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녀로 엄마를 덕질하기로 했다

환영받지 못한 아이는 어느덧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

by 윤채



엄마를 덕질하는

딸의 이야기




"K-장녀 따위 당장 때려치우고 싶다."



이런 생각을 수천 번도 더 해본 나는 아직도 K-장녀다.



모든 걸 참고 기다리고 돕고 이해하는 법부터 먼저 배운 그런 딸. 그리고 무엇보다 환영받지 못한 아이였다.



엄마는 아들을 원했다. 나는 딸로 태어났고 그 이유 하나만으로 엄마는 나를 마음 깊이 사랑하지 못했다. 어릴 적 내 이름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에는 언제나 낯선 거리감이 섞여 있었다. 손끝에 닿을 듯하면서도 끝내 안길 수 없는 온기였다. 나는 그 온기를 늘 갈망하며 자라났다.



그것이 내 잘못이 아님을 머리로는 이해했으나 마음은 자주 혼란스러웠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은 미움받았던 기억 앞에서 쉽게 작아졌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엄마를 덕질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때론 아이돌을 덕질하고 특정 취미를 덕질하듯, '엄마'라는 존재를 덕질했다. 내가 이해받지 못한 슬픔이 너무 컸기에 더 잘 이해하고 더 따뜻한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온기를 배우는 과정이 나에겐 절실한 해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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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덕질하는 길은 생각보다 길고 복잡했다. 그래도 꿋꿋이 엄마를 중심으로 가족이라는 관계를 들여다보는 일에 몰두했고 결국 국제코치트레이닝 과정을 수료하게 되었다. 또한 멘탈트레이너, 인지행동심리상담사, 가족생활교육전문가, 가족코칭지도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누군가에겐 그저 이력서에 적을 한 줄일지 모르나 나에게는 삶을 지탱해 주는 생존의 기술이었다.



처음에는 억울하기도 했다. 왜 나만 이토록 애써야 하는지, 왜 사랑받지 못한 쪽이 먼저 이해해야 하는지 분노가 치밀 때도 있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내가 이 공부를 하는 이유는 누군가를 용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무너지지 않게 지키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코치트레이닝을 통해 나는 경청과 진정한 라포 형성을 배웠다. 이는 말의 표면이 아닌 그 이면에 흐르는 감정까지 귀 기울이는 태도였다. 엄마의 날카로운 말들 뒤에는 오랫동안 상처 입은 여자의 외로움이 숨어 있었다. 그 외로움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나는 엄마를 미움도 동정도 아닌 이해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멘탈트레이너 공부는 내 마음에 숨 쉴 틈을 마련해 주었다.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법, 스스로에게 "오늘의 나는 아팠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인지행동심리상담은 내가 오직 '딸'이라는 역할로만 살아왔음을 자각하게 해 주었다. 나는 늘 누군가의 딸이었고 그래서 종종 온전한 '나'가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나는 그저 '나'로서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누군가는 묻는다. 그런 자격증들 대체 어디에 쓰려고 그렇게 열심히 땄느냐고. 나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마음속으로 대답한다. 나를 위해 썼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 지금도 쓰고 있다고.





동동 구른 발걸음 나에 대한 낙서만
가득한 마음 종이에
적어둔 부탁이 있어

널 미워하지 마
좋은 선택이었단 걸 너도 알잖아
그렇게 아픈 걸 말도 못 하고
혼자 끙끙댔을걸

-세븐틴, 하품 중에서



'엄마'를 덕질하는 건 예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웠지만 그대로 엄마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오는 "사랑해"라는 말이, 나에게는 수많은 연습과 눈물 끝에야 비로소 입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문장이기도 했다.



그래, 나는 자주 애썼다. 그 애씀 덕분에 조금씩 자라났다. 그리고 요즘엔 엄마를 단순히 이해하려 애쓰는 사람을 넘어 엄마의 방식과 나의 방식을 구분하여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더 이상 엄마와 나 사이를 뒤엉킨 감정으로만 마주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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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기억으로 가득했던 '가족'이라는 공간은 이제 나의 애씀으로 조심스레 다듬어진 작은 성장의 무대가 되어가고 있다. 아직 완전한 화해도 극적인 변화도 없지만 내 마음속에 쌓였던 앙금은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



나는 여전히 엄마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그 배움의 여정 속에서 더 이상 엄마의 사랑을 갈망하지 않으면서도 엄마와 나 사이의 시간을 조금은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이 꼭 본능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때론 사랑도 공부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엄마를 향한 덕질을 이어간다. 그 덕질이 결국 나를 나답게 지켜주는 가장 다정한 싸움이 되어주고 있으므로.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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