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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우구데 Sep 20. 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힘

2024년의 시작: 트리콜로라는 이름으로 끝까지 이어가자

새로운 유니폼과 함께 시작된 2024년. 경기 전 코르테오부터 후반전의 우산돌리기까지, 오히려 더 열정적이 된 트리콜로의 응원
 전설의 빅버드 N석 닭강정으로 식사를 해결하던 날들이 많았다. 대승했던 날들의 전광판 사진을 보면 그날의 환희가 떠오른다.


강등되던 때의 기억과 진심으로 아꼈던 선수들과의 이별은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시간은 차근차근 흘러, 어느덧 새로운 시즌의 시작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염기훈 전 플레잉코치 겸 감독대행은 결국 2024년 시즌 수원의 감독이 되었다. 팔짱을 낀 채 무게를 잡은 사진 속 그의 모습을 보며 그가 그렇게 기사마다 읊어둔 수원을 위한 마음의 반만큼이라도 그의 능력으로 보여주길 바랐다.


하부 리그로 강등당한 팀은 바로 승격해서 올라오지 않으면 하부 리그에서 영영 지박령이 되어버린다는 말이에 대한 두려움과 강등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K리그2 우승을 통한 다이렉트 승격으로 치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K리그2는 거친 플레이와 노련한 감독들이 기다리고 있는 지옥이라는 것을 2023년에 본 몇몇 경기에서 절감했다. 그래서 “부족한 것은 경험뿐”이라는 염기훈 감독의 말은 불안하게만 들렸다. 그나마 “잘하겠다는 말이 죄송한 상황이기에 시즌 시작했을 때부터 마무리까지 잘해서 보여주는 것 밖에 없다”는 또 다른 수원의 레전드 출신인 양상민 코치의 진심 어린 각오는 작은 위로가 되었다.


그 불안을 달래준 것은 새 미디어팀이 준비한 동계 훈련 영상들이었다. 김주찬 선수가 후배들에게 ‘선배’라 불러달라는 모습과, 이상민 선수가 새로 온 형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에 잠시나마 웃을 수 있었다. 다른 구단들의 제안을 뿌리치고 수원에 남은 낭만의 카즈키 선수는 부주장으로 함께했다. 방콕에서 시작한 동계 훈련이 제주로 이어지는 동안 선수들은 밝게 웃었고,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다시 설렜다. 시즌 직전에 새로운 유니폼이 공개되면서, 지난겨울의 불안은 무색하도록 다시 경기장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익숙한 게이트를 통과해서 N석에 들어설 때의 설렘은 여전했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투맨의 ‘하나은행 K리그2’ (작년에는 K리그 1이었다)라는 말에 관중석으로부터 짧은 탄식이 나왔다. 개막전 상대인 ‘아산'을 넣어 응원가를 부르다가 ‘이런 팀까지 상대해야 하는가’라는 자괴감에 멈칫하기도 했다. 그래도 트리콜로는 준비해 온 하얀색 꽃가루를 휘날리며 "하얗게 눈이 내리던 그날" (수원의 가장 최근에 K리그를 우승했던 2008년의 겨울날)을 다시 꿈꾸며 큰 소리로 수원을 응원했다. 그 마음이 통한 걸까, 다행히 시즌 첫 개막전은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3월은 쉽지 않았다. 첫 경기에서 겨울 내내 훈련해온 전술의 핵심인 최지묵 선수가 시즌 아웃 부상을 당했고, 윤성 선수는 다이렉트 퇴장으로 두 경기를 결장하게 되었다. 두 번째 경기에서는 또 다른 핵심이었던 박상혁 선수마저 장기 부상을 당하며 패배했다. 상대의 전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준비한 전술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점이 패배로 드러나며 염기훈 감독에 대한 우려는 현실이 되어갔다. 두 경기 만에 승격을 장담하던 감독의 포부는 무너졌고, 유력한 경쟁 상대인 서울 이랜드와 부산에게 잇달아 패배하며 우리는 '압도하는' 팀이 아닌 '압도당하는' 팀이 되었다. 승격을 위해서는 패배를 줄여야 했기에 한 번의 패배도 뼈아팠다. 꽃샘추위 속에서 팬스토어에 줄을 서 한정판 벚꽃 머플러를 구입한 것이 3월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작년의 강등과 3월의 연이은 패배에도, 발걸음은 여전히 경기장을 향했다. 여섯 번째 라운드에서는 리그 우승 후보인 전남과 맞붙게 되었다. 직관메이트와 “우리는 그냥 노래하러 온 거야”라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N석에서 응원을 시작했다. 발디비아 선수까지 투입된 상대는 강력했다. 하지만 동계 훈련 영상부터 가장 눈여겨보았던 손석용 선수부터 어쩐지 짠해 보였던 김현 선수, 그리고 겨울 이적시장 마감을 몇 시간 앞두고 합류한 이시영 선수까지 모두가 득점에 성공하며 경기는 5:1 대승으로 마무리되었다. 포즈난 응원으로 모두가 어깨동무를 하고 뛰며 부른 ‘오블라디’의 순간은 아찔한 환희로 남았다. 직관메이트와 나도 처음으로 어깨를 맞대고 뒤돌아 뛰며 그 기쁨을 함께했다.


여덟 번째 상대는 지지대 더비의 라이벌, 안양이었다. 시즌 시작 전 백동규 선수의 이적 문제와 안양 팬들이 수원 엠블럼을 밟고 지나가게 한 도발로 경기는 시작 전부터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이 경기는 쿠팡플레이 스페셜 중계로 K리그2에서 최초로 방영되었다. 안양의 유병훈 감독이 염기훈 감독의 전술을 꿰뚫을까 하는 불안함을 안고 원정석에 자리 잡았다. 예매가 빠르게 마감되는 바람에 평소 앉던 코어 대신 원정석 끝자리에 앉게 되었다. 먼지가 쌓인 의자를 닦아 가방을 올려두고 응원에 집중했다. 멀리 있는 콜리더와 박자가 어긋날 때마다 직관메이트와 함께 박자를 맞추고, 주변 서포터들을 독려하며 열심히 뛰고 노래했다. 청백색 풍선을 흔들고 휴지폭탄을 던지며 응원의 열기를 더했다.


경기는 김주찬 선수가 이른 시간에 터뜨린 선제골로 시작해 손석용의 패스와 김현의 추가 득점으로 이어졌다. 잠시 내 분노의 대상이었던 뮬리치 선수도 골을 기록하며 또 한 번 포즈난 응원이 펼쳐졌다. 실점이 있긴 했지만, 이번에는 등을 돌리지 않고 당당히 앞을 보며 응원을 이어갔다.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선수들을 향해 치토스 봉투가 쏟아졌다. 안양FC의 전신인 LG 치타스 시절부터 이어진 전통이었다. 김현 선수는 그중 하나를 뜯어 과자를 한입 가득 넣으며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4월의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인 무승부로 끝나며 연승 행진이 끊겼지만, 무패로 마무리한 4월의 기록은 올해의 수원은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품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희망이 경기장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게 한다.




직장에서의 업무는 '그렇기 때문에'라는 타당한 논리와 명확한 이유로 시작해 다양한 형태의 이익으로 마무리된다.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팀원들부터 회사, 그리고 고객까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이득이 없으면 일은 진척되지 않는다. 그러한 직장 생활을 한 지 벌써 십 년이 다 되어가고,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사고방식에 기반한 효율적인 움직임을 잘 구현해 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에서 일의 기준은 타당성과 효율성이었다. 하지만 축구장의 나는 그와 정반대로 움직였다. 비효율적이고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이유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023년에 꼴찌를 해서 강등된 팀을 응원한다는 시작부터가 이상했고, 경험도 능력도 부족해 보이는 감독과 변변찮은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도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4월 말까지 총 아홉 경기를 했지만 여섯 경기만을 이긴 성적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원정 경기를 보러 집에서 한 시간 이상 걸려 낯선 곳에 가고,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는 식사를 하며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일정은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관메이트와 나는 아예 경기 일정에 맞춰 휴일 계획을 세우고, 예매 시간에는 회사에서 데이터가 잘 터지는 곳으로 이동해 정시에 예매창에 접속했다. 경기 당일에는 아침부터 준비하고 출발해선 경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두 시간 넘게 있는 힘껏 목소리를 높여 응원했다. 승리로 끝나는 날이 많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직관메이트를 포함한 최소 수천 명의 트리콜로들은 응원가 가사처럼 '트리콜로라는 이름으로 끝까지 이어가고' 있었다.


직장 생활은 '그렇기 때문에'라는 타당성과 효율성에 지배당했지만, 축구장 서포터로서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의해 움직였다. 질 것 같고, 상대에게 조롱당할 것 같고, 경기를 보다가 복장이 터질 것 같은 순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을 찾는 서포터들을 움직이는 것은 계획되고 보장된 이익이 아닌 강력한 의지와 열정이었다.


회사에서는 ‘주어진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내 안에서는 어느새 서포터석에서 단단하게 키워온 의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나를 지탱해주기 시작한 의지는 전혀 상관없어 보였던 직장에서의 나까지 그 힘으로 버티게 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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