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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55년지기 친구와 함께 한 추억

by 황마담
가운데가 엄마와 나. 제일 오른쪽 단발머리가 열이 이모다.

이 사진에선, 제일 왼쪽이 열이 이모다.


본명이 광열이라-

우리에게 열이 이모라 불리웠던 이모는,

엄마의 중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대부분 전업 주부였던,

엄마의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대학을 나오고 직장에 다녔던 열이 이모는..


그래선지, 늘 깔끔하게 긴 단발머리에-

정장을 주로 입었고, 그런 이모의 스타일이

어린 내 눈에는 꽤나 근사해보였다.




가끔, 이모가 우리 집에 놀러오는 날에는

양손 가득- 우리의 선물을 사들고 왔기에,

이모의 등장은 언제나 반가울 수 밖에 없었고-


대신, 우리 집 밥상에는 늘..

오이 소박이가 수북하게 놓여졌다.


열이 이모는 우리 엄마가 만들어준 오이 소박이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고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엄마의 오이 소박이를 보면,

열이 이모가 생각난다.)




눈이 너무 높아서 였을까...?

열이 이모는 오래도록 결혼을 못했고-


친구 중에 유일하게 싱글인 이모를

걱정하는 엄마를 보면서, 그저 따라서..

이모를 걱정했던.. 어린 날의 내가 떠오른다. ㅋ


심지어 꽤 오랫동안..

잠들기 전, 내 기도의 내용 중의 하나가-


“우리 열이 이모.. 제발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 좀 하게 해주세요.” 였었다. ㅋㅋㅋ




기도가 통해서 였을까...?


내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

드디어 열이 이모가 결혼을 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가 정말로 기뻐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단지 기뻐할 일만은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결혼을 한 이후로는,

거의 이모를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 후에야,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제대로 알게 되었는데-


이모가 결혼한 분이 재혼으로..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아들 둘을 키우고 있었고-


그래서 이모가 그 아들 둘을 키우느라,

꽤나 고생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물론, 다 커버린 두 아들도-

새엄마와의 생활이 녹록치만은 않았으리라..


그럼에도, 우리의 멋진 열이 이모는-

다 잘 극복하고, 이모가 낳은 아들 하나까지..

모두 아들 넷(?!)을 거느리고, 잘 살고 계신다^^ㅋ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열이 이모가 낳은 아들이 결혼을 했다.


반드시 참석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엄마는

안타깝게도, 건강 상의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고-


내가 엄마를 대신해서,

우리 집 대표로 결혼식에 참석하게 됐는데..


나와 함께 했던 두 이모는, 우리의 옛 사진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그리하여...

무려 45년 전의 기억을 소환하며,

아주 소중한 사진을 함께 남길 수 있었다.



45년 전과 후.


엄마 품에 안겨 있던 저 꼬맹이가 어느 새,

엄마의 자리를 대신할 정도로 자라서-


그 때의 엄마보다도 스무살이나 더 먹어버렸고,

심지어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되었으니-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 있으랴.......





그래도, 이렇게 함께 오랜 추억을 소환하면서-

새로운 추억을 하나 더 만들 수 있었음에..

정말 눈물겹게 감사했고...


그래선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이 사진들은, 볼 때 마다 울컥해지는 것 같다.


앞으로 다시 45년 후는..

우리 모두에게 절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ㅋ


엄마도, 이모들도... 모두 모두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할 수 있길...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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