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잃어버렸던 '좋아하는 마음'을 흔들어 깨운 트리콜로
회사에서 우리 부서는 사수-부사수 체계로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내가 입사한 이후, 혼자 일 할 수 있게 된 부사수가 퇴사를 하는 경우가 잦았다. 오랜 시간 부사수 시절을 보내고 시니어가 된 나는 자연스레 특이한 존재로 여겨졌다. 매니저들과 주니어들은 내게 지금까지도 열심히 하는 동기에 대해 물어오곤 했다.
주니어 시절의 나를 움직인 것은 '생존'과 '증명'이었다. 대학원을 중퇴하고 낯선 분야의 연구직에 뛰어들며, 자신감이 없었던 스스로와 취업을 반대했던 사람들에게 잘 해낼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시니어가 된 이후에는 '성장'과 ‘성취’를 쫓았다. 길거리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 아래에서 작년의 나보다 나아진 모습을 확인하면 안도감에 살짝 눈물이 맺히곤 했다.
당연하지만 (그리고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그런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승산이 없을 때는 포기할 줄 알아야 했고, 내 감정을 숨긴 채 납득하기 힘든 비난도 견뎌야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을 올르는 사람처럼 모든 발자국을 계산해야만 했다. 나는 그렇게 내 마음을 점점 잃어가며 내 자신이 희미해져갔다. 나는 일을 좋아하는걸까, 아니면 그냥 열심히 하는 것 뿐일까? 내가 뭐때문에 기뻐했었지? 가끔 떠오르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그저 다음 일에 몰두했다.
‘그랑블루’는 넓은 의미의 수원 팬들을, ‘프렌테 트리콜로’는 경기장에서 직접 응원하는 서포터들을 의미한다. 라이벌 팀들조차 응원 하나만큼은 한국에서 최고라고 인정할 만큼 트리콜로는 수원의 '본체'다. 선수들조차 자부심을 가지며 '첫 번째 전술'이라고 표현하는 그들은 내가 2023년 여름에 처음으로 빅버드를 찾았을 때부터 신기한 존재들이었다. 아시아의 챔피언이던 과거의 모습에서 하부 리그로의 강등 선고만을 남겨둔 꼴찌가 된 팀을 위해 쉬지 않고 응원을 하는 원동력이 궁금했다. 패배가 쌓이며 비참할 끝이 예고된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는 사랑에 후회는 없다고 노래하고 외치는 트리콜로가 이상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몰입할 수 있는 사랑이 부럽기도 했다.
응원석인 N석의 트리콜로가 펼치는 응원 중 가장 상징적인 것은 청백적의 우산 돌리기였다. 몇백 개의 우산이 피워내는 그 장관을 W석에서 몇 번이고 사진과 동영상으로 담아내다가, 문득 잊고 있었던 나를 떠올렸다. 한때 나도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무모하게 매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덧없는 연애와 끝내 전공으로 삼지 못한 특기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좋아하는 마음만 가지고 살아나가기에는 너무 어려웠고, 빨리 놓고 돌아서는 것이 여러 면으로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좋아하는 마음'을 더 이상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깔끔하게 포기하다니, 역시 멘탈이 강하네'라는 사람들의 칭찬에 애써 묻어두었던 그 마음이 멈추지 않는 트리콜로의 응원 앞에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내 시선과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았던 그들의 목소리가 내 감정을 거칠게 흔들어 깨웠다.
2023년 9월, 라이벌인 FC서울과의 경기가 있었다.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실점하고 끝내 그 한 점을 뒤집지 못한 채 패배했다. ‘슈퍼매치’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라이벌리의 역사를 지닌 서울의 서포터들이 ‘수원 강등’이라고 외치며 조롱하는 소리가 빅버드에서 제법 떨어졌음에도 선명하게 들렸다. 실점한 순간을 제외하면 나머지 시간의 경기력이 아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어느새 수원이라는 팀과 빅버드의 트리콜로에게 정이 들어서였을까. 그날따라 그 소리가 유독 분하게 느껴졌다. 나조차도 그랬는데, 나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목소리를 높여 응원했던 서포터들은 얼마나 속상했을까. 근처에서 잡히지 않는 택시를 찾아 한참을 걸어가는 동안 제법 많은 수의 수원 유니폼을 입은 서포터들을 지나쳤다. 서포터들은 저렇게 조롱을 당해도 또 오겠지,라는 말을 직관메이트와 주고받다가 결국 N석을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내 첫 ‘트리콜로’ 경험은 가장 열정적인 응원이 펼쳐지는 코어에서 맞이한 30라운드 대구와의 경기가 되었다. 결전의 당일, 유튜브와 나무위키를 뒤져가며 외운 응원가들을 들으며 도착한 빅버드에서 이전과는 달리 라운지를 거쳐 들어가는 익숙한 W석의 입구가 아닌 N석의 게이트로 향했다. '축구를 보기 위해' 갔던 W석과는 달리 '응원하기 위해' 찾은 N석에서는 긴장감과 설렘이 뒤섞여있었다. 트리콜로와 함께 경기 시작 전부터 응원을 하다 보니 필드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의 무게가 이전과 달랐다. 패스 하나에 한숨을 쉬고, 슈팅 하나에 머리를 부여잡고, 상대방의 파울 하나에 발을 구르게 된 나와 N석을 채운 ‘우리’ 트리콜로는 90분 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그저 그 순간에 귓가를 울리고, 마음을 울리는 반다(정식 명칭은 ‘라 반다 데 우만’, 프렌테 트리콜로의 응원팀)의 북소리와 메가폰을 들고 사다리 위에 올라선 콜리더의 목소리를 따라 있는 힘껏 응원가를 부를 뿐이었다. 콜리더가 응원가의 첫 소절을 선창 하면 그다음 소절부터 모두가 함께 부르며 응원했고, 응원가 한 곡을 여러 번 반복해서 부른 다음에는 몇 가지의 콜(멜로디가 없는 짧은 구호)을 신호삼아 다음 응원가로 넘어갔다. 콜리더는 단 한 사람 뿐이었고, N석에 있는 서포터는 몇천 명이었지만 그는 홀로 거대한 파도를 이끌어내었다.
N석의 모두가 손을 머리 위로 든 다음 박수를 치고 외치는 ‘우리에겐 승리뿐이다’라는 콜이 있다. 라이벌 팀의 서포터가 조롱의 의미로 빼앗아 비꼬는 콜을 할 만큼 상징적인 콜인데, 반다의 베이스드럼과 함께 하는 그 박수에서 나오는 울림과 콜에서 나오는 절실함이 트리콜로에게 응원으로서 압도당한다는 상대 서포터들의 푸념 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응원가 중에서는 'Vamos Suwon Campeon'이라는 곡이 가장 인상 깊었던 곡이었다. 처음에는 악기가 없이 목소리로만 시작하고, 이후 다양한 종류의 북들이 하나씩 차례대로 합류하며 마지막에 모든 악기가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트리콜로가 제자리에서 뛰면서 노래한다. 이런 빌드업이 정말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었다. 콜리더가 시작하기 전에 양팔을 벌리고 약간 긁는 톤으로 “바-모-”를 선창 하는 그 순간은 이상하게도 경기가 끝난 며칠 후까지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혼자 조그맣게 따라 부르기만 하던 응원가가 N석 전체를 뒤덮는 그 시간 동안의 전율은 거의 십 년 동안 느껴본 적 없던 것이었다.
트리콜로와의 찐한 첫 만남과는 대조적으로 그날의 경기는 모든 것이 아쉬웠다. 상대 팀의 에이스인 세징야 선수뿐만 아니라 수비수들까지도 이런저런 이유로 결장이 많았고, 경기 중에는 내가 세징야 다음으로 잘한다고 생각했던 선수인 벨톨라 선수마저도 경기 중에 레드카드를 받고 다이렉트 퇴장을 당해 상대 팀은 내내 한 명이 적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원은 단 한 골도 넣지 못했고, 결국 경기가 끝나기 직전 한 골을 얻어맞고 그대로 패배해 버렸다. 응원석을 돌며 인사하는 선수들에게 야유를 퍼붓는 옆자리의 트리콜로에게 합류하지는 못했지만 말릴 수도 없었다. 내일부터 목소리가 안 나오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면서도 계속해서 응원한 대가가 이렇다면, 그리고 그랬던 시간이 그날이 처음이었던 나보다 훨씬 더 오래 쌓여있다면 저 야유를 누가 무례하고 부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주춤거리며 인사하고 돌아서는 선수들의 뒷모습에 마음이 한없이 복잡해졌다. 패배하고 싶지 않았을 그들의 뒷모습이 안쓰러웠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모두 락커룸으로 들어간 후에야 힘겹게 발걸음을 떼며 다음에는 더 나은 결말이 오길 바랐다.
‘보다 보면 승리하겠지’의 순간은 그렇게 쉽게 오지 않았다. 처음으로 원정 응원석을 예매하는 패기를 보여주었던 대전에서의 경기 중에는 또다시 응원도 잊고 선수들의 플레이에 맥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싶었던 순간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패배 후 차마 팬들을 바라보지 못하던 선수들과 그라운드만 내려다보던 김병수 감독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개를 들라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렸다. 원정석 티켓팅에 실패한 인천전 다음 경기인 포항전에서 다시 응원석에 합류할 수 있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시기였고, 그 잘한다는 포항을 상대로 패배를 하지 않을 수 있을지, 그리고 대전전 직후의 사건으로 등장한 염기훈 감독대행이 경기를 잘 이끌 수 있을지. 처음 빅버드의 N석에 들어설 때는 기대감이 컸지만, 이제 고작 두 번째 N석에 들어서는 것인데도 벌써부터 기대보다는 걱정이 가득했다.
놀랍게도 전반전 중에 김주찬 선수의 골이 터졌다. 정말 매서웠던 포항의 공세는 골키퍼 양형모 선수와 골대의 선방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슈팅 하나, 태클 하나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빨리 흘러 소중한 한 골을 지켜내고 승리하길 정말 두 손 모아서 빌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경기 막바지, 콜리더는 ‘데스파시토’를 선택했다. 긴 가사 탓에 가장 늦게 외워낸 곡이지만, 멜로디와 가사로 인해 내가 가장 좋아하게 된 응원가였다. 가장 좋아하는 응원가에 오늘까지 쌓인 간절함이 얹히는 순간에 갑자기 눈물이 났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린 후에야 머플러로 눈물을 닦고, 드디어 당당하게 ‘우리에겐 승리뿐이다’라고 외쳤다. ‘오늘의 MVP는 (그랑블루) 여러분입니다’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뭉클한 멘트에 이어 수원을 상징하는 응원가인 ‘나의 사랑, 나의 수원’을 다 같이 불렀을 때의 그 가슴 벅참은 정말 내 인생에서 이전에 느꼈던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크기와 무게였다.
경기 후 이어진 카니발이 끝나고 나니 어느새 사방이 어둑해져 있었다. 9월 말이라는 날짜에 맞는 정도의 가을바람이 제법 서늘했지만, 반팔을 입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의 열기에 추위를 잊었다. 응원석에서 내 자리를 찾아 앉을 때에는 일면식도 없었던 옆자리의 사람들과 함께 소리 지르고 노래 부르며 어깨동무를 하는 동안에 뜨거워진 몸과 마음 덕분이었다. 나는 그날, 우산 기깔나게 돌리고 응원 잘하는 프렌테 트리콜로와 그들의 어쨌거나 사랑하는 ‘내 팀’을 향한 마음을 발견했다. 승산 없어 보이던 전장에서 끝까지 싸울 수 있었던 힘은 결국 팀과 동료를 향한 마음이었다. 몇 달간 TV의 중계로 볼 때도, W석에서 그들을 바라볼 때도 이해할 수 없었던 트리콜로의 마음은 현장에서 직접 겪어야만 보이고 이해할 수 있었다. 순수한 '좋아하는 마음'이 이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는 순간과 현장은 그 자체로 너무나도 소중했다. '생존', '증명', '성장', '성취'에 묻혀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이 다시 내게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