찬. 시간을 들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밥의 포만감 때문인지 한식을 먹으니 배도 마음도 든든했다. 직장 내 점심 도시락은 간단한 샌드위치나 피자로 때우더라도 아침만큼은 정성스럽게 나를 대접했다.


엄마의 정성스러운 밥상이 생각났다. ‘엄마는 매일 나와 가족들을 위해 밥상을 차리셨구나’ 이제야 어릴 적 엄마가 왜 그토록 졸린 눈을 비비고 있는 나에게 밥을 먹이려고 하셨는지 알겠다. 지금은 나도 엄마처럼 가족들을 위해 아침 식사를 하루 중 가장 정성스럽게 준비한다. 고단한 하루를 힘내라고. 오늘도 나는 너를 응원한다고.   


건강을 되찾은 나는 여전히 미국식 아침 식사를 애정한다. 아메리칸 조식의 문제가 아니라 음식을 섭취하고 대하는 나의 태도가 문제였음을 이제는 안다. 되도록 단당류는 피하고 평상시 아침은 정성스럽게 한식으로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쯤 남편과 Diner라고 부르는 정통 미국조식 레스토랑에 간다. 가끔 친구들과 브런치 약속을 잡아 로컬 카페 투어도 즐긴다. 달라진 것은 성공의 표식인 양 우쭐대며 먹었던 조식이 아니라, 그냥 아무렇게나 빨리 먹던 조식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과 소중한 시간을 나누는 식사라는 점이다. 


행복을 건강하게 느끼며 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소중한 사람과 맛있는 것을 먹고 나누는 것이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의 아침식사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현대 사회가 과거보다 편리했을지는 모르겠지만 행복을 느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빼앗기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다. 서로의 하루를 응원하며 함께 눈을 마주치고 먹는 아침. 나는 그런 아침식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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