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하여
높지 않은 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무덤조차 없는 그곳, 발붙이기조차 싫은 그 땅덩어리에 갔다. 친아버지는 무덤조차 없이, 조부모의 작은 언덕 옆 무성한 잡초들 사이에 잠들어 있다. 나는 잡초 위에 발 뻗고 앉아 하늘과 땅, 그 모든 풍경을 한 시야에 담아 바라보았다. 그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 12년 동안 가지 않던, 갈 생각도 없었던 곳에 도착했다. 그 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 난 울 수 있을까? 그런 고민과 불안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드디어 바람만이 불어오는 고요 속에서. 나는 자그맣게 읊조렸다.
아버지,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말을 하기 위해 몇 분 동안이나 가만히 있었을까. 쉬이 꺼내지 못하는 말. 그러나 나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말. 끝내 터져 나온 단어는 뒤죽박죽 얼룩진, 3살 아기가 말하듯 어지럽혀져 있었다. 제대로 말해야 한다. 생각하고 입을 열었으나 왈칵 나온 건 눈물방울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실은 사랑했기 때문에? 아니다. 다시금 명백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한다면, 결코 그런 행동들을 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담지 못한다. 기쁨도, 슬픔도 아니다. 자기애로 비롯된 우울도 아니다. 그러면 왜? 지금도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사랑은 늘 내게 어려운 감정이다. 모든 감정이 섞이지도 못한 채 뭉쳐진 복합체. 현재로서도 나는 그 이상 표현할 방법이 없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목표고,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가는 것이다. 그 무엇도, 무엇이라도 사랑은 객관적인 정의를 내릴 수 없고, 단지 개인마다의 정의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정의 내리지 못했다.
이 글은 나의 작은 독백이자 고백이다. 내 지금까지의 생애를 담담히 말하고, 조용히 묻어가기 위해서. 나 자신만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글로 남기자고 다짐한 그 날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 정리하고, 되새기고, 내려놓기 위해서. 그러니 담담히 읽어주기를 바란다. 나와, 내 삶을, 내 어린 시절의 감정을.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평범하지 않은 일을 겪으면서 생기는 그런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나는 조선족 사람으로 태어나 철저히 한국 사람으로서 컸다. 어머니는 자주 말했다. 네가 조선족 사람의 아들인 걸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 된다고. 한국 사람은 조선족을 혐오한다. 그 단 하나의 사실 때문에 나는 조선족이면서 중국어를 할 줄 모르고, 한국인이면서 중국 음식을 즐겨 먹었다. 외가 사람들은 모두 중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잘 알고 있었다. 조선족에 대한 혐오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그래서 나는 내 친구 두 명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지금도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떻게 나올지가 두렵다. 하나의 비밀은 관계를 한 번 어지럽힌다. 그것이 다시 붙여줄 수도 있지만, 그 상태에서 더더욱 어지럽혀질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쉽게 할 수도 있을 연애가, 아니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맺을 때, 들킬까 두려워 숨기기 바쁘다. 쉽게 말하지 못한다. 내가 지금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주변 사람들에게 브런치 작가는 되었지만, 동시에 작가명이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왕의 핏줄도 아니고, 그게 뭐가 대수라고 그러냐.
조선족 사람인 걸 말하기 두렵다고 한 말에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조선족을 혐오하지만, 너를 혐오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건 분명 옳은 말이다. 나도 안다. 하지만 평생에 걸쳐 말하지 못한 비밀은, 매일같이 연락하는 너를 제외하고는 말하지 못해. 그 정도로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어떤 반응이 올지 알 수 없으니까. 항상 무지에서 오는 공포는 두려운 법이다. 조선족을 혐오하는 말들은 주변에서도 곧잘 들려왔고,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에요.’라는 문장이 입 밖으로 나오는 걸 억눌러야만 했다. 그리고 웃으며 이야기를 돌린다.
이곳에서 나는 나를 내려놓고, 나의 모든 사건들과 진실된 감정들을 토할 것이다. 이 말은 일기처럼 쓴다는 것이 아니다. 일기는 감정을 분출하는 글이며, 내가 쓰고자 하는 건 에세이, 감정을 담아내는 글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이야기를 돌리지 않을 것이다.
그럼, 시작해 보자.
나의 작은 고백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