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중앙시장 연산보리밥
촬영 일은 오후 2시에 잡혀 있었다. 대전에 도착한 것은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고, 내겐 약 두 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역 앞에 큰 시장이 있다던데... 이따 돌아갈 때 소주라도 한잔해야겠다.'
생각하고 구경이나 하자 했다. 대전 중앙시장은 생각보다 컸다. 어디 만만한 순대국밥집은 없나 둘러보던 차에 작은 보리밥 집이 눈에 잡혔다.
"들어오세요~ 보리밥 맛있어요~."
나이가 지긋이 들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불렀다. 오라는데 무시하고 가자니 배가 약간 허전했다. 발걸음은 저절로 가고 손에 들고 있던 가방과 등짐은 슬그머니 내려앉았다.
가게 이름이 연산보리밥이니 보리밥이 '본캐'요 잔치국수는 '부캐'일 것이었다.
근데 보리밥은 뭐... 깡보리밥은 아니지만 많이 먹어봤고... 오랜만에 잔치국수나 먹어보자고 주문을 했다. 사실 난 한때 잔치국수 장사를 했다. 그걸 매일 먹었는데... 지금은 1년에 하루라도 거의 먹는 날이 없다.
아주머닌 밥공기도 아닌 국그릇도 아닌 진공스텐 그릇에 뭔가를 한두 국자 부어 주셨다. 아주 뜨끈한 국물이 또 아주 밍밍했으나 구수하면서도 뭔가 친숙한 입자감이 있었다.
'메밀면 삶은 면수인가?'
'잔치국수에 메밀면을?'
만화 주인공 교강용처럼 생각했다.
수저로 바닥을 훑으니 오호라! 누룽지가 나온다. 허허... 숭늉맛도 잊고 산다.
숭늉을 아주 잘도 맛있게도 먹으니깐 아주머니가 더 드릴까요? 하셨다.
"아뇨. 제가 지금 배가 아주 부르면 안 돼요."
(짐도 많고 화장실이 급해지면 곤란하답니다.)
정중히 거절을 하니 또 다른 밥공기도 아닌 국그릇도 아닌 진공스텐 그릇에 뭔가를 한두 국자 부어 주셨다.
"된장국도 맛있어요. 드셔보세요~"
어허... 재빠른 손놀림에 거절도 하기 전에 국그릇이 눈앞에 와있었다.
보리밥에 나오는 국물인지 진한 된장국물이 거의 찌개 수준이었다. 밥이라도 한 그릇 달래 후적 후적 말아도 금세 먹어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잔치국수를 주문한 몸. 그럴 수는 없었다.
'뭐냐... 배고팠던 거냐?'
금세 두 공기를 싹 다 비워버렸다. 자꾸 더 주신다는 걸... 말리느라 애썼다면 거짓말이고 서너 번은 거절을 했다.
칼칼한 거 좋아하냐는 물음에 (좋아는 하지만) 땀이 많아서 괜찮습니다 했다. 그리고 잔치국수가 나왔다.
참 그리고, 처음 이 식당엔 아주머니 한 분이 보리밥을 드시고 계셨는데 내가 자리에 앉고 나자 손님들이 물밀듯이 들이닥쳤다. 그래봤자 서너 명이었지만 난 왠지 그런 거 느꼈다. 내가 손님 부르는 손님을 몰고 다니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던가...
잔치국수는 칼칼하지 않게 만드시느라 그런 건지 보기에도 밍밍해 보였다. 국물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고, 간은 싱거운 편이었다.
"잔치국수는 콩나물이랑 열무김치랑 같이 먹으면 맛있어요~"
나는 바로 눈앞에 있는 반찬그릇에 집게를 들어 콩나물과 열무김치를 내 그릇에 옮겼다.
'그렇지... 나는 콩나물을 좋아하지. 또 열무김치는 못지않게 좋아하지?!'
콩나물과 먹는 잔치국수는 아삭한 식감이 더해지니 씹는 맛이 좋았다. 하지만 콩나물을 넣어 먹는다고 해도 간이 맘에 들게 딱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담, 열무김치지!'
그랬다. 간에는 열무김치가 맞았다. 간간하고 풋풋한 열무김치의 짠맛이 잔치국수의 부족한 간을 채우기에 딱 좋았다.
굳이 맛을 평가하자면 떨어지는 맛은 아니나, 뭔가 감칠맛 넘치는 뜨끈한 국물의 잔치국수를 원한다면 그렇지는 않다.
평범한 일상과도 같은, 어디서고 맛볼 수 있는 여느 포장마차의 잔치국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맛이었다.
근데 다시 '연산'을 찾겠는가, 누군가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겠다. 자꾸 뭔가를 더 먹이려고 하는 시골 큰 누나 같은 또는 막내이모 같은 사장 아주머니의 은근한 말투가 다시 듣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