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집 앞

18. 아이 엄마가 된 백합

by 금봉



리리카의 집은 문두스에서

한 블록 지나 가까운 곳으로 이사했다.

좁은 곳에서 방이 두 칸짜리로 이사할 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나름 이루어지지 못할 꿈인지 알면서

밥그릇 하나 더 구매할 때는

혼자 키득거리며 웃기도 했다.

그녀는 알고 있다.

마호가 얼마나 급한 마음으로

이곳에 도착할지, 당연히

마호의 뱃속에는 물 한 방울도

있지 않을 것이다.


흔히 구매하는 만들어진 된장국이지만

꽤 그럴듯한 냄새가 났다.

마호가 좋아하는 흰 두부도

잊지 않고 넣었다.

볶은 채소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백합을

유리병에 미리 꽂아 두었다.

그 향기가 얼마나 진한지

된장국 냄새와 섞여 풀풀

집 안을 날아다녔다.

리리카가 계속 반복해서 숫자를 세었다.


“오 사 삼 이 일,

땡 에이 너무 빨라,

다시! 오 사 삼 이 일…”


리리카는 계속 반복했다.

몇 번을 반복한 끝에 일,

하는 순간 마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역시 숨소리가 가쁘다.


“학학, 하악.”


마호는 문을 열자마자

리리카가 문 앞에 있을 줄 알았는지

놀라지도 않고 더 이상 앞서 나가지 않고

그녀를 보고 웃는다.

아주 오래된 버릇 같은

그들의 습관이다.


리리카가 말했다.


“어서 와요, 학학씨.”


그들은 바쁜 문두스 때문에

두 달 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리리카가 두 팔을 벌려

마호를 안았고 그도 그녀를 안았다.

바깥의 찬 공기가 그녀를 감쌌다.

리리카가 마호의

수염을 보며 말했다.


“흠, 나쁘진 않군.”


긴 머리를 틀어 올린 덕에

오늘따라 리리카는 꽤 매력적이다.

그들은 뭐가 그리도 급한지

서둘러 밥을 먹었다.

마호가 잊고 있던 달걀을 꺼내 보이며

여관 이야기를 하자

그녀가 미소 짓는다.

리리카와 함께 있으면

작은 일도 참, 웃는 일이 많았다.


리리카가 생선 살을

마호에게 건네며 말했다.


“근데 왜 먹지 않았었요? 응?

이렇게 배가 고프면서 말이야

뱃속은 물 한 방울도 없겠지?”


“리리 주려고.”


리리카가 크게 웃었다.


“거짓이라도 고맙습니다?”


달콤한 카스텔라와 쓴 커피는

마호의 몸을 노곤하게 만든다.

리리카가 흘러내린 머리칼을

다시 틀어 올리며

작은 책을 마호에게 밀었다.


“뭐야?”


“당신 길 잃을까 봐.”


“으응?”


마호는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길이 없었다.

빠르게 책을 넘겨보았다.

영어로 된 책이다.

자세히 보니 영어로 된 글씨 밑에

자신들의 언어로 표현해 놓은

작은 글이 보였다.

누군가가 손수 적어

놓은 것으로 보였다.

대체 그녀는 구하지 못하는 게 없다.


“서울, 서울 맞나?

거기서 올림픽을 한다나?
손님 중 영국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리리가 부탁했구나?”


“부탁은 아니고,

그곳에 대한 얘길 하다가,
마침 그 사람이 갖고 있던 게

여행책이었어요,
당신이 간다니까, 뭐 난 좀

관심 있게 들여본 것뿐인데,

다음 날 이렇게 갖고 왔지 뭐야.”


“그 영국 사람,

리리에게 관심 있는 거야?”


“그래서? 나 때문에 얻는 이 책,

고맙다는 거죠?”


“생각하지 못한 고마움이 너무 많아.”


“뭐, 데이트 한 번,

아니 두 번은 만나주려고 해요,

꽤 신사거든.”


“흠, 좀 질투 나는데?”


그때 리리카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됐어요, 됐어, 그런 말로

전혀 변하지 않을 당신 맘

기대하게 하지 말라고요.”


마호는 책에 입을 맞추며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고마워 리리.”


리리카는 그에게 안긴 채, 말했다.


“길 잃지 말고 돌아와요,

무사히.”


“응, 걱정 마.”


“참, 코하네에게 내 인사도

전해줘 요, 그 작은 꼬맹이도.”


마호는 그 말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리리카가 미리 끊어 놓은

티켓 덕분에 마호는 또다시 바빠진다.

리리카는 마호를 배웅하면서

그를 한국에 보내기 위해

공항까지 발을 디딘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내내 투덜거렸다.

투덜거리면서도 마치 아이에게

말하듯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마호는 이틀 다녀오는 것에 대해

걱정이 너무 많다며

그녀를 조심스럽게 타일렀다.


“그 시간에 여기 있을게요.”


마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가요.”


응.”


마호는 기분이 참 묘했다.

생전 처음 다른 바다가 있는

나라를 가는 것이다.

그것도 코하네의 나라에

자신이 가다니, 꿈을 꾸는 것 같다.


어떤 승무원은 잘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한국말을 했다.

참 오랜만에 들어 보는 말이어서

기분이 좋다.

그 승무원은 한국 사람일까,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승무원이 그의 곁을 왔다 갔다

바쁘게 움직일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마호는 복도 끝자리에 앉았다.

이륙할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자

빈 곳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때 옆자리에 키가 큰 남자가 앉았다.

덩치가 얼마나 큰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가 앉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젊은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지만,

수염 한 가닥 보이지 않는 깔끔한 모습이다.

예상한 것과 같이 입국 신고서를 쓰는

남자의 글씨를 흘긋거려 보니

그 남자는 한국 사람이다.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마호는 그들이 아직 미지의 나라,

채 발전하지 못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첫 이미지는

미소를 띤 아주 깔끔하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또한 신기했던 건,

대부분 한국 사람은 일본어도 영어도

참 능숙하다.

승무원이 물어보는 언어가 영어면

영어로 답하다가 일본어면 일본어로,

답하다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자신들의 언어를 썼다.

마호는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호는 비행기가 이륙함과 동시에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수면을 또 취하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백합의 향기가

하얀 공기 속에서 나풀거렸다.

깨지 않길 바라며 잠이 들었다.


구름 속의 잠은 참 달콤했다.


뜨겁고 건조한 공기 탓에 목이 말랐다.

비행기에서 나오자마자

마호는 물을 찾았다.

다행히 물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미친 듯 물을 마셨다.


신기했다. 이곳의 물맛은 다르다.

다시 한번 벌컥거렸다.

물은 단맛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우선 입국 신고를 모두 마치고

빠져나와 앉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공항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고 웅성거리는

말소리도 참 낯설었다.


마호는 아주 기본적인 언어는

가능했기 때문에 덜컥 겁부터

나지는 않았다.


밖은 벌써 캄캄했고

시간은 오후 일곱 시를 지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그녀를 마주한다는 건,

무리일 것 같았다.

스스로가 그들에게

실례가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이제 와서 그들에게

혼란을 줄까 봐 걱정이라니,

자신이 다시 한심스러워졌다.

마호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이었다고 중얼거렸다.

리리카에게 받은 책의 지도를 펼쳤다.

공항은 서울과 멀지 않았고,

그녀의 집도 멀지 않았다.


다시 또 심장이 방망이 질 했다.

마호는 먼저 안내소에서

가장 가까운 호텔을 찾았고,

택시를 탈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직업에 걸맞게 여자는 아주 빠르게

아주 친절하게 대답한다.

들은 단어가 무엇인지는

대충 가늠이 됐지만 해석은 불가능했다.

그는 다시 한번 천천히

답해 달라고 부탁했다.

여자는 종이에 호텔 이름을 적어

그에게 내밀며 또박또박

아주 천천히 말했다.


“저기, 저 문으로 나가서

차가 많이 정차된 곳으로 건너가요,
바로 보이죠? 택시요,

그리고 이 쪽지를 주세요,
호텔 앞까지 갈 거예요.”


“감사합니다.”


여자가 덧붙인다.


“참, 검은 택시는 타지 마세요.”


이해할 수 없지만 마호는

여자의 말을 지켰다.

택시의 순서를 기다리며

이상한 건 그가 택시를 타기도 전에

그들은 창문을 열고 목적지를 물었다.

마호는 쪽지를 내밀며 말했다.


“여기입니다.”


어눌한 발음이었지만

누구든 그 말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쪽지가 무슨 전염병이라도 된 듯,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손을 젓고,

쌩, 하고 그를 지나쳤다.

마호는 이해할 수 없다.


이번에 그는 목적지를 물어보는

기사에게 답하지 않고

무작정 택시 안에 엉덩이를 밀어 넣었다.

기사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어디 가시냐고요?”


마호가 다시 쪽지를 내밀며 말했다.


“호텔입니다.”


쪽지를 받아 든, 남자가 중얼거렸다.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기분 나쁜 억양의 말임이 분명하다.

그는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타국에서 홀로 어디에서 나온

용기인지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외국인입니다.”


마호는 인상이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고 얼버무리다 마무리한다.

남자는 처음엔 굉장히 기분 나쁜 얼굴로

핸들을 거칠게 잡더니,

시간이 조금 흐르자,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잡으려고 애쓰려는 듯이 보였다.

한참 후 남자가 말했다.


“일본인이요?”


남자는 이상한 억양을 쓰며 말했다.

눈치로 알아들은 마호가 대답했다.


“네.”


남자는 전보다 더

못마땅한 표정으로 백미러를 흘긋거린다.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오?”


마호는 머뭇거리다가 맞는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흠, 그건 알아 둬야 할 거요,

죄를 많이 지었다는 거요

미안한 줄은 알아야지…”


마호가 놀란 눈으로 백미러를 통해

보이는 남자의 눈을 보았다.

자신을 노려보는 남자의 눈빛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마호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이런 얘기를 예의 없이 한다는 것에

화가 났다.

또한 마호는 자신의 나라에 대해서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다.

이런 식의 대화는

말도 안 되는 분노로 이끌 수밖에 없다.


마호는 숨을 길게 내쉬고

대응하고 싶지 않다는 듯,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그쪽 나라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알고 있소?
죄 없는 사람들을 말이지.”


마호가 알아듣지 못했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창밖만 응시한다.


“아니, 그것도 또 모르오?

이거야 원, 그건 아오?
한국에서 올림픽을 한다는 것이오.”


올림픽이라는 말에 마호가

백미러를 힐끔 보았다.

앗, 남자의 말에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들켜버린 셈이다.


“흐음, 그건 아나 보오,

두고 보라지 한국은

힘이 강해질 거요.”


대체 이 사람은 처음 본 사내에게

무슨 원한이 있어서 핸들을 쥔 두 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며 알 수 없는 얘기를 하는 건지,

어안이 벙벙하다.

도무지 가깝다는 호텔은

왜 아직 도착 전인지 그는 초조했다.

남자는 그에게 들릴 정도로 중얼거렸다.


“나쁜 놈들 같으니 쯧쯧쯧쯔.”


마호는 삐죽 고개를 들이미는

화를 참으려 애를 썼다.

드디어 호텔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는 입을 열었다.


“내리겠습니다.”


갑자기 남자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 지르듯 말했다.


“뭐요? 여기서?”


“네.”


“참나, 잠깐 기다리쇼.”


남자의 브레이크가 마지막에 와서 거칠다.

앞으로 쏠릴 뻔한 몸의

중심을 잡고 마호는 지폐를 내밀었다.

그런데 남자는 또 이유 없이

화를 내며 마호의 손에

잡힌 지폐를 손등으로 친다.


“받고 싶지 않소,

얼른 내리기나 하시오.”


마호는 움직이지 않고

내민 지폐를 계속 들고 있었다.


“어허, 받지 않는다고 했잖소,

잘 들으시오,
난 그 돈을 받을 만큼 당신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리고 오지 못했소,
정당한 것이니 가져가시오,

그리고 난 솔직히
안전하게 당신을 데리고

오고 싶지도 않았소,
당신은 억울하겠지만

난 당신 네들이 싫소, 퉷.”


남자는 운전석에서 내려

마호를 밀쳐 내듯 택시에서

떨어지라고 말하며 뒷문을 닫았다.

그리곤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갔다.

마호가 들고 있던 지폐가

사라진 택시 쪽으로 바람에 날린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스팔트에 박힌 채 서 있었다.


그곳은 호텔로 들어가거나

나가는 차들이 오가는 길목이다.

여러 대의 차가 멍하니 서 있는

그를 향해 클랙슨을 울렸다.


치밀어 오르던 화는 온데간데없고

그는 궁금해졌다.

이유 없는 저 불신과 미움은

이유가 없는 게 아닐 것이다.

알 것도 같아서 두렵기도 했다.

코하네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순간 호텔이 관리인 두 명이

뛰쳐나와 그에게 소리친다.


“선생님, 그곳에서 나오세요!

위험합니다.”


정신이 번쩍 든 마호가 주위를 살폈다.

많은 차가 도로 한중간에 서 있는

자신을 피해 움직였다.

그제야 빠르게 보행로로 올라선다.

까칠한 남자의 말투처럼

이 나라의 추위는 까칠하고 냉담했다.


몸속으로 파고든 냉기가

정신을 차려 보니 식은땀을

걷어 내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온몸이

위축되는 것 같았다.

호텔 직원들은 웃지 않고 있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지나칠 만큼 친절하다.

택시의 그 남자와는 너무도 다르다.

다시 만날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서 자신을 벌레 보듯

혐오스럽게 바라보는 그 남자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호텔은 고급이다.

김이 나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이 좋았다.

이틀 동안 묵은 피로가

벗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눈을 감고 생각했다.

내일 그녀를 보고 할 말들과

행동들을 정리해야만 한다.


그는 다시 후회했다.


‘왜, 여길 온 거지… 하, 미친 거야.’


한국에 잘 도착했다는 마호의

전화를 받고 유키코는 고민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 방법이 맞는 일인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가장 신경 쓰이는 건 하즈키다.

물론 하즈키가 이 일로 어떤 사건을

만들어 내거나 코하네가 불행해진다거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미안함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즈키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고 밀려오는 불안은

떨칠 수가 없었다.


유키코는 전화를 걸었다.

집 안에 하즈키만 있기를 바라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다행히 그가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하즈키는 아직 전화 인사를

그들의 언어로 썼다.


“하즈키? 나예요 유키코.”


국제전화라 그들의 말과 말 사이는

거리만큼 사이가 벌어지게 들린다.

한참 후, 그가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

도쿄라고 들었는데 어디세요?

전화가…”


또 한참 후 그녀가 대답했다.


“미국이에요.”


“네? 한참 계실 거라 들었는데,

무슨 일이세요?”


미국이라니 하즈키는

갑자기 아픈 노아의 노모가 떠올랐다.


“하즈키, 아 그녀가 떠났어요.”


하즈키는 한동안 말없이

침묵을 지켰다.


상심한 노아의 얼굴을 떠올리니

더욱 가슴이 저며 왔다.

사슴 같은 눈망울에

상처와 슬픔이 가득할 것을 생각하니

그의 눈에도 울컥 울음이

솟구칠 것만 같았다.


유키코는 애써 말을 이었다.


“걱정 말아요,

하즈키 노아를 잘 알잖아요?

그는 아주 잘 견디고 있어요.”


“죄송합니다.”


“그런 말 말아요, 코하네는?”


“지금 아이를 씻기는 중이라…”


유키코는 다행이다, 는 말을

낮게 중얼거리며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후미코의 유골을 들고

마호가 내일 그 집에 갈 것이다.

라는 얘기를 어떤 말의 치장도

화려함도 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부탁할 사람이 없었고,

그보다 더 잘 아는 사람도 없었다고

말을 덧붙였다.


유키코는 하즈키의 반응에

좀 놀란 눈치다.

그는 서슴없이 말을 이어갔다.


“아, 여기까지 온다니,

이렇게 감사할 때가…”


유키코는 그에게 먼저 실례되는

일을 만든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게 왜 실례가

되는 일이냐며 되물었다.


“실례가 되다니요,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마치 하즈키는 마호를 꺼림칙한

경쟁자로 생각해 본 적도

생각할 일도 없다, 고

강하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코하네가 무척 반가워할 겁니다,

아니 놀라겠군요.”


유키코는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하즈키는 마치 그 일은 별일이 아니라는 듯,

오히려 노아의 이야기를 꺼내며

위로를 전해 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오랜 통화를 마친 후,

울먹거리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코하네가 서 있었다.

마지막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아, 코하네…”


“어머님이 돌아가신 거죠?”


그의 고개가 끄덕이지 않길 바랐지만

빠르게 끄덕거렸다.

코하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울먹거리며 가느다란

어깨가 흔들렸다.


“노아, 어쩌죠, 어떡하죠?

이런… 우린 함께 할 수도 없네요.”


“노아는 아주 잘 견디고 있다고 해

그 사람, 그런 사람이잖아.”


“가슴이 아파요.”


하즈키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료카가 젖은 머리로

그들 틈으로 들어와 안겼다.

아이는 궁금함을 묻지도 않고

조용히 그들과 함께 슬픔에 스며들었다.


노모의 장례를 치른 후,

코하네는 누구보다도 그들의 연락을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노아의 슬픔이 오래가지 않길 바라며

끊임없이 기도했다.


하즈키는 오랜만에 소주를 기울인다.

마침, 휴일임을 안심한다.

코하네에게 마호의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씻는 내내 고민했지만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고민해야 하는지 순간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코하네가 내온 한국식 멸치조림은

정말 술안주로 안성맞춤이다.

짜다고 생각한 순간

빠르게 달콤함이 밀려온다.

그녀가 료카의 방문을 닫고

하즈키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겨우 잠들었어요.”


“응?”


“죽음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아요.”


“당신도 한잔할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유리잔을 내밀었다.

잔에 떨어지는 맑고 투명하게

떨어지는 술의 소리는 참 듣기 좋다.


“작은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참,

심장을 덜컹거리게 만들어요.”


“뭐라고 했어?”


“엄마는 료카 보다

먼저 죽지 말라고 해요 헛.”


하즈키의 동그래진 눈이

형광등 불빛 덕에 아주

밝은 갈색으로 변했다.


“이놈 참…”


그들은 잠시 서로 다른 생각에

말이 없어진다.

아이가 잠든 이 시간의

조용함도 참 소중했다.


하즈키는 술잔을 목으로 넘기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도 유키코처럼 담대하게

미사여구 없이 마호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녀가 놀랄 시간도 주지 않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야기를 마친 하즈키의 표정은

숙제를 막 마친 아이의 얼굴처럼

편안해 보인다.


코하네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당황스러움은 이미

온몸과 얼굴에 퍼져 있었다.

하즈키는 그녀를 기다려 줄 생각이다.

코하네가 입을 열었다.


“마호가 내일 온다는 얘기죠?”


“응, 고마운 일이야.”


하즈키는 마치 고맙다는 것 외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아,라고

그녀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솔직히 난,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 자연스럽지 못할 것 같아요.”


그녀의 말뜻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즈키가 다시 변할 수 없는

정해진 법처럼 말했다.


“친구잖아.”


코하네는 오래전 섬에서 마호와의 일이

엊그제처럼 생생하게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 양심에 품은 생각이

입안에서 솔직함을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하지만 그때 그녀는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 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이제 와서 두드리는 양심이라는

단어가 어색하기 짝이 없다.


친구,라는 말에 코하네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하즈키가 따라 준 소주의 맛이

오늘따라 더욱 쓰다.

코하네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마호.”


그녀도 마호처럼 머릿속으로

내일의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생각해야만 했다.

어디선가 하얀 백합의 향기가

흘러 들어오는 것 같았다.

마호의 검게 그을린 피부 위로

모래 알갱이가 후두득 떨어진다.


마호는 모래 위를 온 힘을 다해 뛰었고

달려간 끝에 하얀 백합을 들고 있는 소녀가 서 있다.


출처, 냉정과 열정사이




뜬눈으로 밤새며 코하네의 얼굴을 떠올리며

할 말을 생각하고 지워 내길 반복했다.

또다시 필요 없어진

시계의 알람을 아예 꺼 버렸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뚜렷이 바라보았다.

좀 더 길어진 길이의 수염은

분명 리리카가 싫어했을 것이다.

마호는 수염을 밀어내려다 그만둔다.

그의 느낌은 왠지 수염 덕에

상기된 얼굴을 숨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배낭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실로 뜬 모자, 리리카의 실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그것을 뒤집어써 본다.

역시 이 물건 또한

얼굴을 숨길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밤새도록 뛰던 심장이

십 년을 할애한 것처럼 금방

늙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모든 기가 바닥으로 쑥 꺼져버렸다.


‘말도 안 되는 짓 인가…’


마호는 국제전화를 쓸 수밖에 없다.

리리카에게 의지하고 있었던

숨은 자신의 모습이 참 우스꽝스럽다.

아직 채 잠에서 깨지 않은

리리카의 목소리다.


“네.”


대답이 없자 리리카는

충분히 알고 있다며 말했다.


“마호? 당신이에요?”


당신이라는 말에

그의 모든 긴장이 녹아내린다.


“하, 리리.”


그녀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명랑하게 말했다.


“한숨? 바보같이

유골을 생각해야 지.”


리리카는 확실하고 명백한 이유를

다시 일깨워 주고 있었다.


“후회할 것 같아.”


마치 마호가 앞에 있는 것처럼

고개를 젓고 말했다.


“흐음, 당신이 지금 내 곁에

머물고 있다 해도 후회했을 거예요
이건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닌걸,

분명히 해요, 당신을 위해

간 거 라면 난 반대했을 거야.”


리리카의 명쾌한 답은

늘 그가 깨우칠 수 있게 도왔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마호가

입을 열었다.


“언제나, 고마워 리리.”


“싱겁긴, 난 좀 더 자야 해요,

내일 당신을 봐야 하니까.
마호 당신을 볼 땐 굉장히

에너지가 필요하거든요.”


마호가 다시 말했다.


“언제나 고마워 리리.”


그는 빠르게 호텔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음식들이 즐비했다.

그는 리리카의 말 대로

그들을 보기 위해 에너지를

쌓기 시작했다.

리리의 말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하하하.”


마호는 다시 걱정이 앞선다.


택시를 타고 움직여야 하는 지금,

어제와 같은 상황이 나올까,

내심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혹시 모를 호텔 측의 안내를

받을 수 있는 교통이 있는지

물어볼 작정이다.

마치 그는 전투에 나가는 사람처럼

아주 대단한 아침 식사를 마쳤다.


다행히 호텔 측에서 마련한 택시는

한정되어 있었고 그 택시는

호텔과 연계된 사람들이라고 했다.

단 한 번도 불만이 제기되는

일도 없다고 했다.

물론 웃돈을 얹혀 주기 때문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그는 조금의 불만도 없다.


다시 한번 그들의 주소를 확인하며

흰 종이에 다시 써 내려갔다.


호텔 직원 말로는 주소가 호텔에서

한 시간쯤 걸릴 것이고

서울과 가까운 거리지만

서울은 아니라고 한다.

당연히 버스로는 가긴 힘들다며

웃돈을 주고 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똑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택시 안에서의 기나긴 침묵은

다행이다, 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덕분에 창밖의 풍경을

열심히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마치 이곳은 참, 일본과 비슷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스팔트, 회색빛 건물,

비슷한 체구와 비슷한 얼굴,

택시가 지나가는 이 긴

터널까지도 비슷했다.


중년의 나이보다 훨씬 더 많아 보이는

얼굴의 기사는 마호를 흘긋거리지도 않고

잔뜩 힘이 들어가 보이는 두 손을

운전대에서 놓지 않았다.

쥐라도 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될 정도로 힘이 잔뜩 들어가 보였다.

빨간 등의 신호를 맞닥뜨리는

순간에도 두 손은 쉴 시간이 없다.


차도 사람도 아무것도 없는

좁은 길의 신호도 어김없이 지킨다.

바깥 구경으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기사가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마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들의 집에 도착했다는 신호다.


“이럴 수가…”


바보 같은 말을 뱉었다.

알아듣지 못할 말을 기사는 물었다.


“네?”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이 집은 아닙니다,

위로 더 올라가면 됩니다.”


그는 위로 올라가는 길을 눈으로 확인했다.

좁은 길은 울퉁불퉁 곳곳에

아직 녹지 않은 얼음도 보였다.


“네 감사합니다.”


기사에게 지폐를 내밀었고

기사가 내민 동전을

마호는 손짓하며 사양하며 인사했다.

기사도 그와 함께 고개를 까닥거린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눈에 띈 건

사방을 둘러싼 산과 나무다.

가가호호 작은 정원을 갖고 있었고,

신기한 건 대문 없는 집이

많다는 것이다.


공기를 크게 들여 마시고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조금 진정시켜 본다.


“후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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