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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성 Jun 29. 2024

법과 질서

  상자를 옮겼어. 그게 내 일이었지. 허리보다 다리를 써야 안 다쳐. 땀이 자꾸 눈으로 들어가서 따가웠어. 관리자가 말했지. “곤란해요. 이대로는 정말 곤란해요.” 원래 있던 자리로 다시 상자를 옮겼어. 다리가 아프면 허리까지 쓰게 되고, 허리가 아프면 자세가 나빠져. 더는 상자를 조심히 옮길 수 없었지. 누가 잘못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억울한 건 어쩔 수 없었어. 다행인 건 누구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다행이 아닌 건 우리가 혼자 잠들곤 한다는 사실. 상자를 옮기고 상자에 기대 잠들고 싶었어. 나를 십육 등분해서 상자에 넣고 영영 흩어지고 싶었어. 그때 상자 옮기는 일을 줬던 사람이 찾아왔어. 왜 상자를 옮기지 않았냐는 거야. 나는 있었던 일을 말했어. 내 모습은 젖어서 찢어진 골판지 같았지. 나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을 훔치며 앞으로 어떡하면 좋을지 물었어. 상자를 무조건 옮겨야 했거든. 우리 아무래도 상자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상자를 받기 전으로 돌아가면 좋을 텐데. 그러면 정말 좋을 텐데. 상자는 쌓아놓고 보면 다시 거대한 상자가 되더라고. 저렇게 거대한 상자엔 무엇이 다 들었을까. 거대한 상자는 굴리려고 애를 쓰면 무너지려 하고.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상자를 여기에 조금, 저기에 조금 나눠서 옮겼어. 어디에 뭐가 있는지, 뭘 하려고 했던 건지 이제는 정말 모르겠더라고.

  일이 끝나면 거리로 나왔어. 거리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었지. 사람들은 뒤로 걷고 자동차는 후진했어.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은 거리에 쓰레기를 놓고 가고 있었어. 거리의 반대편으로 각자 걸어가던 연인은 다시 만나 서로의 눈동자에 눈물을 쓸어 넣고 있었어. 비둘기가 토를 하고 취객이 토를 먹고 있었지. 너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아마 오물거리는 입에서 빵을 뱉어 다시 한 조각으로 만들고 있을 것 같아.

  어딘가에선 사람들이 점점 구겨지는 얼굴을 하고 걸어오고 있겠지. 사람들이 모여서 무덤을 하나 파니까 사람이 살아나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겠지. 그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무덤으로 마중을 나오고 있을 거야.

  가게 주인들은 돈을 나눠주고 옷이나 과일을 받지. 하지만 병원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두 다리가 얇아지고, 사람들은 다시 쿨럭쿨럭 기침을 하네. 헹가레 받고 방금 전역한 군인은 다시 군부대로 돌아가.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어. 아이들은 점점 작아지고 배운 것을 잃어버렸지.

  어떤 사람은 말하다가 자기 마음을 깨닫고 미안해, 하고 끝을 맺었지. 다시 미안해, 하고 시작한 그 말은 어쩐지 변명처럼 들리는 거 있지.

  나는 집에 갔어. 욕실에서 몸을 더럽히고, 먹은 것을 전부 토하는 동안 이사 갔던 사람들이 돌아왔어. 나를 아주 불편해했지. 나는 손톱을 하나씩 주워들어 손끝에 붙이고 있었어. 조심스럽게 그랬어.

  이미 퇴근한 곳으로 돌아간 나는 상자를 있던 곳으로 돌려보냈어. 그때 알았지. 허리는 어제도 오늘도 아팠구나.

  무슨 소리가 나서 깨어났어. 진짜 상자 옆에서 잠든 거였어. 잠깐 고민하다가 상자를 옮겼어. 관리자가 내게 와서 말했지. “곤란해요. 이대로는 정말 곤란해요.” 나는 알겠다고 말하고 다시 상자를 옮겼어. 나는 거의 곤죽이 되었어. 거리에는 헤어진 연인들이 울고 있었지. 그게 아름다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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