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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Jun 08. 2024

(책) 과녁을 향하는 문장들_『스무 해의 폴짝』



시를 읽으면 시시한 단어들을 입 안에 담고 굴려본다.

나도 시를 쓸 수 있을지 몰라. 이 시시껄렁한 말들이 시가 될지도 몰라.

뱉어져라. 선율이 되어 뱉어져라. 아름답고 매섭게 뱉어져라.


시인 권혁웅은 시는 인물의 사연을 곡절曲折로, 어조의 꺾임으로 품는다고 말한다.  


"첫 구절이 던져지고, 그다음 또 그다음 구절에서 꺾이는 것, 예측 가능성을 배반하는 것."

- 『스무 해의 폴짝』 379쪽, 권혁웅


굽은 길로 독자를 끌고 들어가 이내 그 예측마저 꺾어버리는 시는 가슴을 깨부수고 들어온다. 망설임 없다. 놀라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리하여 시시한 단어들을 입 안에서 굴려보는 일은 시를 읽고 한참이 지난 후의 일이다. 커다래진 눈을 몇 번이나 껌뻑이고 나서, 감겨진 눈을 파르르 떨고나서 아, 내가 시를 맞았구나, 정신을 차리고 난 뒤에야 시인을 질투한다.


나에게 들이닥친 일이 당신에게도 이내 찾아들었을 때, 그것을 과녁 삼는다면

나의 에세이가 그 표적의 원을, 나이테 같은 가는 선들을 드러내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다.

나의 서툰 소설이 완성된다면 우리가 치뤄낸 그 일들이 겨눈 과녁을 다른 이들의 기억에 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심심히 깊은 곳에 심어두어 후에 그 또한 굽은 길을 마주했을 때 우리의 꺾인 이야기를 동무 삼을 수 있도록.

만약 내게서 시가 뱉어진다면 적확한 곡절 한 마디가 그 견고한 과녁을 깨부수기를. 조용히, 쩍, 하고 금을 그어 산산이 깨어 부수기를.


문학을 찬양하며, 그러하니 살아보라고 말하는 문학을 찬양하며,

미미한 나의 문장들에게 우리도 어쩌면 곡절 위의 문학일지 모른다고, 내가 너희 안에 나의 굽이짐을 담아 꺾인 모습 그대로 세상에 내놓는다고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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