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산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해성 Jun 27. 2024

투 머치 모스키토 인 디 에어

  산에 올랐습니다. 혼자 올랐습니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랬습니다. 잠시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갑니다. 슬슬 어두워지고 있었는데,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괜찮은 걸까. 괜찮을 거야. 이건 한국 어디에나 있는 뒷산일 뿐인걸. 이쪽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서 긴장이 되었습니다. 외국인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무튼 한국의 산을 열심히 오르는 외국인들을 보니 등산은 국제적인 취미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쪽 리그는 꽤 복잡한 룰이 있습니다. 제가 차근히 설명하겠습니다. 산이 점점 어두워져요. 땀에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습니다. 갈림길 앞에는 친절하게 표지판이 있군요. 다행입니다. 룰은 이렇습니다. 산을 오르면 됩니다. 준비운동을 하면 좋습니다. 간단한 간식과 물을 챙겨가는 것도 좋습니다. 쓰레기는 아무 데나 버리지 말고 꼭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산불을 내지 않도록 조심하고요. 허가 없이 임산물을 채취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빠요. 아주 나빠요. 산은 주인이 다 있습니다. 등산로를 벗어나지 않도록 합니다. 과도한 애정행각이나…….

  여기는 새가 울지 않네요. 이상합니다. 그것은 아주 이상합니다. 평소 제가 오르는 등산로엔 새가 아주 많거든요. 새가 울면 기분이 좋거든요. 새가 울지 않으면…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어둡기 때문일 겁니다. 여긴 아주 조용하네요. 울창한 나무 사이로 빛이 들어오지 못하네요. 이쪽 등산로는 길게 이어져 있네요. 평소보다 더 걸어 온 것 같은데 진입로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건 저도 처음이에요. 어디를 봐도 처음 보는 풍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걸음이 빨라집니다.

  모기가 자꾸 달라붙습니다. 산에 사는 모기는 크기도 크고 물리면 아픕니다. 검은 모기가 잔뜩 모이니까 커다란 호랑거미만큼 무섭네요. 그것은 거의 사람의 형태를 이룰 만큼 모여서 길을 막고 있습니다. 저는 길에 멈추어 섭니다. 제가 흘리는 땀이 모기들을 더 불러 모을 텐데, 그런 걱정이 자꾸 듭니다. 산에 사는 모기가 여기 다 모인 걸까요? 이것이 일부에 불과하다면 산은 정말 끔찍한 곳이군요! 다시는 여름 산을 찾지 않을 겁니다. 겨울에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지정된 경로를 벗어납니다. 낙엽이 쌓인 나무 사이로 걷습니다. 실은 약간 달리고 있습니다. 멈추는 시간만큼 나무는 검게 물들고 검게 변하는 시간만큼 보이는 풍경은 점점 좁아집니다. 완전히 길을 잃고 마는 걸까요? 저기 보이는 건 무덤인가요? 그 아래엔 산의 원래 주인이 누워있나요? 이제는 어떤 것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났을 뿐인데, 인간의 흔적이 사라집니다. 아아, 이제 딱정벌레를 먹고 낙엽에 고인 이슬을 마시며 살 수밖에 없어. 이대로는 혈거인이 될 수밖에 없잖아.

  하지만 외국 어딘가엔 아직 소수의 혈거인이 남아 있다던데.

  진입로가 나왔네요. 오늘 어떠셨나요? 등산이란 어쩐지 정신 수양과 닮아있습니다. 삶의 상승과 하강의 압축된 은유랄까? 너무 복잡한 룰에 기죽지 마세요.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산을 오르는 것입니다. 이쪽으로 나오니 새로운 곳이 보이네요. 외국인이 많이 산다는 그 동네입니다. 빈 물병을 들고 걷는 사람들과 연인들, 어린아이가 많이 보입니다. 저도 집에 가서 물을 좀 마시고 싶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울타리를 넘지 못하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