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범 선수와 이종성 선수에 대한 이야기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
'헌신'이란 단어는 이제 본래의 의미보다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는 말 속에 더 익숙하다. 연애를 포함한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직장과 일에 대한 태도에까지도 이 말이 들린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얻는 것이 현명한 삶이라 여겨지는 시대다. 월급을 모아도 집을 살 수 없기에 평생직장이 사라진 세상에서는 헌신보다는 효율이 미덕이었다. 연구직으로서의 성장을 포기하고 재빠르게 다른 기업이나 직군으로 이직한 동기들, 그리고 논문 대신 주식창을 보고 있는 주니어들을 모르는 척해주던 내게 헌신이라는 단어는 제법 구석으로 밀려난 지 오래였다. 맡은 일을 잘 끝내고 싶은 책임감과 어차피 빼앗길 성과이니 적당히만 하자는 냉소 사이의 위태로운 줄타기가 이어졌. 헌신이라는 단어는 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있는데, 잡히지 않는.
열심히 하는 미소보다 시큰둥하고 냉소적인 표정이 멋있어 보이는 분위기는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여전했다. 주니어 시절에는 회사에 충성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말이 동기들끼리 있으면 쉽게 나왔다. 모처럼 먹은 마음은 돌밭에 얕게 뿌리를 내려 작렬하는 태양 아래 타서 말라버리는 새싹처럼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산리오의 구데타마는 의욕 없이 늘어져 ‘귀찮아’, ‘어쩌라고’라는 말을 중얼거린다. 현실을 체념한 상태로 아주 가끔씩만 열심인 모습이 무기력한 태도가 기본값인 직장인과 닮았다. 이 캐릭터를 만들어낸 디자이너는 영양소가 풍부한 계란이 의욕 없이 밥 위에 얹힌 모습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 의욕과 의지가 없어진 젊은이같이 보여서 구데타마를 만들었다고 했다. 퇴근한 후에도 노트북을 켜서 집에서 일을 할 정도의 책임감만 간신히 남아있었다. 틈틈이 늘어져있는 내 모습이 어느 날 SNS에서 우연히 본 구데타마와 꼭 닮아 보였다. 하루하루를 무사히 넘기기에만 급하던 석우동의 구데타마에게는 소중한 것도, 가치 있는 것도 더 이상 남지 않았다.
빅버드의 N석에서는 ‘헌신(獻身)’이라는 한자가 적힌 대형 깃발이 펄럭였다. 그 깃발은 헌신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세상에서 더욱 묵직하게 다가왔다. 직장인인 내가 존재조차 잊고 있었던 그 단어를 이렇게까지 전면에 내세우는 사람들과 세계가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하지만 2023년 12월 2일, 강등이 확정된 직후의 그라운드에서 90분 내내 쉼 없이 펄럭이던 '헌신' 깃발이 힘없이 내려앉았다. 깃발 너머로 고승범 선수가 펑펑 울고 있는 모습에 무엇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수원을 응원하며 처음 구매한 유니폼 중 하나는 고승범 선수의 것이었다. 당시 나는 그가 어떤 선수인지도 몰랐다. 기나긴 대기줄 끝에 남아있던 몇 안 되는 마킹이 고승범이었고, 고민할 새도 없이 그 유니폼을 집었다. 우연한 선택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유니폼은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직관메이트는 내게 그가 ‘열심히 뛰는 선수’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는 매 경기 지칠 줄 모르고 수비와 공격 사이를 오갔다. 설명 그대로, 고승범 선수는 항상 경기장에서 묵묵히 헌신하며 매 순간 팀을 위해 뛰었다. 현대 축구에서 귀하다는 '육각형의 프리롤' 미드필더로서 필요한 순간마다 필요한 자리에 있었다. 그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중원의 에너지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직접 골을 넣지 않아도 팀의 경기력을 완전히 바꾸었다. 이제는 아쉬웠다는 예전의 모습이 상상조차 되지 않을 만큼, 축구를 모르던 내게도 그는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선수였다.
그의 모습이 가장 많은 이들에게 각인되었던 2023년의 경기는 아마도 11월의 슈퍼매치였을 것이. 라이벌인 FC서울을 수원이 1:0의 점수로 이기고 있던 중이었다. 경기 막바지에 FC서울의 선수가 수원 선수를 밀치며 몸싸움이 시작되었고, 벤치에 있던 서울의 코치진과 선수들이 합세해 벤치 클리어링으로 번졌다. 혼란 속에서 서울의 피지컬 코치가 고승범의 얼굴을 때렸고, 또 다른 선수는 그의 목을 조르고 머리채를 잡았다. 하필 그 바로 앉아있던 고승범 선수의 가족은 이 모든 상황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그는 감정을 억누르며 끝까지 반격하지 않았다. 이 경기에서 단 한 번이라도 경고를 받으면 그는 경고 누적으로 강등이 걸린 마지막 경기에 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다른 미드필더들의 결장이 확정된 상황에서, 그마저 빠지면 팀은 미드필더 없이 그 경기를 치뤄야 했다. 그의 절제된 헌신 덕분에 마지막 경기에서 팀은 무승부를 거둘 수 있었다. (*수원은 2023년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승점이 아닌 득점에서 밀려 강등되었다.)
그렇게 맞기까지 하며 그가 활약했던 시즌은 결국 강등이라는 결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주변 사람에게 기대어 펑펑 울면서 수원의 서포터들 앞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던 고승범 선수의 모습에 나 역시도 어쩔 줄을 모르겠던 그 순간들이 지나갔다. 강등의 아픔을 안고 잠들지 못하던 새벽, 나는 충동적으로 고승범 선수에게 SNS 메시지를 보냈다. 평소 연락하던 사이가 아니었기에 읽힐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읽음' 표시가 떴다. 그 시간에 나조차 잠들지 못하는데, 그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꿈꾸던 팀에 직접 이력서를 들고 가 입단 테스트까지 보며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했던 그가 느꼈을 상실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답장은 없었지만, 그 작은 '읽음' 표시 하나가 내게는 묵직한 대답처럼 다가왔다.
홈이든 원정이든, 승리든 패배이든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면 팬들에게 인사를 하러 온다. 당연히 승리를 하고 난 직후라면 인사를 하러 오는 선수들도 당당하게 인사를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날에는 팬들 앞으로 향하는 선수들의 발걸음도 무겁고 느릿하다. 연패가 이어지던 가을에 수원의 선수들의 걸음이 그러했다. 상대 서포터석에서 날아드는 야유와 조롱을 대신 듣는 팬들 앞으로 터덜터덜 걸어온 선수들은 고개만 숙여 보이고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아쉬움과 분통이 뒤섞인 팬들의 외침이 그들의 뒤편에 그림자보다도 길게 늘어졌다.
이제는 몇 번째인지 세보지도 못하는 또 다른 패배를 좀 많이 처참하게 당했던 날, 마찬가지로 서포터석에서 선수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이전과 달랐다. 이종성 선수가 선수들의 앞쪽으로 가더니, 가장 먼 자리에서 서포터들을 마주하고 우뚝 섰다. 그 덕분에 다른 선수들도 이종성 선수의 뒤를 따라서 일렬로 서포터들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종성 선수는 깊게 허리를 숙여 서포터들에게 인사를 했다. 비록 다른 선수들은 서투르게 고개를 숙이고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지만, 어쨌거나 그날의 서포터들은 끝까지 응원한 데 대한 인사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전까지 패스미스와 가끔은 카드를 부르는 거칠었던 플레이로 많은 팬들에게 아쉬움을 주던 이종성 선수의 이름이 마음에 남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팀이 부진할수록 그의 활약이 돋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중원에 서기 시작하자 상대의 길목을 막히고 우리의 길이 보였다. 거침없는 플레이에서 드러난 그의 투지는 동료들의 용기가 되어주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가장 강렬했던 경기는 11월의 FC서울을 상대하던 슈퍼매치였다. 그날의 이종성 선수는 왼팔에 주장 완장을 차고 나왔는데, 엠블럼만 있는 평소의 완장이 아닌 '북벌'이라고 쓰여있는 슈퍼매치만을 위한 완장이었다. 가장 지기 싫었던, 그리고 절대로 질 수 없었던 날에 북벌 완장을 차고 상암 월드컵경기장에 들어선 그는 정말 '종캡'이라는 그 타이틀이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이종성 선수는 밀려오는 상대를 막아내고, 지친 동료의 등을 두드리며 힘을 북돋아 주었다.
종캡의 진심이 온전히 드러난 순간이 있었다. 경기가 끝난 직후, 수원의 팬들이 가득하던 원정석 앞으로 걸어오다가 포효를 내지르고는 뒤돌아서 유니폼으로 눈물을 훔치던 순간이었다. 북벌 완장의 주장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그리고 얼마나 그가 수원삼성이라는 팀을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그라운드 위에서 궂은일을 도맡던 이종성 선수는 서포터석의 나를 알지 못하겠지만, 서로를 마주 보며 눈물 속에 부른 그날의 '나의 사랑, 나의 수원'은 내 마음 속에 영원히 각인되었다.
2023년의 시즌이 강등이라는 아픈 결과로 끝났음에도 이 두 선수가 유독 마음에 남은 이유는 그들이 보여주었던 헌신 때문이었다. 정말 사전 그대로의 의미로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에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그들의 헌신은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졌고, 그들을 향했던 탄식을 탄성으로 바꿨다. 그러한 그들에게 어떻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있을까.
결국 2023년의 끝에서 고승범 선수는 라이벌 팀에서의 제의를 거절하고 울산HD로 이적했다. 이적하면서 남긴 작별인사 속 말줄임표에서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그의 마음이 느껴져 나 역시도 가슴이 먹먹했다. 고승범 선수의 새로운 팀인 울산은 예외적으로 그를 환영하는 SNS 글에 수원을 상징하는 청백적 하트를 달아주었다. 수원 팬들의 고승범 선수를 향한 마음을 존중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선수가 그곳에서도 사랑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작은 위로가 되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후의 최후까지 내딛던 그의 달음박질에서 느껴지던 간절함이 무력해지던 연말에 그는 오히려 빛이 났다. 이제 울산의 고승범 선수는 새로운 팀에서도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올 만큼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이종성 선수는 부주장으로서 2024년을 시즌을 시작했다. 연패의 기간을 끊어내는 득점에 성공하며 모두의 환호를 받기도 했다. 감독과 전술이 전면 변경되면서 두 달간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다가, 다시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 출전하게 되었다. 감독이 직접 언급할 정도로 부단한 노력의 결과였다.
2023년 여름에 그들을 처음 보았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모습이 되어 내 마음속에 깊이 자리한 그들은 의미 없게 느껴졌던 헌신을 다시금 내 삶에 각인시켜 주었다. 당장의 보상이 따르지 않아도 꾸준히 몸과 마음을 다해 노력하고, 그러면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그 과정이 결코 가치 없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 덕분에 회사에서의 냉소와 귀차니즘이라는 마음속의 먹구름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보상과 상관없이 달성하고 싶은 목표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회사를 대신할 헌신의 대상을 찾지는 못했지만, 회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게 느껴졌다. 최선을 다해 끝까지 달리던 고승범 선수와 이종성 선수를 떠올리며 피식 웃고 절반쯤 올라온 귀찮다는 마음을 (완전히는 아니지만) 털어버리곤 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이 내심 대견하게 느껴졌다.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와 비슷한 표현으로는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진다’는 말이 있다. 2023년 연말의 고승범 선수와 이종성 선수는 비록 경기와 시즌 성적에서는 패배자였을지라도 수원의 팬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치를 아는 모든 K리그 팬들에게도 승리자였다. 무엇보다 내게는 잊었던 헌신을 다시 일깨워준 고마운 선수들이다. 앞으로도 그들의 헌신은 넘치도록 보답받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