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개요 : 어떤 SNS는 사람을 도구로 전락시킨다. 좋은 정보 대신 더 많은 비중으로 박탈감을 주고 광고와 숏폼으로 시간을 앗아가는 SNS로부터 서서히 탈출해야겠다.
우리들은 매체로 이어진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는 두 눈이 있다. 그것으로 이 글을 읽고 메시지를 판단한다. 다른 감각으로 알 수 있는 정보는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청각, 촉각 같은 감각이 뛰어나도 시각이 제 기능을 못하면 알 수 없다. 감각하는 일은 우리 몸의 감각기관이라는 매체를 통해 이뤄진다. 정보의 습득을 매체가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한 김에 이 글이 지금 당신을 향해 전달되는 경로도 살펴본다. 내가 평소 품고 있던 생각들이 뉴런을 타고, 손을 타고, 키보드를 타고, 네트워크를 통해 서버로 전송된다. 그리고 또다시 네트워크를 타고, 스마트폰을 타고, 독자의 눈을 타고, 뉴런을 타서 그 사람의 생각이 된다. 생각이 매체와 매체를 거쳐서 전달된다.
공기나 공중에 울리는 키보드 타이핑 소리(소음)도 매체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와 나 사이에서 가림막 역할을 하고 있는 옷이라든지, 음식을 입에 넣기 위해 사용하는 숟가락이라든지. 일일이 나열하면 끝이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도구’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대부분 매체다.
그런데 사람 자체도 매체가 될 수 있다. 매체는 어디까지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이 수단이 된다고 하면 어감이 이상하게 된다. 그런데 전혀 불합리한 말도 아닌 것이, 회사의 경우 고용자 입장에서 봤을 때 노동자는 목적보다 수단에 가까우니까.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서, 이처럼 사람이 수단으로 여겨질 때가 있는데, 어느 날 인스타그램을 열어서 보던 중에 내가 그렇게 취급되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SNS는 사람을 도구로 전락시킬 수도 있겠구나.’
간혹 인스타그램에서 좋은 정보를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높은 확률로 불편한 감정과 피로를 느낀다. 가질 수 없는 물건들과 닿을 수 없는 장소들을, 쉽게 흉내 내지 못하는 능력들을 볼 때 얻는 것은 정보라기보다 박탈감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또 광고와 릴스(숏폼)는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내부자(인스타그램 관계자)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용자들의 시간을 빼앗는 일이야말로 이익 증대라는 성과로 연결되기 곳이기 때문이다.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결국 절이 싫은 중이 떠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글은 인스타그램을 탈출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쓰게 되었다.
생활매체연구라는 다소 거창한 표제를 붙였지만, 어디까지나 내 삶의 변화를 위한 일상적인 글이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지우고 다시 설치하는 일이 없기를……. 인스타그램 탈출 성공을 기원하며!
이 생각은 이달 1일에 했었고, 머리말을 쓰기 전에 짧은 글을 적어서 올렸다. (생활매체연구 (1),「숏폼 탈출」, https://brunch.co.kr/@mokumji/2)
그리고 5일에는 인스타그램을 탈퇴해서 지금은 내 계정을 찾을 수 없다. 계정이 완전히 삭제되려면 한 달이 지나야 한다고 하니 그 시점에는 인스타그램 탈퇴 후기를 써야겠다. 이후에는 생활 속 다양한 매체에 관한 에세이를 계속 쓸 생각이다.
인스타그램을 비판하는 입장이지만, 나 역시도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던 시절에 누군가 내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주기를 바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내가 올린 게시물을 읽는 데 누군가 자신의 시간을 소모했다는 것에 대해 책임을 느낀다. 하나의 방편으로 개요를 적는다. 그것만 읽어도 글을 다 읽을지 말지 독자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그러면서도 이렇게까지 새로운 플랫폼을 찾아 글을 쓰는 것은 끊을 수 없는 허영심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으로 충족했던 허영심 표출을 접을 수 없어서 고민 끝에 브런치에 진입했다. 인스타그램 캡션에 비해 글의 분량에 제한이 없어서 훨씬 좋은 것 같다. 그렇다고 네이버 블로그는 광고글이 넘쳐나서 이런 개인적인 생각을 쓸만한 환경은 못된다고 판단했다. 평소 글을 쓰고 사람들과 글로 연결되는 것을 좋아하는데 브런치가 인스타그램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