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장의 글감, 그리고 나를 다독이는 문장
방 안에는 다섯 개의 일력이 있다. 책상 위, 침대 머리맡, 책장 위, 쌓아둔 책들 위, 그리고 귀여운 인형 옆. 하루를 시작하는 순간마다 시야에 걸리는 자리에 일력을 놓아두었다.
아참, 현관문 옆에도 하나 두었다. 집을 나설 때 마지막으로 마주하는 문장이 오늘의 나를 어루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일력을 둔 것은 아니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서평단 활동을 하며 선물 받은 일력이 일력 덕후로서의 시작이었다. 작고 얇은 종이 한 장을 넘기는 습관이 쌓이면서 어느새 내 하루는 일력을 넘기며 시작하게 되었다.
감각이 무뎌진 삶에 작은 온기를 불어넣는 듯한 잊고 있던 마음을 다시 꺼내주는 듯한 문장들이 좋았다. 그 후로 나는 예쁜 그림이 담긴 일력, 매일 동기부여를 주는 메시지로 엮은 일력, 누군가의 일기를 엿보는 듯한 감성 일력 등 다양한 일력을 모았다. 그렇게 어느새 열 개가 넘는 일력이 방 안을 채웠다.
지금은 여섯 개로 줄였다. 욕심 같아선 더 놓고 싶지만 나눔도 덕질의 일부이기 때문에 주변 지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렇게 한 장 한 장 넘기는 그 습관은 나에게 단순한 루틴이 아니라 마치 작은 순례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는 묻는다. "그렇게까지 많이 필요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일력은 단순히 날짜를 알려주는 종이가 아니다. 하루를 여는 첫 문장이 되어주고 글감을 안겨주는 작은 편지다.
어느 날은 그 문장이 그대로 내 일기 제목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웹소설 속 인물의 독백이 된다. 마감이 다가오는데도 이야기가 풀리지 않을 때도 책상 위 일력에서 눈길을 끄는 한 줄을 발견하면 그게 인물의 입을 빌린 대사로 살아나기도 한다.
"다양성은 혼란을 줄 때도 있지만, 서로의 다양성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면서 새로운 모습을 갖추기도 합니다."
-매일 그림 나라마다 여행
"실력은 계단식이다. 더딘 것 같지만 어느 날 한 단계씩 쑥 올라가는 때가 온다. 그러니 제자리걸음 같아도 매일매일 꾸준히 해보자."
-꽃을 건네듯 나에게 말을 건네다
"번영은 허구 세계의 도피가 아닌 현실 세계의 창조에서 태어난다."
-애덤 그랜트의 생각 수업
"살면서 한 가지 좋은 게 있어. 봄은 항상 또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이지."
-하루 한 문장, 고전 명작 일력
이런 문장들은 그저 읽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하루와 겹쳐지고 삶을 바라보는 감정의 프리즘이 된다. 눈을 뜨기 힘든 아침에 이런 문장을 만나는 건 삶에 작은 속삭임이 되는 경험이다. 내가 나를 다그치지 않게 하고 내가 오늘을 더 다정히 살게 만드는 그럼 힘이다.
나는 매일 아침(혹은 저녁) 일력을 넘긴다. 가끔은 좋은 문장을 따로 필사하기도 한다. '오늘 참 좋았다' 싶은 날, 또는 '왜 이렇게 버겁지' 싶은 날, 그 필사를 꺼내 지난날의 문장을 들여다본다. 어제의 내가 건넨 위로와 다짐이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운다. 그렇게 일력은 내 삶의 조용한 기록이 되고 영감의 창고가 된다.
창작은 때때로 무모하고 외롭다. 말이 되지 않는 문장을 붙잡고 몇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고 아무도 공감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를 붙들고 씨름하기도 한다. 그런 날들 속에서 누군가의 문장 하나가 나를 다시 앉히고 다시 쓰게 한다. 일력의 한 줄은 그렇게 또 다른 한 줄의 글을 부른다.
나는 오늘도 여섯 개의 일력 사이에서 하루를 산다. 때로는 일력 속 문장을 따라 하루를 구성하고 때로는 그 문장을 곱씹으며 인물의 감정을 상상한다. 반복되는 날들 속에서도, 그 작은 습관 덕분에 나는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
아마 내일도 종잇장 하나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만나고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