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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im Feb 29. 2024

먹부심으로 애국을 말하면, 나야, 나!

나만의 명절, 절기를 잘 보내는 방법

어느 나라건 스포츠 경기가 애국의 척도인 걸까? 평소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큰 스포츠 경기가 있는 날이면 너도 나도 애국자가 되나 보다. 내 동생, 내 누이가 뛰는 것도 아닌데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기쁨에 환호를 지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큰 세계적인 스포츠 경기가 있는 날이면 나의 애국을 테스트하려는 친구들이 꼭 하나둘씩 있다. 그들은 한국 대표팀과 미국대표팀이 붙을 때마다, 혹은 북한 대표팀과 다른 대표팀이 붙을 때마다 나에게 묻는다. 


“너 오늘 미국팀 응원해? 한국팀 응원해?”

“한국 응원하는데?” 하고 단번에 대답하면 "왜 미국에서 살고 미국에서 돈 벌면서 한국을 응원하냐?"라고 묻는 얄미운 친구들도 개중 꼭 하나씩 있다. 에너지가 충만한 날이면 열심을 다해 설전을 벌였지만 미국에 사는 햇수가 늘어날수록 나도 그냥 웃으며 넘길 때가 많다. 그러니 스포츠 경기가 나를 애국자로 만들기에는 약간 부족함이 있는 듯하다.


애국을 논하기에는 좀 부족 하지만 그나마 내가 한국인으로 가장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한국 명절과 절기를 잘 지키는 일이다. 외국에 살면 대부분 명절을 잊는 사람이 태반이지만 나는 명절을 꼭 챙긴다. 나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외국 생활 초창기, 나에게 명절은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잊지 말고 안부를 전해야 하는 의무의 날이었다. 그때마다 “떡국은 먹었니? 송편은 먹었냐?”물어보는 엄마의 관심과 기대에 대한 부응으로 하나 둘 명절 음식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명절 음식 만들기는 이제 1년 중 특별한 이벤트가 되었고, 어느새 나는 명절에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 되었다. 한마디로 나의 먹부심이 나를 명절 지킴이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명절에 적극적이 된 데에는 한국학교 아이들이 큰 몫을 차지했다. 몇 년 전부터 주말에 한국학교를 운영하면서 아이들에게 전통 음식을 알려주는 수업을 하고 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이 시간을 참 좋아한다. 학기말마다 어느 활동이 가장 재미있냐고  질문하면 매년 1등을 차지하는 것이 명절 음식 만들기다. 삐뚤빼뚤 모양은 이상하지만 고사리손으로 직접 음식을 만드는 아이들은 꼭 이런 질문을 한다. 


“선생님, 동생 갖다 줘도 돼요? 선생님, 이거 엄마 갖다 줘도 돼요?”

큰 소리로 물어보는 아이도 있고 본인의 분량을 먹지 않고 참다가 가만히 싸 가는 아이도 있다. 사랑하는 가족과 나눠 먹으려는 아이들의 마음을 보면서 음식의 힘이란 실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 전통 음식의 유래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나눔이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있다. 여러 끼니 분의 쌀을 갈아 함께 떡을 만들어 나눠 먹는 것에서 유래한 설날 떡국은 과거 문헌에 아예‘음복(飮福)이라 명시되어 있는데 이는 가족들이 모여 복을 먹는다는 뜻이다. 이때 음복은 왕가에서부터 서민까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해당된다. 이뿐이랴, 음식을 만드는 과정도 함께하는 나눔이다. 추석이면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송편을 빚고, 전을 부친다. 현대에 들어서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며느리와 여자들만 고생하는 변질된 모습도 보이지만 원래는 온 가족들이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먹는 것까지 모두 함께 즐기는 것이 핵심이다.


이렇듯 아이들과 함께 명절 음식의 유래와 의미를 공부하다 보니 원래도 맛있게 먹던 명절 음식이 더더욱 맛났다. 그러니 매년 진심을 다할 수밖에. 나는 매년 새해가 되면 새해 다짐을 적는 것과 함께 명절이 언제인지 달력부터 살펴본다.


설에는 한복을 입고 떡국을 먹는다. 정월대보름에는 부럼을 깨고 오곡밥을 만들어 먹는다. 추석엔 송편을 먹고, 한식에는 화전을 부치거나 꽃차나 꽃떡을 먹는다. 단오에는 절편을 먹고 동지에는 팥죽을 먹는다. 


한국에 있는 친구는 이런 날 보며 “요새 한국에서도 그렇게 안 챙겨 먹어. 너 알고 보면 미국 아니고 청학동에 사는 거 아니야?”라고 놀리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속으로 생각한다.  

‘즐겁게 나누는 음식의 즐거움을 알고 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나는 오늘도 고민한다. 어떻게 더 예쁜 화전을 만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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