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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필 Oct 03. 2024

[달려야산다] 시작은 하프다 2

러닝의 시작

작년 말 골프 치다 또다시 허리에 그분이 오셨다. 친구들과 했던 나름 성대한 골프행사에서였는데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피로했던 허리 근육이 놀라 드러눕게 되었다.

더 이상은 못 버티고  MRI를 찍고 시술도 받았다. 골프도 끊기로 했다. 다른 삶을 살기로 했다. 나름 열심히 산 인생이라고 생각했지만 절반의 인생 결과물은 아픈 허리고 후회스러운 삶들 뿐이었다. 남자는 특히 나는 아파야 정신을 차리는데, 그것도 여러 번 아파 봐야 철이 제대로 드는가 보다.


의사 말대로 3개월여의 근신 후 천천히 운동을 시작했다. 등산도 시작했고. 회복에 자신감이 생기자 생각한 게 달리기. 그렇게 달리겠다고 하고선 제대로 달리기를 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프를 못 치는 상황이다 보니 자연스레 달리기에 맘이 갔다.


동네에서 살살 뛰어보다 한 번 한강까지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략 한 9~10Km. 그 거리는 과거에도 뛰어 본  경험이 있으므로 못 뛸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실천을 못한 스스로를 탓하며 무심코 시도를 했다. 길을 잘못 들어 중간에 멈췄지만 이미 나선 길. 마지막 2Km 정도는 걸어서 결국엔 한강에 도착했다. 느낌이 확 달랐다. 벅차고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다음엔 반드시 달려서 완주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엔 진짜 달려서 완주.

달리기가 재밌어지고 있었다. 10Km 이상을 뛰다 보니 귀가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더 뛰어 지하철이 있는 데까지 가기로 했다. 12Km.  마침 편의점이 있어 라면도 먹고 물도 보충하고 귀가하기 좋았다. 달리기는 점점 더 재밌어지고 있었다.


그 무렵 후배의 조언에 따라 운동화를 바꿨다. 우리 동네 마트에서 제일 좋은 거 찾아서 구입했다. 나이키 인빈서블 3. 신는 순간 느낌이 좋았다.

한 번 신고 마침 출장이 있어 런던에 들고 갔다. 골프도 못 치고 허리도 안 좋으니 보호 차원에서 달리기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런던 첫날 새벽. 시차적응 문제로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심심도 하고 계획대로 달리기로 했다. 될지 안 될지, 코스는 어떨지 불확실한 게 많았다. 정성스레 무릎 테이핑을 하고 보호대로 착용했다. 다소 쌀쌀했지만 뛰기 좋은 기온이었다. 템즈강을 따라 무작정 나서는데 길이 있었다. 나름 좋았다. 더구나 좀 더 가니 달리는 현지인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공기는 맑았고 적당히 땀을 식혀주는 바람도 좋았다. 어느새 10Km 완주.


둘째 날은 좀 더 마음먹고 뛰어봤다. 이제 시작부터 러닝크루 현지인들이 있었다. 무작정 따라갔다. 템즈강 옆 건물 뒤로 중세시대 골목 같은 길도 가고 현대식 호텔도 지나쳤다. 사람들 건물들 도로 강 등등. 이거야  말로 제대로 된 관광이었다. 이걸 그동안 출장 다니며 왜 몰랐던가.

현지 크루는 속도가 빨랐지만 길을 알아내고자 나는 다소 오버페이스였지만 따라가며 루트를 알아냈다. 결국 두 바퀴를 뛰며 12Km 완주. 속도도 개선되었다.


놀라운 건 이틀 연속 10Km 이상을 뛰었는데도 내 무릎 허리 어디도 아프지 않았다는 거였다. 신발이 일단 큰 역할을 했다. 기분이 엄청 좋아졌다. 앞으로 영영 평생 달리기를 즐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명 ‘런뽕’을 나는 여기서 맞았다.


그 뒤로 비 오는 하루를 제외하고는 아침마다 달리기를 했다. 시차적응에도 좋았고 저녁에 잠도 잘 자게 되었다. 업무에 집중력까지 생겼다. 출장 중 러닝은 대성공이었다. 어서 귀국해서 안양천을 뛰고 싶어졌다.


귀국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안양천을 천천히 달렸다. 그리고 피로가 회복된 후 나는 새 신발을 신고 한강의 그 편의점(당산철교 밑)까지 달렸다. 한강은 이제 먼 동네가 아니었다. 달리기는 에너지요  엄청난 도파민 제공 과정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에 남는 유일한 가치, 성취감을 최대로 끌어올려 주었다. 나는 계속 달리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쉬는 주말. 이번엔 그 편의점을 넘어 여의도로 가 보기로 했다. 13Km를 넘어가면서 숨이 턱에 차는 건 물론 다리가 아파왔다. 그게 무릎 같기도 했고 허리 같기도 했다. 근데 딱히 쉬고 싶진 않았다. 그동안 뛰어 온 게 아까워 더욱 포기하긴 싫었다. 서울교까지 갔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서울교 다리 밑이 천국 같았다. 몸은 온통 땀으로 젖었고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역시나 그 이상의 뿌듯함과 성취감은 나를 천국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분명 서울교에서 한 발짝도 더 갈 수 없을 거 같았는데, 집에 가면서 다음 다리가 어딘지 조회하며 더 갈 것을 다짐했다.


그다음은 여의도교. 15Km. 정말 한계를 느꼈다. 매주 거리를 늘려가는 맛이 있었지만 하프든 풀코스든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워졌다. 내가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닐까. 내 허리가 부러질지도 내가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며칠 쉬고 나니 싹 사라졌다. 더 가기로 한 것.


여의도교를 지날 때 역시나 전과 다를 게 없었다. 죽도록 힘들었던 것. 나아진 게 없었다. 그러나 아내에게 큰소리친 게 있어 원효대교까지 가 보기로 했다. 15Km를 넘어 16Km에 들어서는데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다리가 부러지면 어떡하지? 심장이 터지면 어떡하지? 그냥 달려봤다. 근데 마침 63 빌딩이 보였다. 내가 사는 광명의 안양천에서 여의도의 상징물까지 온 것. 힘이 났다. 미친 힘이다. 제정신이 아니다. 나는 달렸다. 오른발을 딛고 다시 왼발을 디디면 되는 것이다. 아주 단순한 작업이다. 아직 다리는 부러지지 않았고 아직 심장은 숨이 쉬어졌다.

여의도 최상부에 도착했고 저 바로 앞에 원효대교로 보이는 다리가 보였다. 이제 머리는 멍해져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나는 그저 멈추지도 못하고 미친놈처럼 그냥 달렸다. 그리고 원효대교 도착. 이상하게도 더 뛸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몸에 이상이 갈까 봐 그리고 목표한 곳에 도달했다는 것 때문에 나는 멈췄다. 17Km 완주. 63 빌딩과 Parc1이 보이는 편의점에서 한강라면을 끓여 먹는데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나 그냥 달리기에 미쳐 살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이제 다음 공략 포인트는 서강대교나 마포대교였으나 귀가 지하철이 애매해 내친김에 당산철교까지 가기로 했다. 그럼 딱 하프(21.1Km).  당연히 시도했다. 역시 죽을 것 같은 15Km의 느낌은 같았으나, 나는 17Km를 경험한 적이 있으므로 그리고 그 15Km를 넘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마치 우스운 것처럼 시크하게 지나쳤다. 다시 멍해지는 원효대교를 지나 초행길을 달렸다. 흙길도 나오고 멍석길도 나왔다. 마음먹고 산 카본화가 더러워지고 숨은 가빴지만 당산철교까지 가겠다는 고집은 더욱 단단해졌다. 그리고 갔다. 하프마라톤 거리보다 1m라도 더 가려고 확실히 충분히 초과해서 하프 거리를 완주했다. 근데 편의점이 공사 중. 물 한 모금도 못 먹고 뛰어 목마르고 배고프고 힘들고 지치고 더웠지만 웃음이 났다(이때 난 에너지젤의 존재를 몰랐다). 난 드디어 하프를 뛰었다. 그리고 안정적으로 2시간 이내(1시간 51분). 인생 신기록이다. 나는 하프가 가능한 인간이 된 것이다.

한참을 걸어 당산역 밑의 편의점에서 파워레이드와 생수를 마시는데 삶이 그렇게 즐겁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난 대회에 나가기로 했다. 하프 마라톤 정도는 가능하다 판단했다. 인스타그램을 하다 우연히 친구가 주관하는 마라톤 대회를 발견. 10Km를 신청했다. YTN 서울투어 마라톤. 하프가 아니어서 아쉬웠지만 첫 대회이니 이 정도로 출발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두 달 정도 뒤.

또 다른 대회를 찾다 하프 코스 발견. 한 달 후 여의나루에서 시작하는 대회(스마일 런 페스티벌)였다. 바로 신청.

이렇게 해서 나는 순식간이 두 개 대회를 나가게 됐고 이제 나의 달리기는 마라톤 대회 준비 훈련이 되었다. 동시에 나는 점점 더 러너의 모양새가 되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악필, 202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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