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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에서 인류까지 39 지구의 탄생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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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리데이

우주에는 목적이 없다. 모든 것이 우연의 부산물일 뿐이다. 목적이란 것은 자연의 속성이 아니라, 단지 다차원의 언어를 구사하는 인간의 창작물에 불과하다. 별과 은하가 지배하는 이 찬란한 우주도 결국은 기괴하다고 할 정도의 우연에서 출발하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빅뱅 후 10-12초 경, 빛에너지가 물질과 반물질(쿼크와 反쿼크)로 나누어졌다가 다시 빛으로 융합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10억 쌍 중 하나꼴로 쿼크 즉 물질이 남게 되는 이상야릇하고도 기적같은 우연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 우연은 결국 우리 우주를 물질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물질을 재료로 별이 탄생하고 은하가 생성되었으며, 우리 태양계와 지구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인류가 생물학적으로 현생인류로 진화해 오는 과정과, 인류의 문명이 탄생하게 된 과정에도 기적같은 우연의 개입이 작용했다. 1200만여 년 전 때마침 아프리카 동부지역에서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가 생성되면서 한 무리의 원숭이들이 첫발을 땅에 디디며 인류로의 진화의 여정을 시작하였다.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 : 대지구대, 아시아의 시리아에서 동아프리카의 모잠비크까지 이르는 대협곡, 길이 5,000킬로미터 폭 50킬로미터 정도. 약 1200만 년 전에 생성되었는데 지구대의 동쪽이 고지대로 변하면서,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 인류가 탄생했다.]

알 수 없는 메커니즘에 의한 작용으로 인지혁명을 완수한 인류는 홀로세의 마지막 간빙기를 맞이하며 희한하게도 지구촌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문명이란 것을 일구기 시작했다. 이보다 훨씬 앞선 24억 년 전 무렵 발생한 산소급증사건은 생명체의 활동에 고효율을 불어넣어 주며 생물다양성을 안겨주는 한편, 나아가 지극히 단순하던 생명체가 다세포‧대형 생명체로 진화해 갈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그보다 더 앞선 40억 년 전 무렵에는, 비록 아직까지 논란이 있지만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최초의 생명이 탄생하기도 했다. 더 근원적으로는 지구가 태양계 내에서 정확하게 골디락스 존에 위치하고 있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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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찍은 지구 사진>

보이저 프로젝트의 화상팀장이자 ‘코스모스’의 저자인 칼 세이건의 지시에 따라 찍은 사진이다.

보이저 1호가 명왕성 궤도를 스쳐 지나갈 무렵, 카메라의 각도를 태양이 있는 쪽, 즉 지구 쪽으로 방향을 돌려 찍었다. 원안에 보이는 작은 점이 지구다. 우리가 사는 보금자리 지구는 창백하고 푸른, 그리고 아주 작은 하나의 점이었다.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고 우주를 탐구하며 미래라고 하는 고도의 형이상학적인 개념을 만들고선, 또 그 미래를 걱정하는 우리 인류에게는 이 모든 것이 커다란 축복이다. 이제까지의 여정에서 단 하나의 연결고리라도 생략되었더라면 우리는 지금 여기에 없을 것이다. 축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까지의 과정에 이 모든 것들이 비록 우연이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우리는 커다란 축복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지구라고 하는 축복의 장(場)에서 말이다.

돋아나는 새싹과 지저귀는 새와 산들바람과 흘러가는 구름, 그리고 그 아래에 펼쳐진 초원 위를 뛰어다니는 짐승들과 맑은 물속을 노니는 물고기들과 꿈을 이야기하며 서로 사랑을 나누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지금 이 순간에도 펼쳐지고 있는 우리 사는 지구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지각이라 불리는 단단한 암석층과, 바다와 호수와 강을 메우고 있는 물과, 그것들을 포근히 감싸고 있는 맑은 대기와, 그것들을 영롱하게 채우고 있는 생명들로 이루어진 지구는 말 그대로 축복으로 가득찬 생명의 별이다.

46억여 년 전 은하계 변두리를 떠돌던 한 무리의 성운들이, 이웃한 초신성 등의 간섭을 받아 원시행성계 원반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 우리의 원시 지구가 태어났음을 우리는 앞선 <태양계> 편에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우리 지구의 또 다른 모태인 테이아가, 먼저 자리잡고 있던 우리 원시 지구와 합체하면서 지금의 우리 지구가 윤곽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선 태양계 내의 수많은 떠돌이 미행성과 소행성 등의 융단 폭격을 받아가며 지구는 점점 더 지금에 가까운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하나의 행성으로서의 위상을 갖춘 지구는 내부 또한 핵과 맨틀과 지각이라는 안정된 구조를 갖추기 시작했으며, 대기층을 형성하고, 바다를 만들며 오늘날과 가까운 모습을 띠게 되었다. 우리의 보금자리로서의 지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지구는 다양한 지질시대를 거치며 풍성하게 자신의 모습을 갖추었고, 훗날, 판게아(Pangaea)라 불리게 된 원시 대륙을 분리시키며 대륙의 모양을 오늘날처럼 만들어 놓았다. 마침내 완전한 지구가 탄생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지구로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의 보금자리인 지구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의 지구는 이제까지와 같은 행성으로서의 지구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자 보금자리로서의 지구다. 이제 지구 탐험이다.


<'지구의 윤곽 - 지구의 형성'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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