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란 뭘까?』, 유진목
오늘은 종일 글을 썼습니다. 얼마큼의 실적을 냈다는 보고서를, 그 이상의 실적을 내겠다는 계획서를 쓰느라 하루를 보냈습니다. 억울하다 억울해. 정말이지 억울한 하루입니다. 오늘 쏟아낸 필력으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플롯을 짜냈다면, 매력 철철 흘러넘치는 인물을 만들어냈다면, 간드러지는 묘사를 풀어냈다면 얼마나 근사한 하루였을까요. 헤벌쭉 웃으며 잠에 들 겁니다. 내일 써야 하는 홍보문구 걱정에 침대가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게 아니라 말이죠.
초원에 낮게 몸을 엎드리고 나를 한순간에 덮칠 수도 있는 동물들을 기다리는 직업을 갖지 못한 나에게 실망했다. - 『재능이란 뭘까?』 19면, 유진목
네, 시인님. 저도 저에게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초원의 코끼리를 관찰하는 직업을 갖지 못해서, 오목눈이를 연구하는 직업을 갖지 못해서, 기똥찬 외서를 기가 막히게 번역해 내는 직업을 갖지 못해서, 몇 달씩 몇 년씩 소설 쓰는 일에만 빠져 사는 직업을 갖지 못해서 저에게 실망입니다.
초등학생 시절, 저를 가장 곤란하게 했던 것은 '특기'였습니다. 취미는 아무 것이나 적어내면 그만이었지만 특기는 양심이 발동하는 항목이었습니다. '이건 내가 좀 잘하지!' 뭘 하나 생각해내도 '네가 정말 그걸 잘해?' 자체심의 앞에 서면 주춤. '응, 아닌 거 같아.'로 결론.
요란한 빈수레와 고개 숙인 벼의 집단 세뇌교육을 받고 자란 어린이가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활짝 열어 그 재능과 함께 쑥쑥 자라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만일 제가 요란한 빈수레가 신난다, 잘 익은 벼가 보기에도 좋다 같은 가르침을 받았다면 일찍이 저의 재능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요? 나의 재능을 진작 알았다면 지금, 멋진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여직 재능을 알지도 못하면서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좋아하면서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지 못한 저에게 실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일은 은근한 자랑이 담긴 홍보문구와 상사의 명을 거역하겠다는 검토결과서를 써야합니다. 제 안에 부디 장르 불문, 독자를 사로잡는 글쓰기 재능이 존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