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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성 Oct 09. 2023

가위를 들고 내 마음에 들고 싶어 하지

  미용실에 들어가 기다려야 할 때는 난처하다. 미용실에 도착할 때까지 도무지 어떻게 자르고 싶은 건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밖에는 비가 내린다. 비를 자르고 싶다. 긴 비를 짧게 자르고 쓸어 담아 빗자루로 만들고 싶다. 그걸로 다른 비를 쓸면서 거리를 걷는다면 좋겠다.

   미용실에서 간단한 의료 서비스를 했던 때도 있었다. 옛날 일이다. 오래된 이발소 앞에는 원통형 회전 간판이 있다. 그것은 빨강, 하양, 파랑으로 반복되는 각각의 띠를 두르고 허공을 드릴로 뚫는 듯한 모습으로 어지럽게 돌아간다. 각각의 띠는 동맥, 붕대, 정맥을 뜻한다. 자르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잘린 사람도 미용실에 들어올 수 있었다.

  옛날 일을 더 떠올린다. 나는 군에 입대하기 몇 주 전 미리 머리를 자르고 공원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를 만나기로 했는데, 어머니는 아직 오지 않았다. 공원의 수풀이 어둠을 받아 우거져 있었다. 미용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같았다. 목덜미에서 긴 머리카락 한 올이 나올 때면 아직 모든 게 그대로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머니는 나를 보고 놀랐다. 나는 붕대를 감듯 어머니를 안아드렸다. “왜 이렇게 일찍 자른 거니. 왜 그런 거니.” 어머니는 말했다.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는데, 어머니가 내 머리에 손을 얹자, 손의 모양이 더 잘 느껴지는 것 같았다.

  군인들은 서로의 머리를 깎아준다. 머리를 여러 번 깎으면서 어머니에게 거는 전화는 점점 줄어들었다. 오늘은 밥을 먹었어요, 오늘은 낮잠을 잤어요, 같은 말을 하는 게 이상했기 때문이다. 나중엔 휴가 나가서 잠만 잤던 일도 있었다. 어머니는 군인으로 변한 아들에게 익숙해졌다. 전역을 하고 머리를 다시 길렀다.

  머리를 쓰다듬으면 잠이 온다. 어른으로 변한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는 어렸을 때 머리만 쓰다듬으면 금방 잠들었지.” 어머니는 상냥하게 말하고 그건 지금도 그래, 말하는 내가 있다. 친절에 둘러싸인 채 산다는 게 굉장히 놀랍기도 하고 언젠가 사라진다는 걸 생각하면 조금 슬프다.

  빗물이 점령한 거리는 붉은 광선이 내뿜는 기이한 빛을 더 크고 선명하게 만들고 있다. 언젠가 나는 눅눅한 카페에 앉아 있었다. 앞에는 오늘 머리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앉아 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기 어려워 예쁘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말에 영혼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머리를 잘랐다는 말은 틀린 걸까? 역시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해야 맞는 걸까? 내가 그렇게 묻자. 뜻만 통하면 되는 거라고 그 사람은 말해주었다. 과연 그렇구나. 그렇다면 역시 너는 예쁘다, 말하자 그것과 그건 다르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점점 혼란스러웠다. 친절하고 잘 아는 세계로 어서 돌아가고 싶었다. 창밖의 붉은 빛이 푸른 빛으로 바뀌자, 그것이 신호등이라는 것을 알았다.

  머리를 다 자르고 마음에 드시냐고 미용사는 친절하게 물었다. 잘 알기 어려웠지만,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미용사의 손에는 아직 가위가 들려 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기를 나가기 어렵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대화는 끝나지 않는다.

  밖으로 나오자 비는 그쳤다. 구급차 한 대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갔다. 아직 우산을 들고 있는 군인들이 보였다. 우산을 쓰지 않고 걸어가는 나를 보고 군인들은 우산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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