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일기
이번 글은 이번 1학기 에세이 경진대회 비평적 글쓰기 부문에 제출하였던 제 비평적 에세이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썼던 서평을 토대로, 책을 다시 한번 읽고 그간의 달리기의 경험을 더해서 에세이를 작성하여 최우수상이라는 결과를 얻게 되어 정말 기쁜 마음입니다. 제 취미를 글로 쓸 수 있다는 것부터 정말 즐거운 일인데, 그 글이 누군가의 공감을 받아 상을 수상하는 것은 정말 행복한 경험입니다.
이번 글을 쓰는데 가장 많은 도움을 주었던 글쓰기 교수님(지난 2학기 학술적 에세이 대회 수상에도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매번 함께 달리고, 제 글을 읽어주는 러닝계의 데일 카네기 유 모 군(피드백을 부탁했을 때 마침 논문을 읽는 중이었다며 정말 체계적인 피드백을 주었습니다.)
제 달리기에 늘 함께하고, 이를 응원해 주는 수많은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이들이 없었으면 나의 달리기도, 글쓰기도 없었을 것입니다.
늘 고맙습니다. 사.. 사랑한다!!
아래는 비평적 에세이 본문입니다.
삶의 가장 위대한 교훈, 달리기: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한없이 뻗은 안양천을 따라 달리다 보면 다리의 통증과 가쁜 호흡이 쉼 없이 나를 몰아세운다. 어떤 날은 그 고통이 즐거울 때도 있지만, 보통은 괴로울 때가 많다. 그럼에도 내가 달리는 행위를 계속하는 이유는 달리기가 주는 삶의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결승점을 향해 끝까지 달리는 것은 나의 삶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고, 달리며 느낀 감정들과 교훈들은 나의 삶의 고민들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되어준다. 그리고 이는 비단 나만의 감상은 아닌 듯하다. 매년 마라톤에 나가고, 매일 장거리를 달리는 사람들은 달리기가 주는 삶의 교훈을 더욱 강하고, 또렷하게 느끼고 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마도 그러한 사람들 중 가장 문학적인 사람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삶의 이야기이다. 하루키는 소설가로서 30년에 걸쳐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이후에도 자전적 에세이나 회고록을 갈망하는 독자들의 기대에도 회고록을 쓸 생각은 전혀 없다며 일축했다. 그런 그가 내놓은 최초이자 어쩌면 최후의 회고록. 서론에서 그는 이 책이 ‘달리기를 축으로 한 삶의 이야기’ 정도로 읽혔으면 한다고 말한다. 하루키에게 달리기가 주는 삶의 교훈은 무엇인지,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다.”
처음 마라톤 대회를 나갔을 때,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이른 아침 경기장을 가득 매운 사람들의 엄청난 수나 대단한 속도로 치고 나가는 주자들의 뒷모습이 아니었다. 실제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도착점에 도착할 때까지 나에게 닿았던 수많은 응원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몰랐던 사람들이 달리기만 시작하면 서로의 열렬한 응원단이 되기를 자청하는데, 그 이유와 맥락을 알 까닭이 없던 나는 그저 그들의 응원에 밝게 답할 뿐이었다.
하루키는 이러한 나의 의문에 명료한 답변을 내어준다. “대부분의 일반적인 러너는 ‘이번에는 이 정도 시간으로 달리자’라고 미리 개인적 목표를 정해 레이스에 임한다. 그 목표치를 달성하든 그렇지 못하든, 다음 레이스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달성이다. 개인적인 승패는 큰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장거리 달리기는 주위를 달리는 수많은 주자와의 경쟁이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마라톤 대회의 순위는 ‘누가 가장 먼저 들어오냐’ 가 아닌 ‘누가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들어오냐’로 결정지어진다. 달리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으며, 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의 싸움을 티 없이 순수한 목소리로 응원하는 것이었다.
이젠 우리 삶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정말 과거의 자기 자신을 이겨내기 위해 싸우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끝나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진 않은가? 달리기를 하기 이전의 나 또한 먼저 사회에 나가 안정된 삶을 일구는 친구들과 나를 끝없이 비교하며 그들 보다 더 나은 직장,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 또한 그들의 어려움이 있고, 그들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엔 오로지 나 자신과의 싸움에 집중하고자 한다. 플라톤은 “나 자신을 이기는 것이 최고의 승리다"라고 말한다. 지난 달리기의 아쉬움 들을 보완해 더 나은 다음을 기약하는 마라토너처럼, 삶을 사는 우리도 지난날의 우리를 이겨내기 위해, 더 나은 나를 위해, 최고의 승리를 위해 달려야만 한다.
“나에게는 나에게 어울리는 페이스가 있고 시간성이 있다. 그것들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며,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한 것이다.”
첫 번째 반환점을 지날 때였다. 3km쯤 달려온 사람들은 반환점에 이르자 하나 둘 걷기 시작했다. 아마 종아리가 당긴다든가, 전날의 저녁식사가 얹혔거나, 그저 출발점에서의 의지와 열정이 다 식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과거엔 그런 주자들을 보면 ‘대회에 나오는데 이 정도 준비도 하지 못했나?’ 하는 치기 어린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하루키의 재치 있는 비유가 나의 이런 생각을 완전히 바꿔주었다.
이른 아침 찰스 강변을 달리는 자신을 추월했던 하버드 대학의 여학생들을 회상하며 하루키는 말한다. “그러나 만약 그때 내가 긴 포니테일을 갖고 있었다 해도 그것은 그녀들의 포니테일만큼 자랑스럽게 흔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중략)... 그러므로 그녀들에게 뒤에서부터 추월을 당해도 별로 분하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녀들에게는 어울리는 페이스가 있고 시간성이 있다.” 당시 이미 50세를 넘긴 나이의 하루키는 갓 스무 살 된 하버드 대학의 신입생들을 달리기로 이겨낼 수 없음을 알고 있다. 하루키가 자신과 그녀들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했다면, 아마 버겁게 그들을 쫓다가 제풀에 지쳐 페이스를 잃었을 것이다. 타인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나만의 페이스가 있음을 아는 것은 달리기의 중요한 덕목임을 하루키는 알고 있다.
이는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다른 시간에 태어나고, 다른 시간에 죽는다. 또한 각자 주어진 시간을 살다가 죽는다. 출발점과 도착점, 그 거리가 모두 다른 마라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 주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실 각자의 마라톤 대회를 달리는 주자들인데 우린 그들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스스로의 페이스를 잃곤 한다. 내 앞을 달리는 주자를 추월하기 위해 잘 지켜온 나의 호흡을 깨 버리고 만다. 하루키가 스스로의 페이스를 알고 자신만의 달리기를 하듯, 내 삶의 페이스를 알고 나만의 호흡으로 살아가야 한다. 타인과 나는 다른 마라톤을 하고 있음을 이해하고 나만의 달리기를 해 내는 것, 이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덕목임을 알아야만 한다.
오랜 시간 달려오면서 느꼈던 가장 큰 삶의 교훈은, 타인과 나는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하루키 또한 말한다. “생각해 보면 타인과 얼마간이나마 차이가 있는 것이야말로, 사람의 자아를 형성하게 되고, 자립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유지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달려 체득한 나의 교훈, 존경하는 작가이자 마라토너의 설명, 심지어는 ‘타인’이라는 단어의 사전적인 정의에도 불구하고, 타인과 나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년간 1000km 가까이 달려온 나에게도, 매년 1000km를 달리는 하루키에게도,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도 이는 어려운 일이다.
수천 킬로미터를 달린 하루키가 여전히 달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갓 달리기 시작한 나는 알 수 없다. 글로 적혀 있어 내 삶에 적용하기만 하면 될 듯한 교훈들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지, 갓 26살이 된 나로서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래서 나의 달리기를 계속하고자 한다. 나의 삶을 온전히 살아보고자 한다. 달리기가 내게 남길 교훈을 향해, 내게 남겨진 삶의 교훈을 향해, 한없이 뻗은 안양천을 오늘도 달린다.
워드 파일을 그대로 복붙하는데 행간이 왜 이렇게 들쭉날쭉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무튼 대회를 위한 글을 쓰는 건 괴롭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수필이랍시고 적는 글은 보통 그날이나 그 주의 생각을 쏟아내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글을 쓸 때 전혀 힘들지 않고 즐겁습니다. 줄곧 적는 서평도 사실 독후감에 가깝다 보니, 생각의 흐름대로 와다다다 적어내기 때문에 막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대회에 제출할 글을 쓸 때면 책상에 앉기가 좀처럼 힘듭니다. 내 글이 평생을 글쓰기를 해온 교수님들의 앞에, 다른 글쓴이들의 글과 함께 나란히 서 있을 것을 상상하면, 내 마음을 한 조각 꺼내어 내놓는 것 같아 부끄럽고, 더 완벽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드는듯합니다.
대회 공지가 올라온 시점부터 대략 한 달 반 정도를 썼던 것 같은데, 글의 절반은 제출일 바로 전날에 다 적었습니다. 또 달리기의 감정이 몸에서 다 빠져나간 듯한 기분이 들 땐 그 감정을 채우느라 매번 나가 뛰었습니다.
한 달을 쏟은 글 치고 A4용지 2매는 참 짧다는 생각이지만, 그만큼 짠 소금물이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글을 쓰면서만 80km는 넘게 뛰었으니 말 그대로 땀이 섞인 글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뛰러 나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