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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im Mar 07. 2024

스팸어랏!

만날수록 웃는 사람이면 좋겠네 

약 10년 전 스팸 모양의 옷을 입은 원탁의 기사가 “인생 뭐 있나요. 웃어봐요”라고 외치며 아무 생각 없이 웃게 했던 뮤지컬이 있었다. ‘스팸어랏’ 당시 미달이 아빠로 유명한 박영규 배우님과 개인적으로 코믹연기의 대가로 여겨지는 정상훈 씨가 출연해 즐겁게 본 기억이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인 '스팸어랏'은 쓸데없는 것을 뜻하는 ‘스팸’에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의 주거지인 ‘캐멀럿’을 합친 스패멀럿의 발음을 스팸이 많다는 뜻(Spam a lot)의 유사발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아서왕과 오합지졸 다섯 기사가 성배를 찾아 떠나는 여정으로 극이 시작하는데 제목과 동음인 스팸 광고가 적절히 붙었던 뮤지컬로 기억한다. 한마디로 대놓고 광고해도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명절에 스팸선물세트가 들어오길 바랄 만큼 스팸 반찬을 좋아했던 터라 이 작품을 보면서 제목 그대로 ‘많을수록 좋지’ 하고 생각했더랬다. 반찬이 없을 때 아무 생각 없이 흰쌀밥에 스팸 하나 구우면 반찬 걱정 끝! 아니던가. 


미국에 처음 와서 좋아하던 스팸의 지위가 높지 않다는 사실에 의아했다. 미국에서 스팸은 정크푸드로 저급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 의문이 풀린 것은 스팸을 먹는 미국 친구를 본 이후이다.


“너 뭐 먹어?” 

“스팸 먹잖아. 너네 나라는 스팸 없어?” 

“그걸 그냥 먹는다고?” 

친구의 통조림을 따서 바로 퍼 먹는 모습을 보고 나는 경악했다. 친구는 그런 날 보며, 

“이건 통조림 음식이야. 원래 요리 없이 바로 뜯어서 먹으라고 만든 음식이라고! 대공황 때 오래 먹을 수 있는 돼지고기 통조림을 개발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생겨난 거지. 전쟁에서 구호품으로 군인들에게 나눠줬으니 이렇게 먹는 게 맞아”


그건 나도 안다. 우리나라 대표 스팸요리인 부대찌개가 생겨난 것이 미군들이 보급한 햄에 의해서이니까. 역사야 어쨌든 나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도, 시도하고 싶지도 않은 취식법이다.


나는 스팸 요리를 검색했다. 스팸과 감자로만 이루어진 스팸고추장찌개. 스팸 김치찌개, 스팸샌드위치, 고슬고슬 스팸볶음밥, 스팸마요덮밥, 스팸김밥, 스팸계란말이, 스팸양파볶음....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저걸 그냥 저렇게 퍼먹는단 말인가. 나는 친구에게 우리나라의 다양한 스팸 요리법을 보여주며 "미국이 처음 스팸을 고안했을지라도 그 가치를 제대로 발견한 건 음식에 진심인 한국인"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비록 친구는 그렇게 귀찮게 요리할거면 뭐하러 통조림을 먹냐고 했지만..


며칠 전 반찬이 없어서 뭘 해 먹을까 고민하다가 SNS에서 자주 보았던 편스토랑 어남 류수영 님의 스팸덮밥을 해 먹었다. 레시피를 다시 보려고 스팸 요리법을 찾다 보니 예전과 달리 전 세계 많은 이들이 다양한 스팸 활용 요리법을 나누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어남 류수영 님의 스팸스파게티처럼 한국, 아시아 요리를 넘어 스팸 토티아, 브리또, 타코 등 서양 요리에도 스팸을 활용한 다양한 레시피들이 많았다. 한국인이 창의적이라 스팸을 활용한 요리가 많은 줄 알았는데 어쩌면 음식을 처음 접한 자세가 달라서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초의 '스팸'은 1937년 미국의 ‘호멜 식품’에서 군인들을 위한 전쟁구호품으로 개발된 진공 통조림이다. 즉, 군인 한 명당 지급되는 기본값이 1인을 위한 보급품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이 보급품이 너무 넘쳐나, 미국에서는 흔한 싸구려 음식이 되었다. 그에 비해 먹을 것이 부족했던 우리는 미군들에게 받아 온 것을 가족이 나눠먹기 위해 함께 먹는 음식으로 만들었다. 1인분이 아닌 가족 모두를 위한 음식의 주재료로 사용된 것이다. '기본값이 다르니 쓰임새도 달라진 게 아닐까?' 하는 게 최근, 든 생각이다. 기본값이 다른 우리가 생산국보다 먼저 무궁무진한 레시피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하는... (물론, 나는 아직까지 맛조합만큼은 한국인이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긴 하다.) 


생각해 보면 한식 자체가 그렇다. 나만을 위한 것이기보다 함께 먹는 음식이 많다. 찌개를 한 상에 놓고 둘러앉아 먹는다. 음식을 만드는 방법도 그렇다. 한 가지 재료가 아니라 많은 재료들이 어울린다. 비빔밥, 잡채, 볶음밥, 구절판...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서 만들어지는 음식이 많다. 음식에 정답도 없다. 그렇기에 어떤 재료든 어떤 모습이든 한식은 범위가 무궁무진해진다. 


스팸덮밥을 한 술 뜨다가 예상보다도 훨씬 맛있어서 문득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어디에서든 조화롭게 이룰 수 있는 사람. 어디에서든 누구든 새롭게 만들어 가는 사람. 만나서 더 좋은 사람. 만날수록 좋은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의 기본값을 생각한다.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나 혼자 잘 사려고 하는 게 아니라 모두 함께 잘 되려는 자세의 기본값을. 


스팸덮밥을 만들어 먹고 남은 걸로 다음 날 전골냄비에 고춧가루를 풀고 냉장고에 남아있는 김치와 채소 몇 가지에 스팸을 잔뜩 넣어 끓였다. 보글보글 끓는 냄비에서 스팸을 집어 쌀밥 한 술과 함께 입안에 가득 떠 넣는다. "역시 이 맛이야!" 웃음이 난다. 먹을수록, 만날수록 웃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자~웃어봐요! 스팸어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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