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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멋이없는건안해 Jan 26. 2024

스타트업 '대멸종' 시간을 겪고 있다

작년 연말 투자가 빠그라졌다.


불황이었어도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업계 내 압도적인 성장세를 증명하고 있는 유일한 스타트업이었고 또 긍정적으로 논의되고 있던 투자건이 거의 막바지까지 이르렀던 분위기라 연내 투자확정을 예상하고 자금이 들어온다는 전제 하에 내년 상반기 경영계획과 시뮬레이션을 준비했고 그에 따라 채용과 사업도 일부 시작해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예상했던 그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갑작스런 투자실패는 비상경영. 이 시나리오에서 어김없는 1순위는 마케팅 비용 줄이고 마케팅 조직을 축소/폐쇄하는 것. 결국 마케팅을 비롯한 회사의 많은 친구들 구조조정으로까지 이루어졌다. 이런 뻔한 시나리오를 예상했으면서도 마케터라는 리스크한 직업을 버리지 못하는 내 팔자를 탓해야하나?

올해 내 인생 통틀어 최대 Big Flow 대운이 몰아치는 시기가 될거라고 내 사주를 보며 미리 감을 잡고 있긴 했었지만 와우... 이건 정말 예상도 못한 불운의 대운...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나를 믿고 있던 역량 좋은 동료들과 팀원들에게 하루아침에 이별 통보를 하는 것은 나 역시도 1주일 전만 하더라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고 그래서 감정적으로 나를 컨트롤하기도 매일매일이 버거웠다.


이런 상황까지 만든 대표가 밉기도 했고 그래서 이별을 고하는 동료들에게 인간적으로 많이 미안했다. 그렇지만 마냥 울고 있을 수만도, 충분히 아파할 겨를이 없었다. 이 순간을 어떻게든 버티고 턴어라운를 빠르게 만들어서 회사를 다시 살려내야 하는 것도 C레벨의 임무니까 말이다.


몸이 아픈 것도 허락치 않았다. 점심에는 링겔을 맞고 와서도 비타민C 메가도스를 때려가며 해야 할 일을 했다.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하는 것도 불안했고 또 아침에 눈떠서 회사 오는 것도 너무 고역같았다.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한달이 지나갔다.


사주공부가 무슨 의미가 있나? 대운이라고 했는데 사주 다 말쫭 꽝인가? 내가 헛배웠다 싶다가도, 또 한편으론 이거 알면서도 못막는데 뭐하러 배우나? 싶어서 사주 교수님까지도 싫어지고, 글쓰는 것까지 사치로 느껴져서 브런치 연재까지도 한달간 자체 중단했었더랬다.


사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과 지옥 속에 살고 있는 중이다. 매주 생존가능기간 런웨이를 타이트하게 체크하면서 다양한 생존 옵션을 치열하게 검토하고 있다. 그래서 한달간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터지고 버럭버럭 하는 딱 갱년기 같은 증상은 다행히 멈춰졌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와중에도 '성장'을 멈출 수는 없는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오늘도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조직 내 유일한 마케터로 '생존'을 위한 '생계형' 마케팅 과제들을 혼자 외로이 꾸역꾸역 해내고 있다.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내가 쓰고 지출결의도 내가 작성하면서 이게 맞나? 현타가 불쑥불쑥 치밀어오르지만 어떻하겠어. 이 곳에서의 경력을 어려운 시장 상황에 우후죽순 '대멸종' 하는 그저 그런 스타트업으로의 물경력으로 스쳐 지나가게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해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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