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제니 Nov 29. 2023

계절 갈무리


해마다 이맘때면 선풍기를 닦아 넣는다. 여름 한 철 애쓴 선풍기는 날개마다 먼지가 쌓여있다. 때때마다 물건을 갈무리하기는 몹시 귀찮다. 이 방, 저 방, 거실 것을 합하여 세 대나 되니 더 그렇다. 남편 보라고 발끝으로 쓱 선풍기를 밀어봐도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일단 공구함을 뒤져 여러 크기의 드라이버를 골라놓고 바닥에 신문지를 깐다. 물티슈도 준비한다. 부품을 하나하나 떼낸다. 분해하며 나온 나사들을 잘 챙겨놓고 날개와 덮개를 욕실로 가져간다. 샤워기로 물을 뿜어내니 먼지가 떨어지며 날개가, 덮개들이 깨끗해진다. 중성세제를 솔에 묻혀 살살 닦아 고집스러운 잔여물들을 제거한다. 물기를 탈탈 털어 신문지에 뒤집어 놓는다.


점심을 먹고 니 그새 물기가 말랐다. 친정아빠를 닮아 나는 조립하는 것을 좋아한다. 마지막 나사를 조이니 남편이 비닐봉지를 갖고 다가온다. 내가 비닐 입구를 벌리고 남편이 선풍기를 들어 비닐 안으로 넣는다. 박스테이프로 밀봉하여 창고로 옮긴다. 힘들지만 마음이 개운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의 먼지도 이렇게 깨끗하게 닦을 수 있다면! 우선 마음 한 구석 원망이 쌓인 서랍을 몽땅 열어 뒤집어 탈탈 털어야겠지. 세찬 물줄기로 켜켜이 쌓인 딱지들을 걷어내야겠지. 텅텅 비워버린 서랍을 착착 접어 납작하게 만들어 더 이상의 원망이 쌓일 자리를 만들지 말아야 하겠지. 스트레스 서랍도, 미움 서랍도 그렇게 갈무리해야겠지.


또 한 계절이 지나간다.

작가의 이전글 부엌에서 반짝반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