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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야 Aug 29. 2023

ep.2 결론은 항상 다큐보다는 코믹이었다.

잔잔하고 조용한 담양에서 맞이한 두 번째 여행


고래 타고 다니는 '울산'에서 산 나는 비교적 따뜻한 날씨 때문에 쌓인 눈을 볼 일이 정말 없다. (이참에 고래 면허증이라도 발급해야 할까 봐 싶다. 심지어 난 바다도 아니고 산 가까이 사는데!)


2022년 2월 23일 수요일,

2021년 한 해의 끝부터 2022년 새 해의 시작까지의 겨울을 보냈지만 처음으로 눈을 본 날이었다.


이렇게 적어두니 엄청 많은 눈을 봤다고 생각할까 봐 말하자면...


백팩을 나란히 줄지어 5개 정도만큼... 쌓여있던 것이었다. (그것도 심지어 산 아래여서 녹지 않고 남아있는...) 사소한 기억이지만 나는 눈을 봤다며 정말 기뻤기에 해가 지나도록 기억에 남는 것 아닐까 싶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OO아, 나 올해 눈 처음 본다!"

"풉"

"푸웁?"


청주에서 지낸 친구는 눈을 너무 많이 봐서 지겹다고 했다. 그래 좋겠다. 증말.


이렇게 대화를 하면서 깔깔거리고 있었는데, 택시 아저씨가 우리에게 말을 거셨다.


"부산에서 왔어요?"

"?!"

"어디 가서 아니라고 하지 마세요~"

"그렇게 티가 나나요...?"


전라도 사투리... 도 거의 안 쓰시는 아저씨가 한 번에 캐치할 정도로 어투가 심했던가. 또 깔깔거리다가 택시 아저씨가 가실 때 학생들 좋은 여행 하라며 인사도 해주셨다.


숙소에 도착했는데, 너무 예뻤다.


이번 여행에서 '힐링'을 주제로 정한 만큼, 숙소 선정에 꽤나 고심했다. 감성 숙소를 무조건 가자며, 숙소에서 재밌게 놀자고 다짐했다.


이렇게 감성적으로 세팅까지 해두셨는데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내가 참을 수가 있던가.


너무 예쁜 숙소였다. 한 채 한 채 따로 구성된 민박 형태였는데, 그래서 너무 좋았다.


사실 창문을 열었을 때 보이는 뷰가 예쁘고 너른 마당을 가진 숙소였는데, 우리는 깜깜한 저녁에 입실해서 뷰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 (사실 산을 보는 것은 나에게 너무 익숙한 뷰여서 숙소 밖의 모습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란히 걸어둔 옷을 보는데 흐뭇했다.



"야.. 너무 예쁘다.. 숙소 인테리어의 따뜻한 색감이 너무 좋아..."

"그래. 근데 사진 다 찍었지?"

"그래그래. 빨리 먹자."


옷부터 편하게 갈아입은 우리는, 주방에 있는 조리 도구를 둘러보고는 자연스러운 역할 분담으로 친구는 장본 것들을 넣어두고 나는 밀키트로 쭈꾸미 볶음을 조리했다.


야무지게 쌈까지 사서는 와구와구 먹다가...


"이거 2-3인분 맞아..?"

"아닌 것 같은데..?"


숙소 리뷰들 중 배달 오는 치킨 집이 하나 있다는 것이 떠오른 우리는...


"치킨... 시킬까..?"


꽤나 가격대가 있었지만 여행 와서 배고플 수는 없으니까... 결국은 다 먹지 못한 치킨을 앞에 두고는


"좀 쉬자. 진짜 배가 터질 것 같아."


깔깔깔


뭐가 그렇게 웃겼는지 갑자기 서로의 얼굴을 보고는 빵 터졌다.


그러다가 친구가 동영상을 켜더니 갑자기 요즘 유행하는 릴스(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하는 쇼츠 콘텐츠)를 따라 하자며 어디에도 공유하지 않을 우리만의 릴스 챌린지가 시작되었다.


진짜 너무 웃어서 배가 찢어질 듯 아프다는 말이 뭔지 아는가?

우리의 인권 보호를 위해 코딱지 크기로만 보여준다.



공유하지 않을 건데도 이렇게 열심히 정말 크리에이터처럼 진지하게 찍었는데, 그 상황조차도 너무 웃겨서 정말 어느 때보다도 힘이 들었다.


우리도 오랜만에 만났기에 처음에는 진지하게 속얘기도 나누고 숙소에 빔프로젝트도 있어서 영화도 보자며 뭐 볼지 생각도 했었는데, 결국은 다큐보다 코믹인지 저러다가 지쳐서 씻고 누웠다.


"근데 진짜 재밌다."

"누우니까 나른하니 참 좋구먼.."

"그러니까. 1박 2일 짧게 와서 지금 겨우 숙소에 왔는데도 이렇게 재밌는 게 너무 웃겨. OO아 너랑 같이 와서 진짜 좋다. 내일도 진짜 기대되는데 내일 체크아웃 몇 시더라?"

"..."

"그래.. 잘 자라..."


결국은 나의 따뜻한 감성 돋는 말도 못 듣고 자버린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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