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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Nov 10. 2024

지옥 2 - 부활마저 싱거워졌다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2>는 전편과 달리 또다른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새진리회의 정진수 의장은 이미 20년전 고지를 받았습니다. 즉, 그들이 말하는 죄인인 셈이죠. 그래서 잠적하였고 2대 교주인 김정칠을 세웠으나 카리스마없는 사기꾼이라는 인식때문에 교세가 급감합니다. 그에 비해 꾸준히 죄에 대한 응징과 정화를 강조하는 '화살촉'의 교세는 확장되어갑니다. 그들은 시연하는 순간 그 지옥불에 집단으로 몸을 던져 순교(?)를 자청합니다. 지원(문근영)도 화살촉 교리에 빠져 남편을 등지는데 남편의 말이 가슴을 칩니다. "너같이 착한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래"


하지만 지원이 말하는 죄는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라고 일갈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못 막는 게 잘못된 신념입니다. 수많은 사이비종교에 빠진 사람들이 그런 케이스죠. 그러면 왜 이런 일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것일까요?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것이 윤리입니다. 우리는 어릴때부터 도덕을 배웠고 국민윤리, 생활윤리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윤리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윤리는 화석화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짜윤리가 등장하면서 세력을 키웁니다. 거기에 신비로운 경험까지 덧입혀지면 종교로서의 완성이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지옥>에서는 고지라는 과정으로 지옥괴물이 사람을 태워없애는 기적을 시연했습니다. 그런 초자연적 현상을 보고 사람들은 정말 회개할까요? 아니 참된 회개는 무엇일까요?


<지옥2>에서는 심지어 부활사건까지 일어납니다. 고지받고 불타 죽은 정진수가 다시 살아옵니다. 한 명이 아닙니다. 박정자도 살아 돌아옵니다. 두 사람이 다른 건 현실 인식의 차이입니다. 정진수는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지만 박정자는 '사랑하는 두 아들의 엄마'라는 사실을 수많은 평행지옥에서도 기억해 냈습니다.


그런 부활을 목도해도 사람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초자연적 사건을 통해 교세가 강해지는 걸 통제하면서 권력을 유지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죠. 흑과 백, 어느 편에서 서지 않는 전형적인 줄타기 인생. 살면서 이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잘못을 뻔히 보고도 잘못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라는 건 오직 본인들의 영달이었습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분장을 떠올리게 하는 화살촉의 무리들도 좀 지나칩니다. 인간의 손으로 죄를 처단한다는 의분은 이해하겠지만 그들의 진정한 목적은 그 처단과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도파민을 얻기 위함인 듯 합니다. 정의라는 미명하에 매일같이 사람들을 공격하는 것 또한 지나침이 없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지옥2>에서는 지옥불을 거쳐온 부활인들까지 등장하지만 그것조차 싱겁게 느껴집니다. 중병에 걸린 세상은 더 이상 신비함만으로는 구원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사실 드라마에서 펼쳐지는 지옥은 천국에 대한 거울이라고 생각합니다. 천국을 강조해도 세상이 달라지지 않으니 강도높은 지옥을 보여주지만 인간의 고집은 더 단단해졌습니다. 소도도 화살촉도 새진리회도 아닌 '스스로에 대한 자각과 돌이킴'이야 말로 지옥같은 세상에서 제대로 버텨나갈 수 있는 덕목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니 남을 구원하려고 광장에서 떠들기 보다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좋은 책을 한 권 읽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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