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그리고 수원삼성에 ‘입덕’한 첫 만남의 시기
내가 사랑하는 팀은 우연을 통해 내 삶에 들어와 일상을 바꿔버렸다.
해외 출장 이틀 전에야 짐을 챙기기 시작하며 쿠팡 멤버십을 가입했다. 부질없는 구독 서비스를 없애고 지출을 줄이려는 직장인답게 무료 이용 기간동안만 쓰려고 했지만, 해지를 깜빡해버려 자동 연장이 되어버렸다. 그 즈음에 직관메이트가 (*직관: 중계가 아닌 현장에서 스포츠를 직접 관람하는 것. 이후 직관메이트는 나와 거의 모든 직관에 동행했다) K리그 이야기를 꺼냈다. 작년에 고향인 대전 팀이 1부리그로 승격했다며 자축했던 그는 중계를 보고 싶어했다. 마침 어쩔 수 없이 연장된 멤버십에서 쿠팡플레이를 볼 수 있었고, 쿠팡플레이는 2023년부터 중계권을 가졌기에 나는 기꺼이 직관메이트에게 쿠팡플레이로 K리그 중계를 틀어주었다. 이렇게 우연과 우연이 겹치면서 K리그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서울의 중앙에서 생생하게 겪었던 2002년 월드컵의 기억 덕분에 성인 국가대표팀의 경기는 최소 기사로라도 챙겨보는 수준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회사에서 사람에 치이는 것도 모자라서, 집에서까지 그런 프로그램을 보고 싶진 않았다. 쏟아지는 연애와 관찰예능을 싫어하는 내게 한 주에 열두 팀 간의 여섯 경기가 정기적으로 업로드되는 K리그 경기들을 보는 것은 꽤 괜찮았다. 리그에 어떤 팀들이 있고, 서로 어떤 관계이고, 어떤 감독들과 어떤 선수들이 있으며 그들이 어떤 경기를 하는지를 물어보고 찾아가며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중계로 처음 봤던 경기는 도합 여덟 골이나 터졌던 수원 FC와 대전하나시티즌의 6라운드 경기였다. 대전의 패배에 시무룩해진 직관메이트 옆에서 리그 경기를 처음 본 나는 일단 점수가 많이 나는 경기를 재밌어했다. 때마침 주말에 별다른 일정도 없던 나는 직관메이트의 수원 FC 경기 직관 제안을 받아들여 FC 서울과의 경기장에 야심차게 출격했다. 하지만 중계 해설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선수들과 공의 움직임을 쫓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선수들 대부분은 낯선 이름들이라 잘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이름을 눈으로 쫓아다니는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이 와중에 해설 없이 혼자 흐름을 읽는 것은 불가능해서, 경기는 중계로 볼 때 보다 재미가 없었다. 4월 말에 어울리지 않게 추웠던 날씨와 패배로 인해 경기장의 분위기는 달아오르지 않았다. 이날 걸려온 감기를 핑계로 다시 집에서 중계만 보는 '집관'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경기의 잔상은 어딘가에 남아 있었기에, 나는 계속해서 직관메이트와 다음 경기를 기다리며 K리그의 세계로 더 깊이 들어서고 있었다.
2023년의 수원삼성블루윙즈는 리그의 제왕이던 찬란한 과거가 무색하도록 끝없이 추락하는 중이었다. 수원은 11라운드가 되어서야 3월의 리그 개막전 이후 처음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마자 옐로카드 여덟 장을 받아내면서 필사적으로 버틴 그들은 경기 종료 휘슬과 함께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악착같이 버텼던 시간만큼 거친 숨을 몰아쉬는 선수들과 빗물과 눈물로 뒤덮인 얼굴로 그들을 응원하던 팬들, 그리고 이제 떠나갈 감독대행과 이제부터 시작인 신임 감독의 표정들이 그 순간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상하게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들이 너무 짠해 보여서 그들이 이런저런 일 끝에 0:3으로 대패를 당했던 다음 경기도 여전히 안쓰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렇게 우연히 시작된 수원의 중계를 지켜보는 날들은 제법 길게 유지되었다. 직관메이트는 내게 그렇게 수원이 궁금하면 가보자고 이야기했다. 수원의 홈 경기장인 수원월드컵경기장도 집에서 가까웠고, 마침 며칠 후에는 리그컵(FA컵) 경기가 있을 예정이었다. 오후에 예매하고 저녁에 찾은 낯선 경기장에서 두리번거리며 푸드트럭에서 소떡소떡 꼬치와 츄러스를 사들고 본부석인 W석으로 향했다. 나름 수원의 팀 컬러인 블루에 맞추려고 하늘색 셔츠를 골라 입고간 뉴비는 운 좋게도 빅버드에서의 2023년 첫 승리와 김주찬 선수의 프로 데뷔골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선수들보다 벤치의 김병수 감독과 N석(응원석)의 서포터들을 더 많이 봤다. 아시아를 호령했었던 과거가 무색하게 이제는 최후의 선고만 남은 팀에 자원해서 부임하고 그 책임의 무게를 짊어진 감독의 뒷모습은 결코 초라하지 않았다. 이제 고작 한 번 이긴 팀을 위해 팬들은 90분이 넘는 시간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응원했다. 가능성과 이득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그 순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그들이 쏟아내는 감정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나를 휩쓸었다. 직장인으로서 쌓아올린 이성의 껍질이 그들의 열정에 부서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2023년의 수원삼성블루윙즈는 리그의 제왕이던 찬란한 과거가 무색하도록 끝없이 추락하는 중이었다. 수원은 11라운드가 되어서야 3월의 리그 개막전 이후 처음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마자 옐로카드 여덟 장을 받아내면서 필사적으로 버틴 그들이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악착같이 버텼던 시간만큼 거친 숨을 몰아쉬는 선수들과 빗물과 눈물로 뒤덮인 얼굴로 그들을 응원하던 팬들, 그리고 이제 떠나갈 감독대행과 이제부터 시작인 신임 감독의 표정들이 그 순간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상하게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들이 너무 짠해 보여서 그들이 이런저런 일 끝에 0:3으로 대패를 당했던 다음 경기도 여전히 안쓰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렇게 우연히 시작된 수원의 중계를 지켜보는 날들이 습관처럼 이어졌다. 직관메이트는 내게 그렇게 수원이 궁금하면 경기장에 가보자고 했다. 마침 주중에 리그컵(FA컵) 경기가 있었다. 오후에 예매하고 저녁에 찾은 낯선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두리번거리며 푸드트럭에서 소떡소떡 꼬치와 츄러스를 사들고 본부석인 W석으로 향했다. 수원의 팀 컬러인 블루에 맞추고자 입은 하늘색 셔츠의 뉴비는 운 좋게도 2023년 홈 경기장에서의 첫 승리와 김주찬 선수의 프로 데뷔골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 시선은 선수들보다 벤치의 김병수 감독과 N석(응원석)의 팬들에게 머물렀다. 이제는 몰락해서 최후의 선고만 남은 팀에 자원해서 부임한 감독의 뒷모습에는 단 한 점의 초라함도 없었다. 이제 고작 한 번 이긴 팀을 위해 팬들은 90분이 넘는 시간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응원했다. 가능성과 이득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그 순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그들이 쏟아내는 감정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나를 휩쓸었다. 직장인으로서 쌓아올린 이성의 껍질이 그들의 열정으로 인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연애로 발전할 수 있는 말들 중 하나는 '이상해, 이해할 수 없어'라는 표현이었다. 이상해, 걔가 귀엽게 보이더라, 예뻐 보이더라, 같은. 나 역시 그렇게 이상해서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 덕분에 계속해서 빅버드로 향했다. 새로 나왔다는 유니폼을 사보고 싶어서 팬스토어 오픈 시간에 맞춰 일찍 경기장으로 향했던 나는 길게 늘어선 줄에 기함하며 대기번호 390번을 받아 들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내 차례가 왔을 때는 이미 상당수가 매진되어서 선택의 여지 없이 고승범 선수와 정승원 선수의 유니폼을 구매했다. 유니폼을 받아 들고 나서야 그들이 누군지를 직관메이트에게 물어볼 정도로 잘 모르던 때였다. 필드 위에서 우리가 입은 유니폼의 주인들을 열심히 찾아다니던 동안 경기는 패배로 끝나버렸다. 또다시 찾아간 다음 경기에서는 성실하게 수비하던 골키퍼와 열심히 뛰어다니던 고승범 선수가 상대 선수들 때문에 부상을 당한 끝에 또 패배했다. 패배가 쌓일수록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7월에도 다시 빅버드를 찾았다. 이번에는 여름 이적시장에서 합류했던 카즈키 선수의 유려한 플레이와 유의미한 슈팅들이 나오는 개선된 경기력에 주변에서 감탄이 나오기 시작했다. 전통의 명가인 포항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고 능숙하게 선수들을 지휘하는 김병수 감독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서 다음 라운드 울산전을 예매했다. 아니, 했었다. 그 한 주 사이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직관메이트의 아무래도 경기장에 못 갈 것 같다는 말에, 그리고 '어차피 리그 꼴찌인 수원삼성이 리그 1위와 하는 경기이니까 질 거야'라는 생각에 크게 미련을 가지지 않고 예매를 취소했다. 하지만 이 선택은 2023년을 통틀어 가장 아쉬운 선택이었다. 지는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수원의 경기가 끝났을 때쯤 본 중계에서는 내 예상과는 정반대로 무려 3:1 대승의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홈에서의 리그전 첫 승리 후에 불편한 다리로 향한 N석 앞에서 큰절을 올리던 김병수 감독님의 모습을 뒤늦게나마 사진과 영상으로 보면서 코끝이 찡했다. 이 즈음 내 생일 선물을 물어보는 직관메이트에게 처음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던 카즈키 선수의 홈 유니폼을 말했다. 평일 퇴근길에 팬스토어를 들러 카즈키 유니폼을 사서 건네주는 직관메이트는 다음 경기까지 소중하게 유니폼을 모셔두는 내 모습에 뿌듯해했다.
5월 말의 첫 빅버드 직관 이후 거의 석 달이 지난 8월 중순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리그전 승리를 볼 수 있었다. 어느새 수원이라는 팀이 제법 익숙해진 덕분일까. 아니면 이날부터 입기 시작했던 내가 고른 선수의 유니폼 때문이었을까. 제주를 상대했던 그 경기에서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열을 올리며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응원한 팀이 후반전 막바지에 득점을 하고 경기에서 이기는 모습을 봤을 때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열렬히 박수를 칠 정도로 기뻤다. 어쩐지 아쉬운 마음에 주차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N석에서 응원하던 서포터들의 카니발 가장자리로 가봤다. 인파에 휩쓸리고 신나는 드럼라인의 박자에 이끌려 뛰다 보니 어느새 밤하늘 가득 펄럭이는 깃발들이 모여있는 가운데였다. 퇴근하자마자 조바심을 내며 빅버드로 달려오고, 더운 여름이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응원하는 것이 너무나도 보람찼다. 사실 이 팀이 승리로 내가 볼 이득은 없는데도 그냥 즐겁고 신이 났었다. 꽤 오랜만에 직장인이 된 이후로 잊어버렸던 감정들에 스스로를 내맡겼다. 경기장 바깥의 것들은 모두 잊고, 각자의 위치에서 응원했던 사람들과 같은 박자로 뛰며 승리를 즐기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다.
그런 순간이 다시금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가장 유명한 라이벌이라는 FC서울과의 경기도 보러 갔었다. 하지만 경기 시작과 동시에 상대팀이 골을 넣었고, 수원은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패배했다. 나쁘지 않았던 수원의 모습에 아쉬운 마음을 안고 터덜터덜 경기장을 떠나야만 했다. 그날의 분함을 다음날을 위한 기대와 서로를 위한 위로로 풀어내는 서포터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이상한 사람들이네. 경기 시작 전부터 패배한 이후까지, 너네가 꼴찌라며 내내 쏟아지는 상대 서포터들의 조롱마저 함께 이겨내는 수원의 서포터들은 무슨 생각으로 꿋꿋하게 이 팀을 위한 응원을 하는 것일까? 패배를 당하고 나서도 서로를 위로하며 다음을 기약할 줄 아는 서포터들과 함께 경기 중에 응원을 하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렇게 우연이 겹친 첫 만남을 통해 마주하게 된 빅버드의 이상한 그들은 내 호기심을 끌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다음 경기는 그동안 경기를 지켜보던 중앙의 안락한 W석이 아니라, K리그에서도 가장 유명하다는 수원의 서포터들인 ‘프렌테 트리콜로’가 있는 N석으로 예매되었다. K리그의 팬들 사이에서는 신입 팬은 응원팀을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팀이 신입 팬을 선택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청백적의 전선 (‘frente tricolor/프렌테 트리콜로’)으로 향하는 나는 수원삼성에게 선택되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우연들과 이상함이 나를 이끈 곳에서 나의 운명 같은 팀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