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인이 된 직장 동료의 1주기를 맞아 작은 행사장에 간 적이 있다. 고인의 남편이 그녀의 사진과 글을 한데 모아 정리해 두고, 방문객들이 생전의 고인을 추억하고 기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녀의 업이 작가는 아니었지만 평소에 글쓰기를 많이 하고 또 잘하시던 분이라 개인 sns, 일기, 교회 월간지 등에 실린 글에서 발췌한 일부만 해도 양이 꽤 되었다.
그녀의 죽음은 나에게 꽤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회사 내에서 내가 특히 신뢰하며 의지하던 분이기도 했고 조부모 이 외에 가까운 지인의 죽음이 처음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했다. 찬찬히 사진과 글을 감상하는데 배경음악으로 선우정아의 '도망가자'가 반복 재생되고 있다는 걸 인지했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들과 그 노래의 결이 어찌나 잘 들어맞던지. 그렇게 행사장을 나오고 집으로 가는 길에도 계속 노래의 멜로디가 맴도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적당해 보이는 유튜브 노래모음 영상을 재생시켜 두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선우정아의 '도망가자'가 나오는 것이다. 그 순간 며칠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가사를 집중해서 듣게 되었다. 세상에 지금껏 길거리에서, 식당에서, 친구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숱하게 들려왔을 이 노래가 이렇게나 좋은 가사를 가지고 있었다니! 선우정아의 음색도 너무 좋은 데다 위로가 되기도 하고, 현재의 애인을 떠올리며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그간 이런 경험이 적지 않았다. 무심코 흘려들었던 유행곡이 어느 순간 내게 특별한 곡이 되어 있다거나,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던 학창 시절 친구와 오랜만에 재회했는데 그 만남이 생각보다 더 좋았어서 친구를 다시 보게 된다든지 하는 경험 말이다. 물론 나의 관심사, 취향, 가치관 등이 시기나 상황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겠지만, 나를 스쳐 지나갔던 주위의 수많은 존재들이 적당한 시기에 맞춰 나를 다시 찾아온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신기했다. 현재 나를 지나가고 있는 많은 것들 중 또 어떤 것이 때에 맞춰 나를 찾아올지 궁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