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악어야 Aug 22. 2023

23살 아니 21살,  저는 시골에 살아요

: 제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나는 시골 어느 조용한 마을 끝자락에 살고 있다."


조용하다는 마을과는 달리 나는 천진난만하고, 파워레인저에서 항상 빨간색을 좋아하는 센터병까지 있던 아이였다. 더군다나 운도 좋았는지 넓은 마당 시골에서 늘 부모님과 함께 있을 수 있어 자유롭게 지냈다. (도예가 부모님 작업실이 집에 있어서 부모님은 늘 집에 계셨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에서도 떠들다 아쉬웠는지 매일같이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 순풍산부인과 '미달이' 마냥 조용한 우리 동네에서 가장 시끌벅적하게 놀았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 아빠는 시끄럽고 정신없었을 텐데 어떻게 매번 허락했나 몰라.) 네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지만 늦둥이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막내였다. 그래서 조금 더 철없게 씩씩거렸나 싶기도 하다. (MBTI가 유행하고 식구가 다 검사를 해보니 6명 중 나만 E였다. 놀라운 일.)



내가 어느 정도였냐면...


- 9살 때 11살이던 둘째 언니가 두 발 자전거 타는 걸 보고 너무 부러워서 언니가 학원에 갔을 때 저녁까지 언니 몰래 마당에서 피가 철철 나도록 넘어져가며 하루만에 자전거를 마스터했다.

- 10살 때는 자전거 좀 탈 줄 안다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 조절 실패로 이웃집 할머니 밭두렁에 엎어진 적도 있었다.

- 11살 때는 생일파티를 한답시고 엄마한테 친구 좀 집에 데려온다 말만 한 채로 반 친구를 모두 데리고 온 적도 있었다. (엄마 아빠는 그날을 어떻게 기억할까? 물어봐야겠다.)

- 꾸준히 공부방도 다녔는데, 수업 끝나고 그냥 집에 와서 학원 가기 싫은 날 당당하게 가지 않겠다 선언하고 집에서 논 적도 있다. ( 크게 혼내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인지 꽤나 잘 다닌 것 같기도 하다. 엄마가 꼭 스스로 학원 선생님께 말하라고 했지만, 나는 늘 엄마 휴대폰으로 '선생님, 오늘 집에 일이 생겨 학원 보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보냈다. 참고로, 버스 시간이 많이 없어서 늘 부모님이 태워주셨기에 가능한 핑계였다..)

글을 쓰다가 사남매를 그려봤는데 오목조목 조금은 귀여운 것 같기도 하다




지금도 어리다면 어리겠지만, 고등학생 때까지도 잘 몰랐다. 주어진 환경이 얼마나 특별하고 다른 것인지 성인이 되어서야 느꼈다. 시골에서 산다고 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니었다. 제일 특별한 건 늘 부모님이 집에 계셨다는 것.


나에게 집은 안식처다. 늘 돌아와도 변하지 않는 곳. 그리고 언니들이 있고 어린 동생도 있다. 학교를 마칠 때쯤이면 아빠가 작업을 하고 엄마가 요리를 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꼭 그 옆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조잘조잘 떠들었다.





자랑을 조금 더 해보자면 우리집은 따스하다는 것. 그 따스함이 느껴진다면 정확하게 사진을 본 것 같다



따스한 햇살, 줄지어 있는 커다란 벚나무들, 그 아래 집을 둘러싸고 있는 개나리, 가꿔진 여러 꽃들, 지금은 사라진 앵두나무, 집 옆을 지키는 밤나무, 감나무, 매실나무 등 다양한 식물들 속에서 자랐다. 도시에서 사는 친구들 집에 놀러 간 적도 많았지만 내가 자란 환경에 한 번도 불만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시골에 살았어도 도시로 자주 나가기도 해서 시끌벅적한 걸 좋아하는 나는 오고 감에 충분히 만족했다.



부모님은 꼭 우리에게 1년에 1번 이상 뮤지컬, 오케스트라 공연, 합창단 공연, 미술전시, 유물 전시 등을 보여주셨다. 적어도 크면서 부족함을 느껴본 적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네 남매에게 부모님이 최선을 다해주셨다. (지금 와서 부모님은 힘들었다고 말씀해 주시지만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으셨을까.)


모든 게 자유로웠다.







"그녀의 이중생활 : 시골 속의 ‘삶' vs 도시 속의 삶"


: 패션 러버는 도시가 좋다더라!


또 하나의 사실을 말하자면 난 시골에 살면서도 꾸미기를 너무 좋아해서 꾸준히 공들인 결과, 이제 '패션'은 나와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동시에 나는 꿈이 있다. 무엇인지는 우리가 조금 더 친근해진다면 그 주제로 이야기해볼까 싶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을 하며 달려가야겠다는 생각에 나의 악착같은 성격 모먼트가 더해져서 나름 열심히 학창 시절을 보냈다. 더 큰 세상을 꿈꾸며 나아가기를 시작했다.


대학을 위해 집에서 나와 큰언니와 함께 4년째 살고 있다. 한 학기를 남겨두고 난 다시 시골로 돌아가려고 한다. 왜냐고? 난 집이 너무 좋으니까! 그리고 그 속에서의 스스로도 찾고 삶도 최대한 많이 담아보려고 한다. 나름 도시라이프도 내 맘에 쏙 들긴 했다. (패션에 대한 소식이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많은 도시도 너무 좋다.) 아, 물론 1과목을 듣기 위해 학교에 통.학 해볼 예정이다.(이 정도라면 충분한 밸런스인 것 같다.)



 행운의 주황 모먼트를 부끄럽지만 꺼내 봤다!



도시에서 느낀 건 패션은 도시에서 자유롭다는 말이 맞다. 자기만족이지만 그 정보를 공유할 때,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 즉, 누군가가 '은근히 멋 부렸다!'라고 느껴줄 때 뿌듯함이 큰 것 같다. (부담스럽다고 하면서도 다들 예쁘게 입었다는 소리 들으면 기분 좋지 않은가?) 취업에 성공한다면 도시생활을 해야하겠지만, 난 여전히 시골라이프가 좋다.



: 사실 진짜 내가 힘들었던 것은


두드러지는 주제가 있듯, 내가 힘들었던 건 시골에서의 내 모습과 도시 속 내 모습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도시에서는 남들이 왜 항상 바쁘냐고 물어볼 정도로 바쁜 하루를 보냈다. 열심히 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강렬하게 느껴서일까.  아침 지하철, 출퇴근 버스 안, 학교만 있어도 다양한 사람들이 제각기 있었다. (물론 시골에서도 저마다 열심히 살고 부모님도 정말 힘들게 작업하지만 경쟁이 치열하다는 느낌을 처음 받아본 것은 도시였달까.) 원래 하고자 하는 것들에 욕심이 강하다. 시너지 효과가 난건지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더군다나 잘 적응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2년이 지난 어느 순간, 2주 이상 여유롭게 쉬는 것에 겁을 먹고 나태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계속 무언가를 찾아서 끊임없이 도전하려고 했다. 심지어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매일을 3~4시간씩 자면서 몸을 해치면서까지 여러 활동들을 동시에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성향은 숨길 수 없는건지 친구들 만나기는 기똥차게 좋아해서 소통하는 일도 많았다.) 괜히 '바쁜 현대인의 삶'이라는 말이 나온 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이런 내가 시골집만 가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함을 느낀다. 집이 안식처여서 그런걸까. 학창 시절 왈가닥했던 예전과는 다르게 집에 가면 겨울잠을 자듯 연락을 자주 하지도 친구들을 잘 만나지도 않는다. 어쩌면 여유와 '쉼'을 원하는 나의 본능인건지도 모르겠다. 이전에는 이러한 알 수 없는 이중생활에 별다른 생각 없이 지냈다. 원하는 목표가 있고 나는 당당했기 때문에 집에 있을 때 분명하게 쉬고 간다면 다시 달려도 뭐든 것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점점 더 새롭고 다채로운 삶을 살아온 누군가를 마주칠 때면 작아지기도 했다.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느덧 흩어져 있던 마음들이 '취업의 길' 앞에서 오만가지 생각으로 뭉치면서 나를 마주해 버렸다. 고민이 많은 방학을 보내면서 끝자락에 내가 얻은 것은 '스스로'를 알지 못하면 그 누구도 자신할 수 없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이야기는 오로지 나만 온전히 그 감정으로 전달할 수 있고, 진짜 원하는 것은 내가 나에게 집중할 때 알 수 있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느꼈다. 그래서 난 스스로에게 더 집중해 보려고 한다. 어디서? 부모님과 함께 시골집에서! 작가로서의 삶을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는 데에는 대단한 열정과 끈기와 인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대단한 사람이 가까이 있는데 멀리 가서 느낄 아유가 뭐가 있을까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무슨 일이든 해야 하니까 하는 일 말고 내가 진짜 원하고 잘하는 일이 있는지 그걸 정말 행복해하는지 알고 싶다.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지만 행복하게 사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 소리쳐 본다. 어쩌면 이 기록이 정말 사소할지도 모르지만 그만큼의 의미를 느낀다면 어느 순간 나에게 큰 변화가 올 것만 같다. 며칠 전 수강했던 교육에서 지금까지의 본인 인생에서 터닝포인트는 언제인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당당하게 올해 여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각자의 이야기에는 각자의 강점이 묻어나더라'




"그래서 내가 이 글을 왜 쓰냐고?"


살아온 삶도 다르고 나아갈 방향도 다를 수 있지만 결국 "어쩌면 색다를, 어쩌면 공감될 나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에게 집중해보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혼자만의 기록으로 남기는 것보다 같이 성장하는 것이 젊은 내가 선택한 길이다. 때로는 나도 위로받고 응원받고 또 변화했다고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표현하고 드러낼수록 꼭 나중에는 좋게 되어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내 인생곡은 ‘말하는 대로’이다.)


횡설수설 기록지였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의 이 모든 삶의 기반이 되어준 예술 작가로서도, 부모로서도 너무 존경하고 사랑하는 도예가 부모님의 이야기까지도 전달하고자 한다. (세상 누구든 나 자신을 이야기할 때 가족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든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2023.08.21    날씨 맑음     기록 : 악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