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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성 Jun 27. 2024

모두 자기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면서

  눈에 접착제가 들어갔다. 너의 손을 잡고 병원에 갔다. 병원 로비에 앉은 너는 접착제 뒷면을 읽었다. “어린이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해 주세요. 눈에 들어가면 전문의와 상담하세요.” 네 목소리가 너무 태평했다. 이러다 영영 눈을 뜰 수 없는 거 아냐?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에 도달했을 때.

  “병원비 많이 안 나오겠지?” 네가 말했다.

  너는 여전히 태평하게 말했지만 어쩐지 목소리는 멀리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 눈의 고장은 안 보이고, 잠을 깨워줄 서릿빛도 보이지 않는다. 의자의 무뚝뚝함과 로비에 난립하는 소란스러움만 계속 들렸다.

  가난이, 무식함이 싫었다. 그걸 들고 싸울 수는 없을까. 우리는 그것을 하나씩 들고 밤새 싸우기로 했다. 넥타이 맨 사람들이 우리의 적이야? “넥타이는 그냥 예쁘게 묶은 끈이야.” 아침이 찾아오자 우리는 춥고 졸려서 누웠다. 가난과 무식함에 관련된 일은 대부분 낮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몰랐다. 우리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고 있었다. 얇은 이불 아래로 우리의 입김이 흩어졌다. 이불 바깥에서 살아있는 거 다 압니다. 누가 말한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죽은 척한 게 아니었다. 우리는 햇살에 비친 이불의 자수를 손가락으로 따라가며 길을 잃고 있었다.

  감은 눈 안쪽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붕에서는 새가 울었다. 알에서 윤이 날 나겠구나, 여기는 숲속의 통나무집이고, 벽난로 앞에선 따뜻한 국물이 끓고 있었다. 뚜껑이 들썩거리면서 흐릿한 김을 내뿜고 있었다. 여기는 좋다. 집안에 모든 물건 위에는 옅은 먼지가 내렸다. 느리게 실을 뽑는 거미가 한 구석에 있었다. 그러다 창밖으로 비를 맞고 걸어오는 너를 보았다.

  “그냥 들어, 맞은편에 우리처럼 손을 꼭 잡고 있는 노부부가 있어 소박해서 정말 보기 좋아.”

  네가 나에게 해준 그 말이 원내의 소란과 섞이며 멀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비명을 지른다. 부모들은 화를 내며 이름을 크게 부르고 있었고, 나는 너의 손을 더듬더듬 찾고 있었다.

  노부부가 부스럭대며 일어설 때 “먼저 가서 미안해요.”하고 말했다. 나는 너를 보고 무엇이 다 미안한 걸까 물었다. 너는 모른다고 했다.

  감은 눈 아래엔 점점 더 큰 비다. 퍼붓는 비가 지붕을 때리자, 알들이 지붕을 굴렀다. 멀리서 열차의 빛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식탁이 흔들리자, 그릇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너는 김이 서린 창문 앞에서 손가락을 대고 무언가 적고 있었다.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해 주세요. 눈에 들어가면 상담하세요.”

  뭐해? 나는 너에게 그렇게 물었다. 너는 “너처럼 눈을 감고 있어.”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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