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을 한달여 앞두고,
PIFF 영화제 사무국 사무실은..
기존 수영만 요트 경기장 본부 건물에서,
남포동 인근의 부산 데파트 건물로 이사를 했다.
도심으로 나온 만큼-
교통도, 먹거리도, 즐길 거리도,
엄청 편안해지고 풍성해졌으나..
모든 것은 그림의 떡이었을 뿐.
영화제를 목전에 둔만큼,
사무국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정신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영화제 초청 팀에서,
한국 초청을 담당했던 나도 마찬가지.
엄청나게 몰아닥치는 업무량의 융단 폭격에
거의 떡실신을 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데..
아침부터 밤까지의 일반적인 근무 시간에는,
책상 위의 전화기 3대가 끊임없이 울려대는 통에..
천 명이 넘는 초청 게스트들과 관련된
각종 업무와 민원을 처리하느라,
전화기와 씨름을 해야 했고..
더 이상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 밤 시간이 되어야만
비로소, 밀려 있던 서류나 문서 작업 등..
내가 할 일들을 정리하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을 전부 끝낸 새벽에는
초청 게스트들의 아이디 카드 제조까지!!
자원봉사자들과 같이 해야 했으니;;;
(그 때의 아이디 카드는 직접 출력해서,
커팅하고, 증명사진을 붙인 후에, 코팅까지..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켁!)
퇴근은 커녕-
사무실에서 겨우 1-2시간 뿐인 쪽잠을 자며,
정말 미친 듯이 일만 해야 했다. ㅠㅠ
(지금 생각해봐도, 도대체 어떻게 버텼는지..
진정 꿈만 같은 기억이다;;;;)
솔직하게,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자면..
완전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도저히 맨 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나머지..
사무실에서 야밤에,
깡소주를 홀짝이며 일을 하기도 했는데..
책상 아래에 일부러 빈병을 쌓아두고서는-
자꾸 일정을 바꾸면서 속썩이는 게스트들에게,
화염병을 만들어서 던져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물론 실제로 게스트들에게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하지는.. 절대 못했다;;;ㅋ)
그래도 그 시절.
국제 영화제에 대한 열망과
나름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
그리고, 같이 고생하는 스탭들과
자원봉사자들 간의 끈끈한 우정과 의리.
그런 전우애(?!)가 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었던 것 같은데..
특히, 함께 해줘서 너무나 고마웠던!!
멋진 자원봉사자들이 있었으니..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 이어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