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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우구데 Aug 31. 2024

"파란 피가 참 좋았습니다"

끝나버린 K리그에서의 첫사랑, 김병수 감독

4승 5무 11패. 이전 시즌인 2022년에 간신히 강등을 피했던 팀의 부진한 2023년 시즌을 구해줄 소방수로서 시즌 중반에 부임한 감독의 성적표로서는 아쉽다. 감독은 한 시즌을 끝까지 지휘하지 못한 채 팀을 떠나야만 했고, 그가 맡았던 팀은 결국 창단 이후 첫 하부 리그로의 강등을 당했다. 승점 단 1점 차이였다. 그 1점 차로 팀은 플레이오프마저 놓쳤다. 그렇기에 감독의 능력을 두고 팬들의 의견은 제각각이지만, 그가 팀을 떠난 그 날은 수원이 몰락해가는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준 순간이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랬기에 그의 성적이나 전술에 대한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그는 언젠가 꼭 한 번 좋은 날에 만나 서로 웃으며 인사하기를 바라는 인물이 되었다. 


그는 2023년 시즌 열두번째 경기부터 서른한번째 경기까지, 총 스무경기동안 수원을 지휘했던 김병수 감독이었다. K리그를 처음 보기 시작했던 내게 수원이라는 팀을 각인시켜준 사람이었고, 시간이 지나고 보니 K리그와 수원의 팬으로서의 첫사랑이기도 했었다. 




수원은 2022년의 하부리그로의 강등이 걸려있던 플레이오프에서 간신히 강등을 면했다. 그러고도 2023년 4월 중순까지 승리하지 못했고, 결국 이병근 감독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질되었다. 구단은 선수로서는 레전드였던 그를 그렇게 떠나 보낸 후 강등의 위기에서 구해줄 마지막 희망으로서 김병수 감독을 선임하였다. 새로운 감독의 취임식은 수원 모습처럼 구겨진 배경지를 뒤에 두고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가 전했던 "용기를 갖고, 정성을 다하겠습니다."라는 취임인사에는 진심이 넘치도록 담겨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새로운 감독이 왔다고 하더라도 2023년 연말의 수원은 강등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리’ 선수들이라지만 실력면에서는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선수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들과 함께 완성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병수볼'을 구현하며 연패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펩 과르디올라나 주제 무리뉴와 같은 감독들에게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수원의 감독직 제의를 받은 김병수 감독을 '받아들이면 이제 당신의 커리어는 끝이다'라며 만류하였다는 김병수 감독의 주변 사람들이 전혀 원망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김병수 감독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모두가 마음을 모아 전력을 다한다면, 수원은 다시 특별해질 것이라 믿습니다"라고 말하며 제의를 수락하였다. 그의 진심이 진흙 속의 연꽃마냥 선연해서 그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가능성을 따지고 따져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걸고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나선 사람을 내 일생 통틀어서 몇 명이나 만날 수 있겠는가. 


김병수 감독이 부임 직후 아직은 지휘하지 않고 벤치에서 지켜본 경기가 바로 내가 수원에 관심을 가졌던, 옐로카드 여덟 장으로 가까스로 한 골을 지켜낸 인천전이었다. 김병수 감독이 큰 눈을 꿈뻑이면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필드를 바라보는 모습은 그 이후의 전북과의 경기, 그리고 강원과의 경기 초반까지 계속해서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하지만 강원을 상대로 전반 중에 앞서나가기 시작하는 첫 골이 터졌고, 드디어 집에서 중계를 보던 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렇게 시즌 두 번째 승리로 끝난 강원전을 계기로 수원은 서서히 나아지기 시작했다.


김병수 감독을 처음 본 5월과 슬슬 경기력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 같은 6월이 지나고, 7월이 되자 진심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했다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시 가장 잘 나간다는 김기동 감독의 포항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고, 리그 1위였던 울산을 상대로 세 골을 넣고 격파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그렇게 울산을 상대로 거둔 승리는 2023년 리그 경기에서 수원이 홈에서 거둔 첫 승리였다. 김병수 감독은 선수 시절의 부상으로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응원석까지 달려와 정성스럽게 팬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마치 가장 좋은 상태의 첫 수확물을 제단에 정성스럽게 올리는 사제처럼. 기뻐하는 선수들의 모습 뒤로 눈물을 흘리는 서포터들의 모습이 잡히던 울산전은 지금까지도 내가 직관하지 않았던 경기 중 가장 아쉬운 경기로 꼽는 경기였다. 그 기세를 몰아 이후에는 다시금 강원까지 잡아내면서 결국 잠시나마 수원의 붙박이 자리였던 꼴찌 자리를 벗어나보기도 했었다. 그때는 팀에 대한 애정이 아직 작았을 때였는데도, 여름 휴식기 동안 바뀌지 않는 K리그1 순위표를 보며 우리가 꼴찌가 아니라는 사실에 얼마나 흐뭇해했었는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고 김병수 감독의 당시 행보를 되짚어보니 좋아하는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팬의 위치에서는 직접 볼 수 없었지만, 김병수 감독은 필드와 훈련장에서, 그리고 선수들이 생활하는 클럽하우스에서까지 무너져가는 팀을 다시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시즌 중반부터 팀 선수들이 대놓고 암시했을 만큼 분열이 심했던 팀을 하나로 묶으려 했었고, 절망 속 팀과 같이 무너져 내리던 선수들에게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서로를 향한 믿음과 희망을 심으려 했던 것이 느껴졌다. 어두운 터널 끝에는 빛이 있고, 우리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라는 그의 메세지가 선수들 뿐만 아니라 내 마음에도 깊이 세겨졌다.




하지만 한여름밤의 꿈은 너무나도 짧았다. 전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이상민 선수와 정승원 선수가 장기부상에 빠지게 되었고, '대지를 가르는 패스'를 하던 카즈키 선수가 상대팀 선수들에게 집중적으로 묶이기 시작하면서 웃음이 사라지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 처음으로 N석을 갔던 9월의 대구전에서 시작된 야유는 대전의 원정석에서 절정에 달했다. 차마 야유하지 못하고 침묵하던 내 시선은 김병수 감독에게 박혀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 붕대가 흩어져있는 필드 구석의 벤치에서 한참을 앉아있던, 그리고 멀리서 바닥을 보면서 그라운드를 걷고 있던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평소보다 짧았던 경기 후 기자들 앞에서의 인터뷰가 있었던 대전에서의 그날은 결국 김병수 '감독'의 마지막 날이 되고 말았다. 


토요일 오후였던 대전 경기 이후 무거워진 마음으로 출근했던 월요일 오후, 갑자기 김병수 감독 사임과 경질이 뒤섞인 내용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루머로 시작했던 내용이 뉴스면까지 뒤덮는 것을 보며 이미 늦은 시즌 중 경질이라 소용이 없기 때문에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려고 했었다. 저녁 시간이 되자 김병수 감독의 경질과 동시에 감독대행으로는 플레잉코치로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있던 염기훈 선수를 감독대행으로, 활약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 김보경 선수를 주장으로 선임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 기사에 손이 떨릴 정도로 수원의 프런트에 분노했다. 모든 것을 바친 사람을 이렇게 내치는 것이 용납될 수 있을까. 프런트는 감독 선임 당시에 '결혼 상대를 찾는 것과도 같아서 신중하게 선임했다'라고 말하면서, 위기라는 상황에 적절하지 않은 '본인의 축구를 구현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한' 감독을 선택했었다. 감독을 지지하기는 커녕 흔들기만 한 프런트의 행동은 용서할 수 없었다. 심지어 김병수 감독이 연패라는 결과에 책임을 지기 싫어서 자진해서 사임하는 것으로 몰아가려고 하던 것은 무슨 예의일까. 그 대안으로 내세운 사람이 경기 지휘를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수원팬들이 사랑해마지않았던 염기훈 선수라는 사실과 주장으로 정해진 사람이 염기훈 선수와 가까웠던 김보경 선수라는 사실은 내 분노를 끌어낸 결정타였다.


수원의 팬들뿐만 아니라 라이벌 팀을 응원하며 심심하면 투닥거리던 K리그 팬들까지도 프런트에게 근조화환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도 동참하기로 하였다. 내가 근조화환의 리본에 넣은 문구는 '무능하고 무례한 개런트만 살아남고, 부서져버린 추억과 낭만의 그랑블루'였다. (*개런트: 수원의 프런트를 비하하는 표현) 수원의 팬이자 그렇게 수원을 위해 그 자리를 받아들여준 김병수 감독의 팬이기도 하지만 축구장에서 낭만에 흠뻑 젖어가며 쌓은 추억들도 소중했기에 그 마음까지 제한된 글자수 내에 담고 싶었다. 경질 발표로부터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발빠른 수원의 지지자들은 홈 경기장이자 프런트의 사무실이 있는 빅버드(*수원월드컵경기장의 애칭)로 달려가 분향소를 차리기도 했다. 이런 모습들이 모여서 개런트가 경질을 철회하는 희망이 한 톨이라도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나와 함께 경기장을 찾던 직관메이트는 바로 다음날 아침에 검은 셔츠와 바지를 챙겨 입고 빅버드의 분향소를 찾았다. 출근해야했던 나는 포스트잇에 짧게 김병수 전 감독에게 보내는 응원메세지를 적어두었고, 직관메이트는 그 포스트잇을 경기장 벽에 붙어있는 김병수 감독의 사진 부근에 붙여주었다. 혹시나 구단에서 분향소를 철거해버릴까 봐 걱정되어 비슷한 차림으로 분향소를 지키고 있었던 동료 지지자들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 이 상황에 대해서 함께 분노하고 서로를 위로했다. 구단은 도착하기 시작한 근조화환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 자리를 지키던 지지자들이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분노를 키워갔다. 결국 메세지가 적힌 리본만 남기고 근조화환은 버려졌다. 프런트의 주요 인물들은 열두 시가 되기도 전에 시시덕거리며 지지자들을 피해서 식당가로 사라졌다고 했다. 일부 직원들은 멀리서 분향소와 응원의 포스트잇들을 지키고 있던 지지자들을 관찰하며 경계했다. 그들의 앞에서 지지자들의 울음소리가 삼켜지고 마음이 짓밟히는 현장이었다.


이틀 뒤인 목요일은 추석 연휴의 첫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직관메이트와 함께 검은 옷을 입고 빅버드로 향했다. 감사와 응원, 그리고 분노의 마음들을 담아 빼곡하게 자리를 채운 수많은 포스트잇들이 가을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김병수 전 감독과 그가 사랑했던 팀을 향한 소중한 마음들이 혹여라도 먼지 섞인 바람에 날아가고 떨어지지 않도록 누군가가 놓고 간 테이프로 위태로워 보이는 것들을 다시 단단하게 붙여주었다. 가져온 여분의 펜과 포스트잇을 나보다 늦게 이 자리를 찾을 지지자들을 위해 기둥 앞에 놓았다. 어떤 소모임에서는 '병수 언제나 우린 너와 함께해'라는 걸개를 만들어 바닥에 펼쳐두었고, 처음에는 초 하나로 시작되었던 분향소에는 어느새 어엿한 제삿상이 차려져있었다. 그렇게 눈물을 쏟고, 분향소를 정리하고, 메세지를 남기고, 국화꽃도 가져다 놓고, 혹여나 해를 끼치는 사람이 없도록 주변도 돌아보는 지지자들이 만들어낸 공간에서 그날의 나는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서포터 단체인 프렌테 트리콜로는 '드레스코드 블랙'을 발령했다. 파란색의 유니폼 대신 검은 옷을 입음으로써 팀을 강등까지 몰고 간 것도 모자라서 그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구단에게 항의를 하자는 의미였다. 검은 옷을 입고 구단을 향한 강경한 메세지의 걸개를 든 수원의 지지자들은 감독 교체 사건 직후의 첫 경기였던 인천전에서 상대 팬들에게 조롱을 받아야만 했다. 상대가 원정석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비하의 걸개를 걸고, 우리의 엠블럼에 침을 뱉었던 비참했던 그날부터 검은 옷을 입은 지지자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기나긴 싸움을 시작했다. 그래도 유니폼을 입고 싶은데 눈치 보일까요,라는 질문은 이 사태에 대해서 일말의 사과는커녕 김병수 감독에 대한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않는 프런트의 모습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게 드레스코드 블랙과 함께 시작되었던 수원의 팬들과 프런트간의 전쟁은 길고 격렬하게 이어졌다.

 

리그에 속한 12팀 중 최소 한 팀 이상이 무조건 강등을 당해야만 하다 보니 성적이 부진하면 감독이 바뀌는 일은 2023년에도 우리가 처음이 아니었고, 2024년에도 제법 많이 일어나는 중이다. 하지만 2023년 김병수 감독 경질 사건에 수많은 지지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분노하며 싸웠던 이유는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던 사람에 대한 예의에 대한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결과가 아쉬운 것도 온전히 이 사람만의 책임이 아닐진대, 그렇게까지 돕겠다고 나선 사람을 자기네들의 이익을 위해서 내치는 것이 옳은 일일 수 있을까.


경질이 발표된 직후, 한 기자가 김병수 전 감독의 모습이라면서 삭발 수준으로 머리를 짧게 깎아버린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에서 멋쩍게 웃는 그의 모습을 보니 목이 메었다. 또 다른 누군가가 인터넷에 올린, 그가 팬들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는 문자 메세지를 보고는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푸른 피가 참 좋았습니다. 사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부 리그로 강등당했던 수원이 재기를 준비하고 있던 2024년 2월, 한 매체가 진행했던 김병수 전 수원 감독과의 인터뷰가 유튜브를 통하여 공개되었다. 그동안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김병수 전 감독은 인터뷰어가 “수원 삼성 질문드려봐도 되나요”라고 물었을 때 바로 “안됩니다”라고 답했다. 그때까지는 김병수 전 감독의 목소리에도 웃음이 섞여있었다. 하지만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수원삼성은 제가 누군가를 사랑했다면 ‘이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정도로 사랑했어요”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이유로서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팬들’을 꼽았다. '자기 자신보다는 수원삼성을 향한 사랑을 가득 담은 팬들'에게 전할 말을 물었을 때, 김병수 전 감독은 바로 답하던 이전 질문들과는 달리 제법 오랜 시간을 보낸 뒤에야 '굳이 표현을 안 해도 서로가 다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 인터뷰 영상을 보고는 넉 달쯤 묻어두었던 슬픔이 다시 고개를 드는 바람에 또 한참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위해 그 영상을 다시 틀었다가도 또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역시 첫사랑과의 이별은 한 번에 끝나지 않는가보다...)


당시에는 몰랐었지만, 김병수 감독은 내게는 수원의 서포터로서 뿐만 아니라 K리그 팬으로서의 첫사랑이었다. 나는 그가 보여주었던 전술을 다 이해하지도 못했고, 그가 거둔 성적이 팀을 강등에서 구해내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힘,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열정, 수원을 떠나고 나서도 보이는 진심이 모여 만들어낸 수원 감독으로서의 김병수 감독은 내게 떠올리면 아련한 미소를 짓게 하고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게 만드는 존재이다. 그는 내게 성적 이상으로 소중한 '낭만'과 '헌신'의 가치를 일깨워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축구 팬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도 그에게 많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 감사와 사랑의 마음은 당시 빅버드에서 그의 사진 위에 덧붙인 포스트잇(과 이 글)에 담는다. 


이제는 수원의 감독이 아닌 FC충주의 총감독인 그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그가 원했던 축구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첫사랑이었던 그를 다시 마주하였을 때 눈물 흘리지 않고 웃을 수 있을 때가 되면 차근차근 완성된 '병수볼'을 보러 그가 있는 경기장으로 향할 예정이다.


결과와 무관하게 내가 찍은 그날의 경기 사진 중에는 반드시 한 장 이상의 감독님 사진이 있었다
당신을 향한 모두의 마음이 닿았기를, 그래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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