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항상 빠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잘해야 한다고 재촉한다. 하지만 나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느린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는다. 느리게 가도 괜찮다고,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어느 오후, 스케치북을 펼쳐 들고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그렸다. 처음엔 가지 하나를 제대로 그리려 애쓰며 선을 그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문득, 나무 자체는 내가 어떻게 그리든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 나무는 그 자리에서 오랜 시간을 견디며 자라왔고, 지금도 자신의 속도로 천천히 자라고 있었다. 내가 조금 서툴게 그린다고 해서 그 나무가 가진 고유한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나의 삶도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스케치북 위에 그린다면, 어쩌면 비뚤어진 선과 지워진 흔적들로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선과 흔적은 나라는 사람의 일부다. 실수하고, 다시 시작하며,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이 내가 가진 유일한 이야기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내가 그린 선들이 모여 나를 이루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림을 그리며 알게 된 것은 모든 선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빠르게 완성된 그림보다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 그린 그림이 내게 더 큰 위안을 준다. 그림을 그릴 때 시간의 흐름은 무의미해지고, 오로지 내가 그리는 그 순간에만 집중하게 된다. 연필을 쥔 손끝에서 마음의 소리가 들려온다. "이대로도 괜찮아."
느리게 살아가는 것은 그림을 그릴 때와 비슷하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조바심이 나고, 다른 사람의 속도와 비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나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매일 조금씩, 내가 가진 에너지만큼의 선을 그리듯이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느린 삶을 연습하고 있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 창밖으로 바라본 하늘, 손끝에서 완성되는 한 줄의 그림. 그 모든 것이 내게는 작은 치유의 순간이다.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도 내 속도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림처럼 삶도 서툴고 엉성한 순간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진짜 나를 이루는 부분이다. 스케치북 위에 남겨진 흔적들이 나만의 이야기가 되듯, 내가 살아온 시간들은 모두 나를 치유하고 채워준다.
느린 삶은 나에게 여유와 치유를 선물한다. 그림을 그릴 때처럼,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천천히 그려 나가는 것. 그것이 내가 나를 치유하는 방법이다. 삶이라는 스케치북 위에 내가 그린 선들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