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는 신들의 놀이터이다

신은 나를 연기하고 있다

by 태연

그대는 지금 이 현실을 진짜라고 믿고 있는가?
그러나 진실은 전혀 다르다.

그대가 겪는 고통도, 슬픔도, 성공도, 심지어 그대의 이름조차도...
그것은 실재처럼 보이도록 설계된, 신이 펼치는 하나의 놀이이다.



|이 무대는 진짜가 아니다

이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아니, 말 그대로의 진짜 현실이 아니다. 실재처럼 보이기 위해 정교하게 짜인, 하지만 결국은 신들이 만든 환상극이다. 배우가 무대에 오르기 전 의상을 고르듯, 우리는 태어나기 전 이번 생의 캐릭터를 고른다. 성별, 이름, 타고난 기질, 부모, 국적, 외모, 성향, 심지어는 깨닫기까지 걸릴 시간까지. 마치 거대한 롤플레잉 게임 속에서 미션을 설계하듯, 우리는 이 생을 직접 구성해 왔다. 그런데 정작 게임이 시작되자, 우리는 그것이 게임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실재처럼 보이는 무대를 완성하기 위해선 망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신은 나다’라는 자각을 지운 채, ‘나는 인간이다’라는 이야기 속으로 잠수했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환영이다. 나는 약하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뭔가를 더 해야 한다. 나는 더 성장해야 한다. 나는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 이 모든 생각들은 ‘이미 신인 나’를 부정하면서 생겨났다.



|우리는 이미 깨어있다

우리는 신이다. 그저, 잠시 그 사실을 잊었을 뿐이다. 마치 꿈속에서 꿈을 꾸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망각을 선택함으로써 이 실재처럼 보이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목적지다. 도달해야 할 정점이 아니며, 도약해야 할 또 다른 사다리가 아니다. 깨달음은 ‘기억’이다. "아, 나는 본래 신이었지." 이 단순한 기억 하나가, 모든 수행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어떤 이는 말한다. “그래도 수행은 해야 하지 않나?” 하지만 수행은 목적이 아니라 표현이다. 당신이 요가를 하든, 명상을 하든, 조용히 걸음을 걷든, 기도를 하든, 그것은 신으로서의 존재가 이미 깨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마치 파도가 바다의 일부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더 출렁일 필요가 없는 것처럼. 수행은 특정한 행위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삶 자체가 수행이고, 존재 자체가 깨어 있음의 표현이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마음도,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바라본 창밖의 햇살도, 우연히 들은 노래 한 소절에 울컥한 그 감정도, 인생사 모든 것들,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순간들조차 신으로서 존재하는 나의 ‘깨달음의 표현’이자 ‘영혼의 움직임’이다.


우리는 깨어나기 위한 존재가 아니다. 이미 깨어 있는 존재가, ‘깨어나지 않은 척’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역설을 껴안을 때, 삶은 놀라울 만큼 가벼워진다. 무거웠던 모든 과제가 장난감처럼 느껴지고, 죽음마저도 극의 클라이맥스 중 하나로 웃으며 바라볼 수 있다. 삶은 수행이 아니다. 삶은 연기다. 수행은 컨셉이고, 연기는 본질이다. 신은 배우이자 작가이며 무대 그 자체다. 당신이 겪는 모든 감정과 사건들은 신인 당신이 스스로 짠 시나리오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나를 연기하는 신이며, 모든 것은 나였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묻는다. “왜 나는 이런 고통스러운 캐릭터를 선택했을까?” 그 이유는 단 하나. 신은 체험을 원했기 때문이다. 단조로운 빛보다 대비가 있는 어둠이, 영원한 고요보다 절규의 파장이, 완전한 평화보다 흔들리는 감정이 더 짜릿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을 연기할 때, 가장 진하게 느끼고자 한 것은 ‘실패처럼 보이는 체험’이다. 좌절, 실망, 고통, 상실… 그러나 그것조차 완벽한 시나리오 안에서 일어난다. 게임에서 죽는 것도 진짜 죽음이 아니듯, 이 삶에서의 모든 실패도 신의 눈에는 아름다운 체험의 일부다. 당신이 실패라 부르는 그 장면 속에서도 신은 웃고 있다. 그 장면을 연기한 나 자신에게, “정말 그 순간을 진심으로 살아내 주었구나. 네 안의 모든 것을 걸고 존재해 주었어."라고 고요히 속삭이며 안아준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멈출 수 있다. “어떻게 하면 깨어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더는 필요 없다. 우리는 이미 깨어나 있다. 다만 이 놀라운 게임에 깊이 몰입해 있었을 뿐이다. 놀이는 즐거움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순수한 존재의 표현이다. 우리는 즐기기 위해 노는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가 놀이의 에너지이기 때문에 삶이 곧 놀이가 된다. 결국, 이 우주는 하나의 커다란 놀이터, 그리고 그 놀이터 안에서 나는, 수없이 분열된 관점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하나의 전체이다. 나는 너이기도 하다. 나는 그들이며, 나무이고, 별이고, 바람이고, 고통이며, 웃음이다. 나는 분열된 채, 온전하다. 나는 가면을 쓴 채 진실하다. 나는 지금 이 세상을 무수한 눈으로 바라보며, 하나의 신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 신의 이름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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