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토요일, 아침에 달릴 계획을 했다. 너무 빨리 일어나진 않고 일곱 시 되기 전쯤.
호텔 로비에는 이미 음식이 차려져 있고, 채비를 하고 나가서 오렌지주스 한 컵을 마시고 현관으로 나선다.
12월이 되니 확실히 해도 늦게 뜨고 해가 떠 있어도 공기가 선선하다. 보통 때처럼 힙색을 짧게 가슴 쪽에 붙이고 메고 그 안에 핸드폰을 넣고 음악을 틀고 달리기 어플을 실행한다. 아이폰의 단점 하나는, 터치에 너무 민감하다는 것.
어디서 잘못 눌렸는지 달리기 시작하고 갑자기 카카오 음성전화가 연결되더니, 뜻밖의 업무상 알고 있는 분 목소리가 들렸다. 화면이 보이지 않으니 토요일 아침에 급한 일인가 싶어 받으니 상대방이 더 어리둥절해한다.
꽤나 민폐. 거기 시간으로 아홉 시 정도 되었겠지만 연말에 민감했을 텐데 죄송했다. 황급히 인사를 하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는데, 여기서부터 잘못되었다. 통화가 시작되면서 어플은 중단되었고, 나는 노래가 다시 나오기 시작하길래 그냥 달렸던 것이다. 다시 달리기 시작했을 때는, 오늘은 개도 안 보이고 날도 밝고 하니, 지도 여기저기에 나의 궤적을 남기는 게 목표였다. 15분 달리는 동안 평소라면 앞으로만 가고, 대각선 길이 나오면 대각으로 달리지 웬만하는 뛰는 동안은 방향을 많이 안 틀었는데, 오늘은 한 블록을 빙글빙글 돌면서 달렸다. 그렇게 노래가 세 번인가 네 번인가 바뀌는 동안, 아무런 안내음성이 나오지 않았다.
노래가 이 정도 바뀌었다면 15분 가까이 되었을 것 같아서 어플을 열어보니 ‘중단’, ‘개시’ 버튼이 떠 있었다. 이미 출발 시점부터 꺼져있었고, 나는 그걸 모른 채 그냥 뛰고 있었다.
허무했다. 사실 대단한 달리기를 하는 게 아니었지만 기록을 쌓는 재미가 있어 그것 때문에 하는 것도 있었는데 어쨌든 앞의 달리기는 기록이 쌓이지 않은 것이었다.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달리기 구간동안 걸어서 채우다가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그냥 다음 구간으로 건너뛰어서 앞의 기록은 그냥 날릴 것인가.
걸으면 힘이 다 빠질 것 같아서 쉬는 구간으로 건너뛰고 걷기를 하고 달리기로 넘어간다.
두 번째 15분 달리기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내 탓도 아니고, 내 탓인 것 같고, 핸드폰의 오작동도 아니고, 대충 넣고서 거기에 꼬여서 갑자기 전화도 터무니없이 걸고, 기록도 쌓이지 않고.
그러다가, 그래도 달리기는 했었고, 기록은 안 쌓였지만 달린 걸 나는 아니까. 그렇게 위안을 해본다.
몇 번 안 남은 달리기. 그리고 다음 주면 사실상 저녁에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도 많아지고, 오늘 이른 아침에 달렸으니 내일 저녁 늦게 달릴지, 오늘 했던 것을 다시 달릴지, 아니면 어쨌든 거의 시간을 맞춰서 달린 것이니, 코스의 마지막을 달릴 것인지.
내일 달리고 마사지를 받으러 갈지, 오늘 저녁에 갈지, 생각이 단순해지는 건 좋은 것 같다.
떠오르는 생각이 이것뿐이기만 한다면야.
고민해야 하는 게 오늘 간단한 걸 할지 내일 할지를 정해야 하는 것만 한다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