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 영화 - 술 푸게 하는 세상
인사이드 아웃 : 꼭 필요한 슬픔에 대하여
경기도 안산의 어느 작은 동네에 '술 푸게 하는 세상'이라는 주점이 있다. 슬픈 일이 너무 많은 세상은 우리에게 금요일 밤만 되면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말게 하고, 이윽고 새벽이 될 때까지 그것들을 퍼마시게 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알고 있는 '슬픔'이란 이런 느낌이다. 어떻게든 견뎌야 하는 것, 잊어야 하는 것, 정면으로 마주하지 말고 피해야 하는 것, 늦은 저녁 잘 들어가지도 않는 술로 털어내야 하는 것. 생물학적으로 성인의 나이가 되고 나서부터는 더욱 그래 왔다. 멋진 어른의 멋진 인생이란, 되도록 긍정적이어야 하며 행복을 향해 돌진해야 한다.
이렇게 슬픔에 인색한 세상과는 달리, '실컷 울어도 돼'라며 조용히 휴지 한 통을 놓고 자리까지 피해 주는 속 깊은 언니처럼, 슬픔에 넉넉한 인심을 가진 영화가 개봉됐다. 픽사의 수작으로 남을 <인사이드 아웃>(2015)이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안팎'이라는 단순한 제목을 가진 이 만화영화는, 말 그대로 한 소녀의 내면에 사는 다섯 가지 감정과 그들을 시시각각 변하게 하는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전체 관람가 애니메이션이지만 어쩐지 아이들보다 어른들의 '인사이드 아웃'을 흔들어놓을 영화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슬픔과 분노, 까칠함과 소심함은 숨겨야 할 기분이 되었고 본래 무엇보다 본능적이어야 할 감정들을 억누르다 보니 결국 행복과 기쁨마저 느끼지 못하게 된 이야기.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줄거리다. 우리 이야기라서 그렇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도를 닦는 김 양의 이야기이자, 결혼한 지 33년 된 심 여사님의 이야기이자, 연애는 사치가 된 88만 원 세대 박 후배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생계형 인간으로 거듭난 우리에게도 순수한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시절 우리의 감정 본부에 사는 다섯 감정은 기쁨이나 행복으로의 치우침 없이 각각의 개성을 갖고 존재했으며, 덕분에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든 스스로 솔직할 수 있었다.
슬픔이나 분노, 까칠함, 소심함은 무조건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 감정들로 만들어진 기억은 대부분 '추억'이 되며, 수많은 추억(빙봉)과의 이별을 반복하면서 소녀와 소년은 어른이 된다. 잔에 있는 물이 흘러넘쳐 야만 비워진 자리에 다시 물을 부을 수 있는 것처럼, 때때로 넘치는 슬픔을 가만히 두어도 좋다. 애써 억누르지 않아도 괜찮다. 앞서 말한 넘침과 채움을 반복하며 앞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나의 자아는 잔에 담긴 물에서 망망대해를 이루는 파도가 된다.
마찬가지로 술을 퍼마시게 하는 슬픔에 빠져도 무서울 것 없다. 그것을 온전히 느끼고 잘 보낸다면 행복이 찾아온 순간 또한 오롯이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애초에 기쁨은 좋은 것, 슬픔은 나쁜 것으로 나눈 잣대는 우리가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의 감정 본부에 사는 다섯 감정을 만나볼 차례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옛말처럼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모두 가까이 보고 오래 살펴보면 예쁜 녀석들이다.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