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운전대를 잡는 이유
새벽 6시,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이지만 출발을 서두른다. 준비물은 필요 없다. 그저 잘 먹으려는 마음과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배만 있으면 된다. ‘그 정도는 언제든 준비되어 있지’하며 운전대를 잡는다. 이제부터 4시간. 중간에 잠시 휴게소에 들르는 시간을 빼면 얼추 목적지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다.
남편과 내가 탐방할 집은 냉면집이다. 집에서부터 370km 떨어진 뉴저지에 있는 함흥냉면집. 주변에 맛있는 냉면을 파는 곳이 없어서 불만이던 차에 맛있는 냉면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냉면 먹으로 거기까지 간다고? 어디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단지 먹으러?”
평소 아무리 맛집이라도 줄 같은 건 절대 서지 않는 남편과 나를 알기에 지인들은 놀래며 말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말이 있듯이 그만큼 제대로 된 냉면이 너무 먹고 싶었다.
어쨌건 이날의 코스는 냉면집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도착해서 냉면을 먹고, 중간에 치즈 돈가스를 먹고, 허드슨 강가에서 뉴욕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을 하고, 일본마켓에 가서 식재료와 다이소에 가서 필요한 것도 사고, 마지막으로 집에 가기 전에 회를 먹고 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먹방 여행. 우리의 목적은 오로지 먹는 것이고 잘 먹는 것만이 우리의 목표이다. 그렇게 4시간여를 달려 냉면집에 도착했다. 문 열기까지 5분여 남았다. 오랜 운전 때문인지 실망하지 않길 바라며 냉면집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드디어 입성.
나는 비빔냉면, 남편은 물냉면을 시킨다. 나오는 육수 맛이 일단 좋다. 우리 동네는 죄다 시판 냉면을 팔아서 제대로 된 냉면을 먹고 싶던 차에 육수가 나오다니.. 그걸로 난 일단 만족이다. 내친김에 수육과 새우만두까지 시킨다. 자작자작 국물과 함께 얇게 썬 수육이 한 무더기의 파와 함께 나온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
“아 역시 난 비빔냉면을 시키길 잘했어. 수육랑 아주 잘 어울리네” 맛있지만 여기서 배가 다 차면 안 되니까, 남은 냉면을 싸가겠다고 한다. 주인아저씨는 “싸가면 불어서 이 맛이 안 나는데.. 맛없어도 장담 못해요”라고 하셨다. 냉면집을 나와 돈가스에 야무지게 회까지 먹고 다시 4시간 운전해 밤 12시가 다 되어 집에 도착한 나는 불어 터진 냉면을 또 먹었다. '불어도 맛만 좋네'라면서..
이후로 나는 종종 먹방 여행을 즐긴다. 전미에서 한인들이 많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지역에 살고 있음에도 항상 성에 차지 않는 메뉴들이 있다. 예를 들어 뼈째회는 이쪽까지 오지 않고, 각 주(State)에 따라 규정이 달라 숯불구이는 먹을 수가 없다. 그래서 냉면, 회, 곱창, 조개구이 등을 먹으러 계획적으로, 때로는 무작정 당일치기 먹방 드라이빙을 한다. 처음 갔던 냉면집은 주인이 바뀌어 예전만큼 감동의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더 고국의 맛볼 수 있는 식당을 찾아 4시간씩 달려간다. 이따금씩 뉴욕을 가기도 하고, 마약떡볶이를 먹으러 3시간 비행기를 타고 LA도 갔다 왔다.
때때로 ‘이 정도로 음식에 진심이면 이사를 가야 하나?’하고 생각하다 ‘한국에서 사는게 최고지’ 하고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온다. ‘남들은 미국에 오래 사니 이제는 한국보다 더 편하고 친숙하다고 미국이 제2의 고향이라고 하는데, 나는 왜 10년을 살아도 아직도 이럴까’ 한숨을 내쉰다.
그러다 요즘 읽고 있는 ‘율리시스’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를 떠올린다. 제임스 조이스는 고국을 떠나서야 더블린의 골목 하나하나 생생히 살아있도록 만들어 낸 '더블린 이야기'와 '율리시스'를 썼지. 제임스 조이스는 글을 씀으로 뿌리를 기억했다면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나의 뿌리를 더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거라고.
어릴 적 누가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냉면’이라고 대답해 부모님은 무슨 날이면 꼭 냉면을 사주셨다. 대학에 들어가 술을 먹을 수 있게 된 이후로 친구 누구든 연애가 잘되는 날은 축하한다고 안 되는 날은 위로한다고 곱창에 소주를 즐겼다. 삼면이 바다인 조그마한 나라에 살아서 어디를 놀러 가든 다양한 해산물을 다양한 방법으로 먹었다. 이런 작은 일상들이 그리운 날이면 나는 그리운 이들에게 달려가는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는다. 370km 그까짓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