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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성 Oct 13. 2023

죽은 개는 나무가 되었다 나무가 멀자 플라스틱이 되었다

  지갑에 있는 동물 등록증에 의하면 알리는 새카맣고 덩치가 큰 래브라도 리트리버였다. 알리는 9살에 죽었다. 단단하고 따뜻한 몸체를 꼭 안으면 얼굴에 검은 털이 잔뜩 붙어 어푸푸, 하게 되는 개였다. 용변은 꼭 같은 자리에서 봤으며 겨울엔 귤을 먹고 여름엔 수박을 먹는 개였다. 알리는 산책할 때 풀을 보면 지나치지 않고 가서 자기 얼굴을 스쳤다. 특별히 그런 행동을 연구해 본 적은 없다. 그 애는 특별한 걸 원하지 않았고 그래서 특별했다. 나는 어머니 몰래 알리를 침대에 들였다. 자다 보니 얘가 올라와 있었다고 둘러댔지만, 사실 내가 좋아서 그런 것이다. 자정 넘어 알리는 살짝 열린 방문을 코로 밀며 들어왔다. 나는 이불을 열고 침대를 두드려 살집 좋은 알리의 몸이 펄쩍 뛰어 침대 위에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 알리는 코를 사람보다 크게 골았다.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워 사람처럼 잤다. 미처 사람이 되지 못한 앞발이 가슴 앞쪽에 꺾여 있었다.

  그런 알리는 죽었고 애견 화장 서비스 업체에서 보낸 차량이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 끌어안고 있었지만, 역시 죽었다. 그 애를 들어 올려 품에 안고 계단을 내려갈 때 긴 혓바닥이 얼굴을 스쳤다. 안녕이라고 말한 걸까.

  엄마와 나는 고민이었다. 나무 상자에 담긴 알리를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슬픔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산을 생각했다. 산의 정령이라도 되지 않을까? 엄마는 무섭다고 했는데, 그렇게 된 알리가 무섭다는 건지 알리가 무서워한다는 건지 몰랐다. 엄마는 공원을 생각했다. 알리가 평생 갔던 그 공원. 하지만 얼핏 알기로 그게 불법이라서……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미 불법을 저지를 생각을 굳혔으니, 욕심과 보상 심리는 끝이 없다. 

  다이소에 들어가 두 종류나 되는 모종삽을 샀다. 어스름한 거리를 걸어 집에 오면서 괜히 두리번거렸다. 범행에는 준비의 긴장감과 실행의 쾌감이 있다고 하지만 준비란 일종의 실행이라서 뜻밖에 기분이 좋았다.

  더 기다릴 것 없이 모종삽을 산 그날 하기로 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알리를 데리고 나오라고 했는데, 말이 참 이상했다. 날은 어둡지만, 완전히 해가 가문 것은 아닌 푸른빛이었다. 공원은 넓고 나무는 많았지만, 사실 아주 오래전에 생각해 둔 곳이 있었다. 그땐 살아있는 알리가 내 옆에서 걷고 있었는데,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므로 아무도 몰랐다. 나는 그때부터 이 범행을 계획해 온 것이다. 그러니 굳이 처음 산을 말한 것도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영악하고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를 골랐는데, 나무가 좋기보다 자리가 좋았다. 나무 아래를 조심스럽게 파면서 주변을 살폈다. 산책하는 사람이 적었다. 사람이 오면 파기를 멈추고 멀뚱히 서 있었다. 나는 초보 범죄자나 다름이 없다. 모종삽 한 자루가 부러졌다. 두 자루를 사서 다행이었다. 뾰족한 것으로 땅을 파고 넓적한 다른 한 자루로 흙을 퍼 올릴 계획이었는데, 뾰족한 삽이 돌이나 단단한 뿌리에 부딪힌 건지 쉽게 부러지고 말았다. 플라스틱 말고 쇠로 살 걸…… 공원의 흙을 만만하게 본 것이다. 넓적한 삽으로 땅을 파고 있었는데, 엄마가 도착했다. 땅은 그럭저럭 깊게 팠지만, 뿌리 가까이 알리를 뿌려 나무에 흡수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서 어느 정도 뿌리를 드러내는 데 공을 들였다. 알리를 넣고 흙을 닫았다. 인사를 하며 나무를 만졌더니 “아직은 저 밑에 있지.” 엄마가 말했다. 그럼 다음 해엔 어디 있지? 그다음 해엔, 그다음 해엔 여기 없을 수도 있을까.

  자주 알리를 보러 간다. 이제 흙보다 나무를 만지는 일이 더 많다. 요즘 통 공원에 가지 않았네, 생각이 드는 날엔 지갑에서 동물 등록증을 꺼내 본다. 그러면 얼굴이 가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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