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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연고 May 04. 2024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공감에세이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로마를 경유지로 선택한 이유는, 중간에 남는 3시간 동안 콜로세움에 다녀오기 위해서였다. 짧은 시간 동안 왕복으로 움직이려면 우버가 나을 듯해, 공항에서 출발하는 우버 차량을 하나 배정받았다. 곧 차가 다가왔고, 차에서 내린 분은 은빛 머리의 할아버지 우버 기사셨다.


어색한 차 안 침묵을 뚫고 통화음이 이어졌고, 기사님은 통화소음에 대해 양해를 구해오면서 짧은 영어로, '선 프로블럼'이라고 우리에게 말을 건네왔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남편은 기사님에게, '빅 선 빅 프로블럼, 스몰 선 스몰 프로블럼'이라는 농담을 건넸다. 이에 기사님은 화통하게 웃었고, 두 사람은 그렇게 선과 프로블럼 두 영어 단어로 싱거운 농담들을 이어갔다. 그런 농담 후 남편은, 우리가 짧은 여행 중이라 이탈리아어를 못한다고 양해의 말을 건넸다. 이 말이 기사님의 마음을 열게 했는지, 갑자기 기사님은 폰으로 이탈리아어-영어 번역기를 돌려가며 우리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콜로세움에서 기다려주길 원하냐고 물어오셔서, 그래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대답했고, 그렇게 우리의 왕복 여행 동반자가 되어주겠다고 기사님은 자청을 해오셨다. 콜로세움에서 30여분 정도 머무는 동안 주변에 차를 세우고 우리를 기다려주셨다. 교통체증을 걱정해 빠른 걸음으로 차가 있는 곳에 먼저 도착한 내가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서 있던 기사님에게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자 그분도 내게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아준다. 그 순간 부지불식간에 손을 흔들어 속으로 민망함을 느꼈던 내 마음에 훈풍이 불어 들어왔다. 내 뒤를 따라 걸어오던 아이가 길을 건널 때는 조심하라는 손짓과 표정을 지어준다. 우리가 콜로세움은 언제 봐도 멋있다고 칭찬을 하자 어깨를 으쓱이며 함박웃음을 지으신다.


공항까지 가는 길에 번역기를 돌려가며 여행 가이드처럼 풍경 곳곳에 대한 역사 정보와 관련 에피소드를 열띤 목소리로 소개해주셨다. 해박한 지식에 우리가 감탄을 하며 경청하자 해설은 점점 더 지식의 깊이를 더하고 열정이 묻어났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우리는 기사님의 실제 직업을 여쭤봤다. 은퇴한 역사학자라고 하셔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은퇴한 레스토랑 사업가라고 소개하신 기사님은, 이런 지식은 순수한 자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애정에 기반한 거라고 설명을 덧붙이셨다. 바티칸 옆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고, 에트루스칸(Etruscan)의 후예라고 본인을 소개하며 에트루스칸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당당히 드러내기도 하셨다.


본인의 나이가 71세라고 말하시며, 소금과 설탕, 패스트푸드, 술, 담배를 절대 가까이하지 않는다고도 하셨고, 맥도널드는 절대 가면 안 된다는 조언도 잊지 않으셔서 우리 가족 모두 죄책감을 느끼게도 하셨다. 현재까지 본인은 아무런 약을 복용하지 않는다며, 매일 토마토와 올리브 등 야채와 과일을 먹는다고 건강식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도 설명해 주셨다. 본인 아버지는 13남매였고, 본인은 4남매, 그리고 자신은 두 아들이 있다며, 자식은 두 명이면 좋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빅 선 빅 프로블럼이라고 또 말을 해오셨다. 대체 그 빅 선의 프로블럼이 무엇인지 이쯤에서 궁금해지기도 했지만, 시간도 부족하고 번역기를 돌려서 말하기엔 너무 심오한 얘기가 될 듯해 말을 삼켰다.  


콜로세움에서 공항까지 짧은 45분의 이동 시간 동안, 우리는 할아버지의 여행 정보, 역사 교육, 삶을 대하는 태도, 가족, 그리고 건강에 대한 지혜의 샘을 나눠 마실 수 있었다.


난 사실 우버와 이탈리아 남자에게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이 짧은 콜로세움 방문길에 깨달았다. 그런 선입견으로 인생의 모든 경우를 일반화시킬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게 뭐가 되었든 올바른 길 하나면, 잘못된 모든 길을 잊어버리게 해 줄 수 있다. 하나의 예시면 된다. 올바른 하나의 예시에 내 마음과 기억은 바뀌기도 한다.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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