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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우구데 Sep 09. 2024

수원은 항상 위기에 강했다

팀보다 위대한 팬들이 써 내려간, 모두가 부러워할 낭만의 시간

2023년 11월, 수원은 시즌 종료까지 단 세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최하위를 피해야만 플레이오프라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한 상태에서 연달아 잡힌 더비전(*인접한 지역에 있는 팀 간의 매치)와 라이벌전에 수원의 운명이 걸렸다. 


11월의 첫 경기는 같은 지역인 수원시를 연고지로 두고 있는 수원FC 와의 경기인 수원더비였다. 경기를 전후로 하여 수원FC는 수원의 홈 경기장인 빅버드(*수원월드컵경기장의 애칭)를 공동 사용하자는 주장을 펼치고, 서포터은 '우리가 진짜 수원'이라는 걸개를 내걸며 도발하고 있었다. 내 첫 직관이 수원FC의 경기였지만, 수원의 서포터가 된 이제는 그들이 반갑지 않았다. 이 경기는 반드시 이겨야 했다. 수원으로서는 승리를 해야 그 이후에 꼴찌를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계산해 볼 수 있었고, 수원FC 로서는 강등권을 탈출하기 위해 승리가 필요했다. 몸이 좋지 않았지만, 경기 중에 먹을 약까지 챙겨 서포터석으로 향했다. 2023년에 있었던 세 번의 이전 매치업에서 단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다는 것과, 여기서 지면 사실상 강등이 확정되기 때문에 수원FC의 서포터들에게 놀림을 당할 수 있다는 것도 직관메이트와 서포터석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막지 못했다. 


경기가 시작하고 14분 만에 모두가 기대했던 카즈키 선수가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그 순간에 진짜 망했다고 생각했다. 상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전 공격수들을 투입하며 먼저 득점에 성공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동안 '유리몸'이라고 비난받던 아코스티 선수가 골을 넣으며 전반전을 비긴 상태로 끝낼 수 있었다. 숨을 돌린 하프타임 이후로 마찬가지로 부진하다는 비난을 받던 안병준 선수가 골을 넣어서 역전을 해낸 상황은 7분 만에 다시 상대의 동점골이 터지면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렇게 15분 이상의 시간이 흐르다가 드디어 2023년 수원의 파랑새라고 불리는 김주찬 선수의 골이 터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참고 참았던 트리콜로의 환호는 그 이후 2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양형모 선수의 선방 직후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종료 휘슬과 함께 터져 나왔다. 시즌 첫 수원더비의 승리였고, 강등을 피할 수 있도록 승점 차이가 좁혀지는 귀중한 승리였다. 퇴장 후 구석에서 안절부절못하며 경기를 지켜보던 카즈키 선수는 트리콜로를 향해 허리를 90도로 꺾어가며 인사를 했고,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고 뒤늦게 달려온 김주찬 선수는 트리콜로와 함께 승리를 기념하는 만세삼창을 했다.  


수원FC의 원정석은 예매 당시에는 자리가 지정되지 않고, 경기 시작 전 게이트가 열리면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 비지정석이었다. 일찍부터 가서 기다린 덕분에 콜리더가 바로 보이는 가운데쯤에 자리를 잡았다. 정말 '코어'라고 부를 수 있는 자리에 있다 보니 경기와 응원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플레이가 이루어지던 그라운드 이상으로 트리콜로가 위치한 원정석은 치열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응원을 멈추고 팔짱을 끼거나 주저앉고 싶었던, 상대방의 득점에 환호하는 상대 서포터들의 소리에 우리의 응원가가 잠시 들리지 않았던, 그리고 필드 위에 상황에 말문이 막혀서 아무런 소리도 못 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 악물고 두 팔 높이 올려 뛰고 있는 동료의 움직임에, 내가 멈춘 사이에 더 큰 목소리로 응원가를 불러주는 동료의 목소리에, 그리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악을 쓰며 부른 선수들이 넘어졌다가도 일어서서 달려가는 모습에 결국 다시금 일어서고 목소리를 높여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골키퍼인 양형모 선수 뒤편의 골망이 흔들릴지언정 응원소리만큼은 끊기지 않았다. 수원FC의 직원들이 촬영을 할 정도로 신나게 카니발을 즐기던 중 우리의 콜리더가 말했다. 수많은 경기에서 앞장서서 응원했었던 그마저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여러분들을 보며 그런 순간들을 넘겼다고. 잠시 고개를 숙일지언정 확성기를 놓지 않았던 콜리더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함께했던 몇천 명의 트리콜로들과 얽혔던 시선들과 마음들이 촘촘하게 엮여 기적을 만들어냈다. 열 명이 아닌, 이천 명이 넘는 트리콜로가 함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지만, 팀보다 위대한 팬들은 있는 것 같아요." 집에 와서 차근차근 경기를 다시 보기 위해 틀었던 중계가 끝나갈 무렵 한준희 해설위원이 서포터들을 보면서 한 말이었다. 이미 결과를 아는 경기임에도 그 때 참았던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외면과 조롱을 당하던 검은 옷을 입고 목놓아 나사나수' ('나의 사랑, 나의 수원': 수원의 클럽송이자 대표 응원가로, 승리하였거나 그에 비슷한 상황에서 부른다)를 부르는 우리의 마음을 누군가가 알아준다는 것이 고마웠다. 그랬기에 한준희 해설위원의 그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국가대표 경기인 A매치로 인한 휴식기 이후 11월 말, 다시 한번 수원을 위한 원정길에 올랐다. 경기 이름부터가 '슈퍼매치'일 정도로 숙명의 라이벌인 FC서울이 상대였다. 하지만 이번 경기는 단순한 라이벌전이 아니었다. 수원이 강등권으로 결정된 상황에서 서울이 승리하면 '원수'의 숨통을 직접 끊을 수 있었다. 서울의 팬들은 오래전 자신들이 당했던 조롱을 갚기 위해 '수원 강등'이라고 외칠 날을 기다려왔다. K리그 팬들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상황이었지만 수원을 응원하는 서포터로서는 정말 절박하다 못해 처절한 상황이었다. '오늘 여기서 같이 죽자'라는 각오로 배수진을 치며 검은 옷을 입고 상암의 서울월드컵경기장 원정석에 들어선 트리콜로의 수는 상암에서 역대 최다 원정 인원이  8000명이었다. 


11월 말의 날씨는 이미 충분히 매서웠지만, 강변의 찬바람이 상암의 원정석을 더 차갑게 만들었다. 햇빛도 들지 않는 원정석의 방향마저 다해지며 모든 것이 긴장감을 더했다. 먼저 날아든 '수원 강등'을 외치는 상대 서포터의 콜에 서울을 위한 안티콜인 '눕패송'으로 수원의 서포터들은 반격했다. 무려 원정석에서의 청백적 카드섹션을 펼치기 위해 직관메이트와 함께 우리 자리에 놓여있었던 빨간색 종이를 정성스럽게 들어 올렸다. 


경기의 승패를 결정지은 단 한 골을 위해 치열한 경기가 펼쳐졌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바사니 선수의 골에 트리콜로가 열광했다. 경기 막바지에 빠르게 돌파하는 김주찬 선수에게 상대 선수가 거칠게 태클을 가하며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을 당했다. 경기가 끝나기 직전에는 필드에서 일어난 몸싸움이 벤치 클리어링으로 번졌다. 그 와중에 FC서울의 코치와 선수들이 수원의 선수들을 가격하는 일이 발생했다. FC서울의 누군가가 (이후 다시 돌려본 중계 및 기사를 통해 현재 경남으로 이직한 당시 피지컬 코치와 FC서울의 레전드로 대우받은 선수였다는 점이 밝혀졌다) 고승범 선수를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에 정말 '눈이 도는'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아닐 경기 중에 경고누적이 된 이종성 선수와 지난 경기에서 다이렉트 퇴장을 받은 카즈키 선수가 마지막 경기에 나올 수 없게 되었기에, 마지막 남은 미드필더인 고승범 선수는 절대로 경고를 받으면 안 되었다. 그랬기에 충격적인 그 상황에서도 고승범 선수는 분노를 참으며 반격하지 않고 참아주었다.


승리의 결과를 가지고 트리콜로 앞으로 가장 먼저 걸어온 선수는 이종성 선수였다. 플레이 스타일상 카드를 자주 받는 편이었고, 특히나 수원이라는 팀에 대한 충성심이 높았기에 라이벌전인 슈퍼매치에서는 반드시 카드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렇게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보여준 선수가 슈퍼매치 때만 착용하는 '북벌'이라는 말이 적힌 청백적의 주장 완장을 차고 눈물로 포효하며 서포터들 앞에 섰다. '종캡'의 그 모습에 비로소 경기 내내 담아두었던 긴장과 분노가 눈물이 되어 흘렀다. 일부러 장갑을 끼지 않았던 맨 손이 찬 바람에 터서 쓰렸지만, 나는 끝까지 장갑을 끼지 않고 박수를 쳤다. 


트리콜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킥오프 전부터 시작되던 상대방의 조롱에도 담담하려고 애쓰며 더욱 목소리를 높였었다. FC서울 서포터들은 수원의 '하얗게 눈이 내리던 그날'을 비꼬듯 눈 스프레이를 뿌려댔지만,  우리는 청백적의 우산과 종이꽃가루로 눈을 만들었다. 경기 막바지의 폭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 누군가의 주도 없이 카드 섹션에 사용되었던 빨간색 도화지를 들며 가해자들의 퇴장을 외쳤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낯선 사람이 응원가를 부르지 않는 것을 눈치챘다. 겉옷으로 FC서울의 붉은 유니폼을 알아차렸지만, 모르는 척 더 큰 소리로 응원을 이어갔다(*원정석에는 홈팬이 들어오지 않고, 원정팬은 나머지 홈석에 앉지 않는 것이 규칙이다. 이 경우에는 FC서울의 팬이 몰래 원정석에 앉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필드 밖에서도 승리한 트리콜로는 카니발 응원으로 그 순간을 만끽했다. 수천 명이 하나 되어 뛰며 외치던 그 순간에 마치 바닥이 흔들리는 듯한 진동이 발끝으로 전해졌다. 우리의 열정이 상암의 하늘을 청백적으로 뒤덮고 땅을 뒤흔들던 날이었.




구단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검은 옷을 입고 상암을 물들인 우리의 모습에, 한 기자는 '추워서 입은 패딩 때문에 원정석이 꽉 차 보였다'라고 폄하했다. 그러나 중계를 맡았던 소준일 캐스터는 우리의 진심을 알아보았다. 오랫동안 잘 불리지 않았던 응원가 'Vamos millionarios'를 인용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를 놀라게 할 사랑을, 모두가 부러워할 낭만을 보여준 프렌테 트리콜로. 로맨틱한 두 시간을 선수들과 함께 써내려갔습니다."


소준일 캐스터의 이 한 문장은 우리가 만들어낸 낭만의 시간을 완성했다. 트리콜로는 '수원은 항상 위기에 강했다'는 걸개를 들고, 서로의 목소리와 어깨동무에 기대어 쏟아지는 조롱을 견뎌냈다. 그렇게 11월을 보내며, 나는 비로소 진짜 '트리콜로'가 되었다고 느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두 손 들고, 목소리 높여 뛰며 응원했던 '내 팀'. 환희부터 분노까지 모든 감정을 함께 나누며 익숙해진 '내 동료들'. 이들과 함께이기에 그 어떤 결과도 두렵지 않다는 확신을 품었다. 그 확신을 가슴에 안고, 강등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도 있는 운명의 전장—시즌 마지막 경기로 향했다.


수원더비의 시작과 끝: 제도의 푸른 하늘에 들어올려진 청백적의 깃발
슈퍼매치, 하얗게 눈이 내리던 그 순간들


상암에서 효과를 발휘한 승리기원 부적, 그리고 내 기억에 깊게 자리한 종캡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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