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사표는 못 냈지만 기쁜

『기쁨의 책』, 로스 게이

by 이우주

얼마나 기쁘면 책 제목을 '기쁨의 책'이라 지었을까요.

로스 게이는 7월의 어느 날, 이런 규칙을 정합니다. 1년 동안 매일 기쁨을 하나씩 쓸 것. 자신의 생일인 8월 1일에 시작해 이듬해 같은 날 끝낼 것. 초고는 빠르게 쓸 것. 손으로 쓸 것.

그가 매일 누렸던 기쁨들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식료품을 한꺼번에 옮기지 않는 비효율성, 정해놓은 약속 깨버리기, 모르는 사람들의 손인사, 무화과 묘목 세 그루를 비닐봉지에 담아와 심는 것, 윙윙대며 스쳐 지나가는 벌새, 판다 모자가 달린 옷을 입고 비행기 통로를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기.


오래 전부터 좋아했거나 불현듯 좋아진 것들을 매일 쓰며 게이는 그 해 자신이 여행을 많이 다녔고, 카페에서 자주 에세이를 썼으며, 엄마를 종종 마음에 걸려했고, 인종차별에 신경쓸 일이 잦았고, 정치와 대중음악과 책, 꿈, 텃밭을 수시로 떠올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기쁨의 에세이를 쓰는 일이 '기쁨 레이더'를 만들어 냈고 '기쁨 근육'을 키웠다는 것도 깨닫습니다. 기쁨 레이더와 기쁨 근육 덕에 기쁨을 알아갈수록 앞으로 알아갈 기쁨이 더 많아질 거라는 것, 심지어 기쁨들이 자신을 부르기까지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일상에 당연히 슬픔과 두려움, 고통과 상실이 있었지만 기쁨이 훨씬,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도요.



오늘 저의 기쁨은 조카가 그려준 작은 그림입니다. 이모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 작고 여린 손으로 연필을 쥐고 한껏 골똘한 얼굴을 한 채 공들여 스누피를 그려준 우리 조카. 그 큰 마음을 받았다는 것이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을 만큼 사무치게 기뻤습니다.


이 짧은 글 한 편을 완성한 것도 기뻐요. 두어 달 전, 큰 프로젝트를 맡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글쓰기를 멈추었지만 실은 쓰고 싶지 않았거든요. 거스를 수 없는 이유들─일을 그만둬버리는 것, 억지로 맺고 있는 관계를 무시하는 것, 또다른 숱한 핑계들─을 거스르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고작) 글쓰기를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불퉁한 마음들을 내버려두기도 하고 바라보기도 하면서 다시 첫문장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고까운 마음이 들어 '기쁨'의 책을 읽는 것도 멈추었었어요.) 여전히 사표는 내지 못했고, 꼴보기 싫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첫 문장을 쓰는─을 다시 해낼 수 있을 만큼의 마음은 되찾았으니 기뻐하기로 했습니다. 네, 기쁜 일이에요.


오늘 무엇에 기쁘셨나요. 작은 것에 소소하게 기쁘셨다면 오케이, 근사한 하루를 보내셨네요.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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