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수 있을까 part 2
매 순간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배신감을 주체할 수 없었기에 나는 어떻게든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매일 반복적으로 이성과 감성을 넘나들며 핵심에 접근하기 위해 그 간 일어난 대부분의 사건과 사고, 사소한 일들을 기억해내고 나열하며 그 중 나의 감정과 내 위주의 사고, 행동을 최대한 제외시키려 노력했다. 불쾌한 과거에 매인 다는 것 자체가 나의 영혼을 고인 구정물에 쳐박아 넣는 짓임을 알면서도 어쩔도리 없이 멈추지 못하고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는 내가 싫었고, 그 과정 자체가 그냥 뼈저린 고통으로 다가왔다.
사람이란 각자의 특징과 특성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면 그 사람의 전반적인 분위기나 주어진 환경이 드러난다. 좋고 나쁨을 판단을 떠나, '다름'을 이해하고 그 부분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사실 이번 일도 그런 맥락에서 좀 더 일찍이 봤더라면 좋았을 걸 아쉽다.
나만 다름을 위해 노력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기에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다. 다른 이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작업이 말처럼 쉽겠는가. 단순한 수학적 논리라면 모르겠지만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감정]이라는 미지수 세계를 수시로 넘나 들어야만 한다. 때는 너무 늦어 있었고, '설마'로 인해 때를 놓친 것만 같았다.
우리가 사는 이 공동체 안에는 최소한이라는 보이지 않는 테두리가 존재한다. 그런데 그것이 어찌된 일인지 각 사람마다 다르단다. 도통 어쩌라는건지 그 마저도 때에 따라 달라지니, 단어만 존재하고 그럴 듯하게 포장해서 놀리는 기분도 든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오지랖보다는 개인주의가 당연하고 서로 각자 골을 향해 무작정 달리기만 한다. 목표 지점에서 벗어난 지도 모른채 말이다. 연민이든, 사랑이든 사람이 사람에게 이끌리는-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을 모른 척한다고 더 가치 있는 삶이 된다 여겨지진 않는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중요시 되는 우리의 가치- 높은 우선 순위를 차지하는 돈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많을 수록 고파지고, 우리 삶을 치졸하게 만드는 물질. 그러나 절대적 위상을 드러내는 그것.
가끔 의문이 든다. 먹고 살 돈이 없어도 품위와 자존심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한가. 먹고 살 돈이 없어서는 안되는 부유한 시대라 상상조차 해보지 않게 된다. 21세기에 쌀이 없어서 밥을 먹지 못한다'라고 하면 믿을까? 웃픈 이야기이지만, 나는 실제 그런 경험을 했다. 쌀독에 쌀이 떨어질 걱정- 더 쉽게 설명해 수입은 늘지 않는 상태에서 신용 카드 한도만 꽉 차 있을 때-
시대가 변함에 따라 한국 내 수준은 5년전에 비해, 10년 전에 비해 엄청난 속도로 높아졌다. 그것을 느낀 건 오랜만의 귀국 후였다. 세계의 정세에 따라 빈부의 의미가 아니라 국내 전체 생활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음을 보았다. 미국에서도 고가의 제품이라 쉽게 구매하기 어려운 제품들도 한국 내에서 베스트 셀러, 집 집 마다 있는 상품이었고, 보도 듣도 못한 외국어 뉴 브랜드에 정신 차리기 힘들어 직원에게 어느 나라 상품인지 궁금해 물어보기도 했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만든 새로운 상품들의 브랜드는 고가의 외국 제품같은 인상이 지배적이었다. 사람들은 일상인듯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고, 매번 소개되는 뉴 아이템에 열광해 그때마다 매번 구입할 만큼의 재력이 각 가정마다 가능한 지 궁금한 적도 있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나름 느끼는 것은 과도한 신용 생활을 참으로 열심히 하고 있구나 였다. 그리고 넘쳐나는 풍요에 비해 감사가 그리 큰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비췄다. 그래서 그런지, 선물 상자의 크기가 사람의 마음을 보여 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놓고 마음 나눌 친구 하나 없다고 저마다 외로워하며 고독하다 징징거린다. 어쩌면 이곳이 훨씬 더 각박하고 쌀쌀맞은 느낌이다.
<용서할 수 있을까>의 개인 잣대를 물질의 크기와 모습에 비유한 것은 고약하기 짝이없는 괘씸함 때문이었다.
나는 그 사람과의 짧은 두번째 대화 내용에서 그나마 남아 있던 그 간의 추억과 인연이라는 끈이 완전히 풀림을 느꼈다. 나의 뜻대로 사과는 받았지만, 더 큰 분노에 휩싸였다. 미안한 감정에 메모하듯 번호를 매겨 전달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 대화 내용에서 끝까지 본인의 행동과 생각을 미화 시키고자 하는 모습과 엿같은 기분을 억지로 숨기며 입으로만 말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읽혔다. 이 포커판에서 그 사람이 숨기고 있는 패는 무엇이었을까.
관계의 온도
너무 차가운 나와 너무 뜨거운 그 사람이 만나 미지근한 온도를 유지할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추후에 어떠한 일이 생길 지도 모른 채 서로 죽이 잘 맞는다 박수치며 좋아했던 적도 있었나보다. 그런 경우의 수를 부인하진 않지만, 적어도 우리의 경우는 아닌 것이 되었다. 그 사람은 나의 차가움이 견디기 힘들었고, 나도 그 사람의 뜨거움을 받아 주기 힘들었다. 차라리 이런 일 후에 마주칠 기회가 아예 없었더라면 조금은 회복 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겠지. 그러나 아픔이 가라 앉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종 종 그 사람을 마주쳐야만 했다. 그로 인해 감정의 조절과 이성적 판단이 어려웠다. 마주치니 잊고 지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주변의 많은 지인들은 6살 어린 나에게 먼저 용서의 손을 내밀라 권면했다. 그러나 괘씸 그 자체가 쉽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권유가 오히려 더 아팠다. 납득할 수 없어 쿨하게 품지 못하는 내가 찌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이 사회, 공간, 집단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관계 속 온도는 과연 얼마가 적당한걸까. 너무 차가워도, 너무 뜨거워도 안되는 가장 적당한 온도.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 것만이 괴로울거라 여겼다. 그러나 미워하는 마음이 더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가까운 가족을 미워 할 때와는 또 다른 힘겨움이었다. 벗어버리고 싶어도 떼어지지 않는 오염 물질처럼, 그림자 뒤 이면에 숨어 있는 어둠이라는 존재를 인지하면서도 영원히 박멸조차 할 수 없는 투명 좀 벌레와도 같았다. 미움에 눈이 가리워지니, 내 안 숨어 있던 곳곳의 그림자 속에서 분노와 원망, 저주스러운 생각들이 하루에도 수 십번씩 음흉한 얼굴로 웃음을 짓고 사라졌다. 꼭 나를 조롱하기 라도 하듯. 조급한 마음으로 벗어나고만 싶었지만 자꾸만 내일로, 다음으로, 어쩌면 있지도 않을 알 수 없는 미래로 애써 미루었다. 나에게 속한 일임은 분명한데, 내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면서도 알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마음껏 미워하고만 싶었다. 미움의 싹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어느날 자고 일어나니, 밖에 눈이 어른 무릎 높이 만큼 쌓여 있었답니다. 걱정한 대로 아니나 다를까 주차된 차가 눈에 묻혀 있었지요. 오전 일찍부터 삽을 들고 나가 눈을 치우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밤새 쌓인 눈은 퍼내도 퍼내도 끝이 없었지요. 게다가 흐린 날씨에 꽁 꽁 얼어 붙기까지 한 눈을 혼자 퍼내기엔 너무 힘이 들었어요. 작업한 지 한참이 지났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힘도 들었지만, 힘이 든 만큼 결과가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 좌절감이 밀려왔습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잠시나마 몸을 녹이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가 따뜻한 코코아를 한잔 마시며 어디서 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할 지 창 밖의 차를 바라보며 나의 능력 밖의 일은 아닐까 생각에 잠겨 조용히 기도를 했어요. 그 순간, 잔뜩 껴 있던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열리듯 따스한 태양이 우리 집 마당을 환하게 비추었죠. 차 위에 쌓인 눈이 꽁 꽁 얼어 붙어 삽으로 퍼내는 것도 힘들었는데, 태양 빛에 녹아내린 눈을 1시간만에 다 치워냈습니다.
나의 열심으로 무작정 일하는 것보다 태양 빛의 힘을 빌어 일 하는 것이 더 정확하고 빠른 길이었던 것이죠. 순간, 어떤 일이든지 내 열심으로 먼저 앞서는 것보다 주님께 맡기고 그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정확하고 확실한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토랜스 좋은 교회> 목사님의 설교 말씀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