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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연고 Jun 07. 2024

그녀가 결혼을 한다

공감에세이

V가 결혼을 한다.


내 책 [평평한 네덜란드에는 네모가 굴러간다]에는 <타인과 한집에 산다는 건>이라는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그 이야기에 나오는 V가 곧 결혼을 한다. 혹시 책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실제로 아는 사람이 아니어도 반가운 마음이 들만한 소식이라 생각되어 함께 그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V는 영어도 서툴고 얼굴에 여드름도 있는 보송한 열여덟의 소녀였다. 이제는 패션 회사에서 멋지게 근무하고 있다. 얼마 전에 승진도 했고, 해외 출장도 다녀왔으며, 대형 회의실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앞에 두고 프레젠테이션도 진행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마치 아이가 뿌듯한 마음을 안고 자랑을 하듯 우리에게 말해주는 그녀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드는 걸 나는 사실 눈치채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는 나와 남편의 마음도 촉촉이 젖어들고 있었으니 우리는 같은 감정을 나누고 있었으리라.


열여덟 소녀였던 V와 우리가 면접을 위해 만나던 장소에 사실 그녀의 지금 약혼자도 함께 자리를 했었다. 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소중한 관계를 이어왔고 결혼이라는 결실까지 맺게 되었다. 불안해 보였던 청춘은 듬직한 남자가 되어 V와 함께 삶을 충실히 가꿔가고 있으니 정말 다행이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처음부터 그를 그리 믿음직스럽게 여기지 않았던 것에 대해 조금 미안한 마음도 생긴다.


얼마 전에 V가 자신의 신혼집을 보여주고 싶다고 초대를 해서 그 집에 다녀왔다. 강둑 옆 푸른 들판길을 달리다 보니 아늑히 자리 잡은 마을이 나왔다. 새로 지은 집들이 깔끔히 자리 잡은 모습이 좋아 보였고, 새로 시작하는 신혼부부가 지내기에 위치도 좋아 보여 안심이 되었다. 집 앞에 푸른 잔디길이 있어 청량한 기운이 돌고, 부엌 창문에 놓여 곧게 자라고 있는 선인장 화분들이 안정된 그들의 모습 같아 보기 좋았다.


자신이 일하고 있는 분야의 시장분석이나 해외 출장 경험담 등을 우리에게 전문가적 모습으로 얘기를 해주다가도, 집 앞에 있는 사과 농장이나 계란 농장에 차를 세우고 직접 신선한 사과와 계란을 사는 모습을 해맑게 얘기한다. 신혼집의 구석구석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앞으로 정원과 인테리어를 어떻게 바꿔갈 것인지에 대해 얘기하는 모습은 꽤 진지하고 열정적이다.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해 왔는지, 그래서 어떤 모습으로 당당히 회사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지, 그리고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행보를 위해 스스로 얼마나 멋진 보금자리를 마련했는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우리는 기꺼이 여러 번 과장되게 감탄을 해주고, 칭찬과 격려의 말들을 끊임없이 전해주었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그런다.


꼭 조카 같네...


사실 나도 그런 기분을 속으로 느끼고 있었다고 말하니, 그렇지? 그렇구나.. 하며 환히 웃는다.


우리 인생에서 이렇게 소중히 얻은 조카가 결혼을 한다. 언젠가 그녀가 귀여운 생명을 안게 된다면, 그녀가 아이를 안아주었던 것처럼 나도 귀여운 생명을 소중히 안아줄 생각이다. 멋지게 삶을 꾸려가고 있는 그녀가 늘 건강하고 행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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