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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그림자

10. 사라진 다리

by 금봉




어두운 터널은 이제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아주 길고 등불 하나 비추지 않는

비좁은 터널이다.

공간 속 어둠으로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

숨을 멈추고 죽었다고 생각했다,

다시 눈이 떠질 때,

그 어두운 터널을 보고야 만다.


이 악몽은 그의 반복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이번엔 그 터널에서 잘려 나가고 남은

두 살덩이를 바라본다.

그야말로 상상치도 못할,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고통스러운 터널을 맛본다.

그것은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

그때마다 고통은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터널이었다.

이것은 계속 진화한다.


끈적이는 더위가 지나고

건조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하즈키는 병원을 옮겼다.

일반 병원은 더 이상 그에게 해 줄 것이 없었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에

한계가 생겨버린 생활은

집이란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다.


함께 지내자는 겐토의 간곡한 부탁

또는 강요 섞인 부탁은 그에게 먹히질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짐이 되고 싶지 않은 건 물론이고

동정, 이란 단어만 떠올려도

그의 경악스러운 발악은 극에 달했다.


먹지 않아도 될 만큼 정신적으로 온전하고

보통의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때가 과연 있었나,라는 생각과

소중한 추억거리는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진 것처럼 보인다.


그는 더 이상 하즈키가 아니었다.


하즈키가 하루에 목으로 삼켜야 하는 약은,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들의 양이 훨씬 많다.

그의 고집은 더욱 지나쳐졌고

도움을 당연히 받아야 하는 몸에도 불구하고,

친절이 담긴 모든 손길을 거절했다.

급히 화장실로 몸을 옮길 땐,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고

지쳐버린 몸은 이상 반응이 올 때까지

참고 또 참으며 그때야 화장실로 향했다.


다행스러운 건, 휠체어를 밀어주려는

사람들의 손은 피하지 않았다.

그것마저 거부한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말하는 법에 대해 잃어버린 줄 알았던 그가

병원을 옮긴 후부터 조금씩 말수도 늘었다.

담당 신경정신과 의사는 호전되고 있다는 말을

희미하게 떨구며

하즈키의 감정 기복의 편차는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정말이지 앞뒤가 맞지 않았다.


하즈키의 하루는 해가 뜨지 않은 어슴푸레한 새벽,

병원 복도에 사람이 다니지 않는

시간부터 시작된다.


아주 천천히 전동 휠체어를 끌고

1인실을 쓰고 있는 화장실로 향한다.

사고 후부터 부쩍 얼굴에 신경을 쓰고 있는 그는

한결같이 깨끗함을 유지하는 중이다.

병실 문을 열고 복도를 좌, 우로

고개를 돌리며 확인한다.

정적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때부터 그는 휠체어의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밖으로 통하는 동선에는

아주 길게 뻗은 낮은 내리막길이 있다.


그가 유일하게 입을 벌리고 좋다는 뜻의

탄식이 섞인 신음을 뱉을 수 있는 공간이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이때만큼은

걷는다는 느낌을 잃어버린

지금의 상태에서 두 다리로

아주 빨리 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멀쩡한 두 다리로

코하네와 함께 비를 맞으며

있는 힘껏 뛰었을 때처럼 말이다.


그는 숨을 쉬지 않고 참다가

그 길이 끝나자마자 숨이 턱 밑까지

쫓아왔을 때 학학거렸다.

이 방법은 그가 또

하루를 버틸 수 있도록 유도했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괴로움을

한 번 더 상기시키는 건

그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병원을 둘러 크게 한 바퀴를 돌아와

늘 앉는 나무 밑 의자로 자리를 옮겼다.

한낮의 더위가 머물렀을 때

그늘이 되어 주던 나무의 잎이

바람에 조금씩 떨어졌다.

바싹 마른 나뭇잎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모습과 같다.

그것을 밟아 주고 싶은 마음에

휠체어를 끌어 마구 짓이긴다.


제법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면

환함에 익숙한 사람들이 하나, 둘

어디선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는 병실로 들어가 탁자에 놓인

아침 식단을 내려 본다.

오늘도 식욕이 돋지 않았다.


의사의 말이 생각났다.


“계속 위가 비어 있는 상태에서

약을 드시면 좋지 않습니다
감정이 더욱 가라앉을 수도 있습니다

꼭, 아침 식사는 거르지 마십시오.”


하즈키는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몸을 위해 먹어야 한다니,

소시지처럼 묶어 놓은 듯한

짧고 우스꽝스러운 허벅지를 보고

욕지기를 퍼부었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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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광과 모서리를 닮은 여자] 저자 작가 금봉입니다.글의 쓰임이 엇나가지 않게 쓰고 또 써나갑니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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