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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필 Sep 16. 2024

[가족] 비에 젖은 지리 - 우중산행 2

아들과 산행

[가족] 비에 젖은 지리 - 우중산행 2탄

- 대상지 : 지리산

- 코스 : 중산리-천왕봉-장터목산장-유암폭포-중산리

- 일시 : 2024.7.26(금) ~7.27(토)

1045 중산리탐방안내소

1118 칼바위

1310 법계사

1510 천왕봉

1610 장터목산장

(1박)

0800 장터목산장 출발

1115 중산리


중학생이 된 아들과 산행은 작년 설악산이 사실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작년 여름, 오색에서 대청에 올라 천불동으로 떨어지는 당일치기 산행에서 아들은 코피까지 흘리며 엄청 고생을 했었다. 한라산에서 걷는 걸 보고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대청에서 하산하면서 다리에 힘이 풀리고 소청 하산부터 쏟아져 내리는 비로 인해 아들은 몸과 맘이 무척이나 힘들어했었다. 아빠로서 미안한 마음과 잘 극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혼재되어 천불동을 내려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들은 잘 극복했고 내려와서 멀쩡한 모습에 의외이긴 했지만, 다음 산행은 아무래도 어렵겠다고 속단을 했었다. 이제 중2가 되고 친구들과의 활동이 엄마 아빠와의 활동보다 좋아지는 때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경치도 제대로 못 보고 빗속에서 어렵게 했던 설악산 산행은 그렇게 재밌게 느껴질 리 만무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들과 여러 크고 작은 산을 많이 다녔지만, 그중에서도 남한 최고봉인 한라산과 설악산에 올랐다는 것을 치켜세우고 지리산을 슬쩍 언급할 때까지만도 아들이 나설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 친구들이랑 갈 가능성이 더 현실적이었으니.

그런데 문득 어느 날 엄마 통해 지리산 산행의지를 밝히는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가게 되었다.


근데 하필 날을 정한 게 장마의 끝자락. 산장을 예약할 당시만도 장마가 끝난 후겠거니 생각을 했고 마침 하늘도 걷히는 게 장마도 끝나는 듯해서 내심 기대를 했는데, 예보가 썩 좋질 않았다. 어쨌든 이 소중한 기회를 놓칠세라 산행취소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산행 전날, 아내는 만반의 준비에 나서 끼니별 식량과 간식을 한 아름 마련해 놓았고, 나 역시 지리산 산장에서의 1박은 처음이라 빠진 게 없는지 나름 신경을 썼다. 예약이 제대로 된 것을 확인한 거 말고는 딱히 생각나는 건 없었지만.


어쨌든 출발. 새벽부터 나서 지리산 중산리를 향해 차를 달렸다. 아들과 두런두런 이런저런 얘기를 혹시나 할 수 있을까 은근 기대도 했지만 말없는 아들에게 스트레스가 될 거 같다는 생각에 아빠는 딱히 말머리를 트지 못했다. 나는 운전하고 아들은 잤다.

지리산에 가까워질수록 구름이 깔리고 비가 오다 말다 했다. 빗속의 산행 2탄이 될 것 같은 불길함이 몰려왔다.


중산리 근방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중산리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공사 중이라는 안내문을 세 번 정도 보고서야 근처 카페에 주차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안내문에 이끌려 카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거기서 차 한잔하고 산에서 먹을 점심거리도 샀다. 어쨌든 이틀에 걸쳐 주차를 해야 하니.


짐을 메고 중산리탐방안내소까지 걸어가는데 벌써부터 비가 쏟아졌다. 일단 우산을 펴고 걸어가는데 아들이 당황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었다. 말없는 아들은 그저 괜찮다는 정도의 반응.


탐방안내소에서 사진을 찍고 본격적으로 산행 시작. 숲으로 들어가니 그럭저럭 갈 만은 하다. 지리의 큰 힘이 느껴지기도 하고. 이렇게 또다시 우리의 추억은 시작되고 있다.


30여분을 걸으니 칼바위가 나왔다. 적당히 쉬고 갈 만도 했고. 배낭을 벗어 놓고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바위를 살짝 건너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에 올라 아들을 부르니 비에 젖은 바위에 살짝 미끌렸으나 잘 올라왔다. 문제는 신발의 와이어 버클이 박살 났다는 것.


비는 좀 왔을지언정 그냥 평화로웠던 산행이 갑자기 위급해졌다. 이번 산행을 위해 구입한 새로 산 등산화인데, 10대 때 적당히 신다가 나중에 크면 제대로 살 요량으로 아내가 고른 등산화에 이런저런 코멘트를 달지는 않았었다. 사실 그 와이어&버클 시스템이 맘이 들진 않았지만 그게 그렇게 하자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기에.  통상의 등산로를 가는데 뭔 일이 있겠나 생각했다. 근데 산행 시작 30분 만에 그 약점이 바로 눈앞에 나타난 것.


속으로 짜증이 무척이나 밀려왔다. 하산도 생각할 정도로. 여기까지 4시간을 운전하고 왔는데 오늘 못 올라가면 너무 후회스러울 것 같았고, 이깟 신발 끈의 문제로 산행을 포기하려니 너무 억울하기도 했다. 침착하게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들의 신발을 붙들고 이리 저러 고민을 하는데 그냥 오르기엔 무리였다. 너무 헐렁한 상태. 비는 더욱더 쏟아져 내려 난감함은 더했다.

그러다 문득 집에서 혹시나 하고 실비너 하나 배낭에 걸고 온 게 생각이 나서, 그걸로 와이어를 발목에 돌려 비너로 연결하니 대충 조임 정도가 맞았다. 아들 발목에 상처가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내각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들은 괜찮냐는 질문에 그저, 네.

계속 올라가기로 했다. 비는 그칠 생각도 없이 꾸준히 내리고 있었다.

이후 얼마간은 아들의 발이 걱정되어 확인도 하고 물어도 봤지만 큰 무리 없이 잘 올라왔다. 불편함이 큼에도 참는 건지 정말 큰 무리 없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상당 시간 잘 따라오는 걸 보고 이후로는 그에 대한 신경은 쓰지 않게 되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야속하게도 계속 왔다. 어느 정도 올랐음에도 경치는커녕 하늘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저 곰탕 속의 산행. 아들에게 멋진 풍경을 보여주는 맛이 있어야 아빠로서 뿌듯하기라도 할 텐데.. 참으로 야속한 날씨다. 그것도 두 번 연속으로.


법계사를 지나 경사가 좀 더 가팔라지는데 배낭은 비에 젖어 더욱 무거워졌다. 배낭커버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배낭에 눌려 허리에 부담도 커졌다.

쉬면서 쌩쌩한 아들에 도움을 요청했더니 흔쾌히 내 배낭을 들어준다. 그 배낭에는 엄마가 싸준 삼겹살과 제반 음식들, 그리고 코펠 세트 등이 있었다.

뒤뚱뒤뚱 걷던 아들은 힘에 부쳤는지 다음 쉬는 곳에서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래도 많이 고맙고 기특했다.


가스가 잔뜩 끼고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천왕봉이 가까워져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아들을 먼저 올려 보내고 비에 젖은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한 발 한 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배낭뿐 아니라 온몸이 젖어있었고 중간중간 먹은 간식도 빗물과 함께였다. 설악에서는 그나마 내리막이라 짐이라도 가벼웠는데 무거운 짐에 오르막에 비를 맞고 가려니 쉽지 않았다.


정상부근에는 이제 바람까지 불어 추울 지경이었다. 다행히 아들은 완벽한 방수의 윗도리어서 안심을 했는데 부실한 준비의 내가 더 추웠다. 나중엔 입던 반팔 옷을 벗고 배낭에서 젖지 않은 긴팔 재킷을 꺼내 바꿔 입으니 체온이 좀 유지되었다.


강풍이 부는 와중에 드디어 천왕봉 도착. 정상엔 아무도 없고 그야말로 우리 부자가 다 차지하게 되었다. 그 말없던 아들은 몸이 날아갈 것 같은 바람이 신기했는지 환하게 웃으며 환호를 지른다. 이거지. 올라오면서 느낀 고단함이 싹 가시는 듯하다. 악천후 속에서도 어려움을 이기고 뿌듯함을 오롯이 받아낼 줄 아는 아들이 자랑스럽다.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정상샷을 몇 장 찍고 하산을 서두른다. 비바람은 더 거세지고 날도 저물어가는 느낌. 작년 설악의 하산이 절로 떠오른다. 거센 빗줄기 속에서 우리는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천천히 여유를 가지면서도 긴장의 끈은 놓지 않았다. 집중해서 내려가고 내려가다 보니 갑자기 장터목 산장이 갑자기 딱 나타났다.


고민할 것 없이 취사장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은 상태였고 비닐 안의 내용물을 제외하고는 배낭도 전부 젖어 있었다.

아들도 어느 정도 지친 듯했다. 여기서 느긋하게 쉬기로 했다.


사실 우리가 예약한 곳은 세석산장이었다. 장터목에서 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비가 오고 바람도 불어서 좀 걱정스럽긴 했다.

이것저것 생각할 거 없이 우리는 따뜻하게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나 역시 산장 시스템이 낯설었는데, 주변사람들을 보며 눈치껏 라면을 끓여 먹었다. 아들은 허기졌는지 코펠까지 잡고 라면을 먹었다. 잘 먹으니 보기 좋았다.


다 먹고 짐을 정리하고 세석을 향해 가려는데 참 발길이 쉽게 떨어지진 않았다. 흠뻑 젖은 몸으로 좀 쉬기는 했지만 다시 저 비바람 속으로 간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던 것. 밖의 소리를 들으니 비바람은 더욱더 거세졌고 이미 날도 조금씩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다.


해드렌턴까지 체크하고 갈 준비를 하는데 옆의 한 등산객이 말리며 여기서 그냥 자고 가라고 얘길 한다. 산장에 얘길 하면 잘 수 있을 것이며 과거 자신도 그런 경험이 있다며. 귀에 훅 들어오는 얘기라 잠시 주저하다가 산장에 물어보기로 했다. 산장에서는 오후 5시가 넘으면 산행 금지라며 오히려 무조건 자고 가야 한다 했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서로 뜻이 통했으니 자고 가기로 결심하고 사정을 얘기했더니 세석산장과 조율해서 조치를 해줬다.


아들도 더는 힘들었던지 안도의 표정이 나타났다. 일단 라면을 먹었으니 방으로 들어가 몸을 녹이기로 했다. 비 오는 날이라 그런지 산장 투숙객은 많지 않았다. 이런 빈자리를 두고 더 가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충고를 해준 등산객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


산장 안은 매우 따뜻했다. 젖은 옷이 금방 마를 정도. 너무 아늑해서 산행을 계속했다면 내 허리는 손상을 입었을 거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나는 한숨을 자고 아들은 폰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아들이 문득 고기는 언제 먹냐는 적극적 질문. 또 반갑다. 먹을 수 있냐니, 고개를 끄덕끄덕.

주저할 거 없이 삼겹살을 구워 먹으러 나갔다. 슬리퍼를 생각 못해 축축한 신발을 신고 나갔지만 따뜻한 숙소에서 쉬기도 했고, 맛난 삼겹살을 생각하니 그리 불평스럽진 않았다.


천왕봉에 오르면서 어깨를 짓누르던 삼겹살을 이제야 먹게 되었다. 애초 준비 단계부터 아들이 먹고 싶어 하던 삼겹살을 여러 밑반찬과 함께 아내가 싸줬고 그 포장까지 하면 참으로 많은 무게를 차지했더랬다.

기분 좋게 삼겹살을 구웠고 너무도 맛있게 아들은 삼겹살을 먹었다. 자식을 먹이는 기분이 이런 걸까. 나는 그 비바람을 뚫고 올라온 아들이 대견했고 라면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삼겹살까지 맛나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눈물까지 날 지경이었다. 사는 게 이런 거겠지. 아무리 내 허리가 뻐근해도 몇 번은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맘이 편해지니 허리도 다 나은 듯하다.


삼겹살을 구워가며 나도 먹어보니 너무 맛이 좋아 삼겹살이 남을 일은 없었다. 햇반까지 중탕으로 싹싹 비워 먹고 풍족한 마음을 안고 짐을 정리해 숙소로 다시  들어갔다.

비바람은 더 거세져서 우리가 산행을 계속했으면 조난이나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안도감이 더욱 밀려왔다.


이미 따뜻한 맛을 알아서인지 숙소는 참 편안했다. 푹신한 담요를 깔고 있는 건 아니지만 각자 적당히 자세를 잡고 취침에 들어갔다. 바닥이 따뜻하다 보니 웬만한 불편함은 다 덥고도 남았다. 생각보다 심하게 코 고는 사람도 없어 아득함은 더했다. 밖은 여전히 비바람이 거셌겠지만 지하층이었던 숙소는 조용하기만 했다.

새벽에 화장실을 갔다 오느라 불편한 거 말고는 큰 무리 없이 하룻밤을 보냈다.


우리는 일출을 보러 갈 일도 없으니 느긋하게 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아들의 컨디션도 괜찮아 보였다. 이런저런 불편한 것이 있었을 테지만 말없이 묵묵히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거 같아 기특하기도 했고 든든하기도 했다. 말없는 아들은 어떨 때는 답답한 느낌도 있었지만 또 어떨 때는 무던하거나 혹은 유난스럽지 않은 모습이어서 어른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그 나이 때 나 역시 답답한 고구마과였던 건 마찬가지. 믿고 또  믿어주다 보면 아들은 차차 성장할 것이다.


아침을 먹으면서 어제의 그 은인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했다. 매년 정기적으로 며칠씩 지리산의 산장에서 묵으신다고 한다. 멋진 중년의 모습이다. 우리는 감사의 표시로 아내가 싸준 과일을 드렸고 산장을 나서기 전에 부식 캔도 하나 남겨 드렸다.

그리고 우린 하산을 서둘렀고 그분들은 천왕봉을 향했다.


먹을 물을 뜨기 위해 하산길에 있는 샘에서 물을 담았다. 아들의 컨디션도 괜찮아 보였고 날도 어제보다는 좀 나아 구름은 여전했지만 비의 양은 어제보다는 줄어 있었다. 행복했다. 먹을 것을 거의 다 비웠고 배낭은 훨씬 가벼워졌다. 더구나 내려가는 길도 여유가 있었다. 그저 중산리로 내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또한 걱정했던 신발에 다행히 아들도 적응을 잘하고 있었다. 그래도 더 언제 또 비가 몰아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신속한 하산만이 최선이었다.


기분 좋게 물을 뜨고 배낭을 메고 아들이랑 행복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이제 가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휴대폰을 좀 더 편안하게 허리벨트 부분에 넣으려다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다. 근데, 다시 주우려고 보니 - 바닥이 단단한 각목으로 되어 있었는데 - 그 바닥의 사이로 휴대폰이 쏙 들어가 버리는 게 아닌가. 당황스러운 일이 또 벌어진 것.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일단 이걸 포기하고 내려갈 수는 없었다. 내비도 있어야 했고 각종 금융 관련 앱도 있어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일단 스톡을 각목 사이로 넣어 휴대폰을 건드려 꺼내기 위해 노력했다. 가망이 없었다. 좀 더 시야를 크게 하기로 했다. 바닥의 끝부분이 산 아래쪽이었으므로 밑에서 스틱으로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려가서 보니 휴대폰이 보였다. 가능성 확인. 스틱으로 꾸역꾸역 끄집어내어 드디어 휴대폰을 다시 손에 쥐게 되었다.

잠시였지만, 침착함의 힘에 스스로 기특해 한 상황이었다. 휴~ 아들은 이 상황을 보고 피식 웃고 만다. 아빠가 한심해 보였을까? 하여튼 순간 실수였지만 다행히 수습은 된 모양새. 코미디 같은 상황이 마무리되었다.


이제 정말로 하산. 비에 젖은 지리산은 이제 익숙해졌고 나름 아름답기까지 했다. 하산길에 아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내려가면서 남은 과일도 다 먹었고 계곡의 폭포를 보며 지리산의 풍부한 수량을 실감할 수도 있었다. 유유자적.


그렇게 그렇게 아들 신발에 문제를 일으켰던 칼바위까지 갔고 그렇게 처음 출발했던 중산리까지 내려왔다. 힘들지만 뿌듯한 산행이었다.

우리가 차를 세워 둔 카페에서 팥빙수에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뿌듯함과 성취감도 즐겼다. 아들과 같은 곳에서 같은 경험을 했다는 행복감도 즐겼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역시 서로 거의 아무 말도 없었지만 내려갈 때랑은 확연히 다른 것이 있었다. 그 소중한 경험들 말이다. 어쩌면 내가 아들하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소통의 방법이 아닐까. 산은 역시 나에게 한 가지 더 큰 숙제를 해결해주고 있었다. (악필, 202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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