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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Mar 02. 2024

검은 사제들 - 결국은 휴먼 드라마







"기도 좀 해 주고 심리치료하면 되는거 아닌가요?"


악마에 시달리는 소녀 영신(박소담)에게 구마의식을 행해야 한다는 김신부(김윤석)의 간청을 주교와 수도원장은 가볍게 듣는다. 구마라고? 21세기 IT강국 한국에서? 비단 주교가 아닌 관객의 입장에서도 구마의식은 제정신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로마 교황청에 직보를 해버리는 김신부는 결코 물러나지 않는 꼴통으로 소문난 사람이다. 그래서 더욱 신뢰를 할 수 없기에 그저 비공식적으로 구마의식을 허용한다.  그를 돕는 부제로 86년 호랑이띠인 최준호(강동원)가 선정된다. 허구한날 땡땡이를 치고 소맥을 능란하게 제조하는 그는 날라리 부제다.





장재현 감독의 <파묘>를 보고난 후 <검은 사제들>을 역주행한 결과 역시 데뷔작에 담긴 감독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2015년 개봉당시 JTBC뉴스에 나온 강동원의 인터뷰 덕분인지 544만 관객을 동원하며 공전의 히트를 쳤다. 한국에선 보기드문 오컬트 장르, 엑소시즘이 동원되는데 꽤나 치밀하고 구마의 정석과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라틴어 또는 중국어와 독일어를 섞어가며 기도와 축사를 하는 강동원과 김윤석의 열연은 수준급이다.




학장(김의성)은 최부제에게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한다. 물론 돕지도 말고 또라이 김신부의 행각을 비디오로 찍어오라고 명한다. 그러면서 미신과 불합리를 타파하며 일궈낸 현대 카톨릭의 자랑스런 이미지를 강조한다.


"인간의 빛나는 이성과 지성으로..."




하지만 영선의 귀신들림은 실존이었다. 고통받는 소녀를 숙주삼은 악령의 정체를 밝혀야만 한다. 물론 종교체계를 탄탄하게 구축한 현대 기독교에서 이런 현상학적인 사건은 가십이 되고 만다. 반대로 제대로 학습되지 않은 기도원에서의 구마행위는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그래서 구마는 교황청에서도 조심스럽게 다룬다. 단순 정신이상이나 발작과 다르게 나타나는 표징이 있어야만 한다.


이 영화의 원조격인 <엑소시스트>의 그 심장을 쥐어짜는 공포. 그걸 기대하면서 온 관객이라면 실망감이 크고 정서적으로 종교적으로 이 과정에 대한 납득이 안되는 분들이라면 흥미롭지 못할 것이다. 더욱이 라틴어가 많이 등장하는 엑소시즘이라면 낯설기만 하리라.




이 작품에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그래서 개연성의 창조라고 할 수 있다. 이성과 지성이 아닌 영적인 세계를 어떻게 현실속에 이식하느냐가 이 드라마의 핵심이다. 그건 <엑소시스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백약이 무효한 상황은 1973년 전설적인 작품에서 이미 시연된 바 있다. 그렇다면 한국판 엑소시스트인 <검은 사제들>에서 눈여겨 볼 점은 무엇일까.


김윤석은 강동원(의 깊은 죄책감)을 초면에 예의없이 훅 치고 들어온다. 어릴적 여동생이 개에 물려 사망한 사건. 그때 비겁하게 도망갔던 오빠는 동생의 천국행을 위해 신부가 되었다. 하지만 맞지 않는 길이라 늘 중심에 서지 못했던 것. 그런데 김윤석은 별거 아니라는 듯 툭 내뱉는다. "그런 사연은 다들 갖고 있어..."


본격적으로 구마를 시작하면서는 리얼리티를 극대화하는 대사들이 좋다.


"구마는 결국 기싸움이야. 우린 용역깡패다. 영신이 몸에 알박기한 놈을 쫓아내는 거야."


"진짜 시작할거야? 평생 악몽에 시달리고 술없이는 잠도 못 잘텐데?"


"넌 이제 선을 넘었어. 끝까지 가야 한다."


"악마는 왜 숨어있냐고? 정체가 드러나면 신을 증명하는 게 되니까!"


장재현 감독은 한 소녀의 몸에 들어온 악마가 왜 한국에 왔는지를 설득력있게 전달한다. 전쟁과 재난의 중심, 인간의 고통과 참사 가운데 악이 있다고. 구조적인 악, 개인적인 악을 섭렵한다. 그렇다면 악의 실체가 어렴풋이 드러나지 않을까.


게다가 구마의식이 이뤄지는 곳은 명동이다. 여전히 명동성당 지하에서는 노동운동을 돕는 신부들의 노력이 진행되고 거리에는 전경이 서 있다. 1987년 이 곳에서 악에 대항하는 싸움이 벌어지지 않았는가. 강동원이 <1987>의 주연이 된 것도 우연이 아닌 듯 싶었다.


그래서 나는 <검은 사제들>을 잘 만든 휴먼드라마라고 정의했다. 늘 비겁하게 도망갔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았던 사람들, 연약해서 다양한 죄를 저질렀던 이들을 참소하는 악마의 세력들에 굴하지 않고 인간이 신의 모상(image)으로 창조된 소중한 존재라는 걸 깨닫게 하는 작품이란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흙을 뜻하는 Humus라는 라틴어에서 Human이라는 단어가 생성되었듯이 인간에게서 활력과 긍정을 빼면 우리의 존재는 아무것도 아닌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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