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예찬』, 마르크 드 스메트
눈 덮인 높은 산들이 둘러싼, 큰 침묵만이 존재하는 광대한 흰 벌판 한가운데 홀로 있게 된다면.
케네드 화이트는 『고요한 묵시록』에서 아메리카 인디언의 겨울을 말합니다. 많은 것이 사라진 그 계절은 인디언에게 부재의 계절이 아니라 '온갖 비밀들의 계절'이라고, 눈 덮인 풍경의 텅 빈 침묵은 활짝 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주는 계절이라고 말합니다.
『침묵 예찬』을 다시 읽으며 침묵만이 있는 겨울의 흰 벌판, 그 한 가운데 있는 저를 상상합니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꽤 괜찮을 것 같아요. 아니. 정말 언제까지고 침묵 안에서 평온할 수 있을까요. 때를 놓치면 안 되는 것들이 하나 둘 생각나기 시작할 겁니다. 지금 하면 좋을 것들도 생각날 거고요. 조금씩 침묵하는 시간이 아까워지겠죠. 결국엔 깨트리고 말 겁니다.
요즘 저는 삶을 이어가기 위한 중요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습니다. 커다란 이벤트가 있는 것도, 큰 결심을 한 것도 아니지만 신기하게도 비슷한 열쇳말들─이를테면 '침묵' 같은─이 자꾸만 제 앞에 나타는 걸 보면 확실히 어떤 지점을 통과하는 중인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삶의 중심이 될 정언은 바깥이 아니라 제 안에서 고요한 가운데 목소리를 낸다는 문장을 읽었습니다. 그 목소리를 놓치고 싶지 않은데. 목소리를 온전히 듣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목소리를 덮어버리는 소란한 소음부터 제거해야겠죠. 목소리가 존재할 수 있는 공간도 비워두어야 할 겁니다. 그러고보니 침묵에 잘 어울리는 수식어 '텅 빈'은 소리뿐 아니라 공간까지 담고 있는 말이네요.
『침묵 예찬』은 10여 년 전, 깊이 읽지 못하고 활자만 넘겨 읽었던 책입니다. 바깥으로 향한 에너지가 가득했던, 폭발하는 경주마처럼 일하고 운동하고 공부하던 때였습니다. 일상과 어울리지 않는 이 책을 선택했던 건 아마도 어떤 위태로움을 감지했기 때문이었겠지만 그 때의 저는 솟구치고 뻗쳐나가던 에너지의 도파민에 중독되어 침묵, 그것을 감각할 고요도 담아둘 공간도 없었습니다.
십년이 지난 지금, 왜인지 모르겠지만 중력에 순응하게 된 것 같아요. 날카롭게 긴장되어 있던 눈매가 내려오고 끝 모르게 팽창하던 에너지는 이제 모두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편해요. 가볍습니다. 땅 가까이 안착할 수 있을 것 같아 안도합니다. 여전히 가끔은 빠르고 요란하게 무언가를 해야할 것 같아 조바심 날 때가 있지만 불필요한 소란과 존재로 내 안을 채우고 싶지 않습니다. 다행이에요. 이 책, 이 문장─'아마도 우리가 잊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들 각자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침묵의 모든 지혜를 몸 안에 담고 있는 존재들이다.'─을 읽은 제가 되었으니 단 얼마큼씩이라도 침묵할 수 있는 제가 되어가고 있는 중일 겁니다. 광활한 고요, 그 안에서 평온한 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