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는 1941년 11월 26일 (음)에
경북 경산에서, 3남 4녀 중 6째로 태어나셨고,
아버지가 5살이 되던 1945년에 조선이 해방되면서
그때까지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가족들이 있는 경산으로 돌아오셨으나,
바로 이듬해, 할아버지가 폐병으로 돌아가셔서
할머니가 홀로 힘들게 7남매를 키워오신 걸로...
불과 5년 전까지의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2018년 설날.
남동생의 허리 디스크 수술로 인해
내가 아버지의 운전 기사를 자청하면서,
거의 30년만에 찾게 된 아버지의 고향에서는
전혀 뜻밖의 가족 역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명절 인사차 방문했던,
아버지의 큰아버지의 막내 아들이신 분 -
(복잡하게 들리지만, 결국 아버지의 사촌 동생)
으로부터 전해듣게 된, 이야기인즉슨...
아버지의 가족 모두가 일본에서 살았었고,
우리 아버지는 아예 미야자키 현에서 태어나셨으며,
해방이 되고서야, 가족들이 모두 함께
할아버지의 형님 (= 아버지의 큰아버지)이
살고 계신 경산으로 돌아와서, 그 집 문간방에,
(결국 말씀해 주신 분의 아버지 집에) 기거하며
함께 살았었다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내가 알고 있었던 것과 같았다.
아버지의 고향이자, 나의 본적이
사실은 일본의 미야자키였다니!!!
일단의 충격이 가시자, 문득 궁금해졌다.
엄혹했던 식민지 시대에,
어떻게 일가족 모두가 일본에 있을 수 있었을까?
혹시 생계형 친일이라도 하셨던 건 아닐까?
그런데 그때를 기억하고, 그 내막에 대해
증언해주실 수 있는 분들은 이미 다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너무 어렸어서 전혀 기억에 없으시단다;;;
정말 기억하지 못하시는 걸까?
아니면 기억하고 싶지 않으신 걸까?
궁금한 건 절대 못 참는 나는 서울로 돌아와서,
당시의 일본 미야자키 현에 대해 책도 사서 읽고,
나름 공부도 좀 해보았지만,
오히려 점점 더 미궁으로 빠지고 말았다.
당시의 미야자키는 전쟁의 상흔도,
조선인 강제 징용의 흔적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단군 설화와 같은, 일본의 건국
설화의 배경이 되는 신들의 마을인 미야자키.
언젠가 꼭 미야자키에 한번 다녀오고 싶다.
거기에서라면 무언가, 비밀을 풀 수 있는
작은 단서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