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만 있는 막막한 세상
질문으로 희망을 이야기하자
인터뷰에서, 한 늙은 작가가 화가 난다고 했다.
말하지 않으면 화가 나서 말을 했는데, 더 화가 난다고.
몸을 밀어 글을 쓰고 있다는 작가는 이야기했다.
‘해결해야 하는 것을, 해결할 수 있으면서도, 해결하지 않고 있는, 인간 사회의 모순들’이 그를 화나게 하는 것이었다.
살릴 수 있고 먹일 수 있는데, 고칠 수 있고 나아지게 할 수 있는데, 하려 한다면 할 수 있으면서도 어찌 된 일인지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죽고, 다치고, 소외되는 어제는 오늘로 반복되고 확대된다.
뉴스와 기사를 보면 답은 세상에 넘쳐 난다.
요약하면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던, 말만 하는 사람들은, 남의 오답을 물어뜯기 바쁘다.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싸구려 합성 솜 같은 답들로 채워진 세상은, 빵빵하기만 할 뿐 따뜻하진 않다.
답을 내놓으라 다그치는 세상 (내 답은 듣지도 않을 거면서)
답대로 하지 않는다고 쫓기는 세상 (정답인지 따져보지도 않고서)
남이 답 내놓을 때까지 넋 놓고 있는 세상 (답 나와도 넋 놓고 있기도)
그 와중에 말로 좋은 세상을 약속했던 사람들은 다시 말로써 스스로를 지키기에 바쁘다.
NO 답인 세상이다.
그렇다면, 어쩌면
우리는 답이 결핍한 것이 아니라, 질문이 빈곤한 것은 아닐까?
질문은 가능성을 열어준다. 의미를 생각하며 과정을 걸어가게 한다.
의미가 와닿으면 감정의 불쏘시개를 넣을 준비가 된다.
감정의 온기가 들어가면 우리의 몸이 가볍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질문은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AI가 다 해주는 세상이 코앞이라 한다.
질문은 우리가 해야 한다.
희망이 필요한 것은 우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