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
한번 소외를 경험한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는 사람들로부터 받아들여지기에 부족하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끊임없이 자신이 부족한 이유를 찾으며 밑 빠진 독을 채우려 한다. 또한 그로부터 생겨난 배척과 소외에 대한 깊은 두려움이 더 깊은 고립과 단절을 추구하게 만든다. 요즘은 미디어를 통해 자신이 가진 조건을 남들이 가진 조건과 비교하며, 개인이 가진 존재에 대한 열등감이 증폭되기 쉽다. 그래서 점점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타인과의 연결을 두려워하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다. 존재에 대한 왜곡된 자아상은 계속해서 부족하다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 ‘해야 한다’ 는 압박감으로 사람을 괴롭힌다. 그러다 과부하가 와서 번아웃이나 무기력이 온다. 현실은 궁지에 몰린다. ‘해야 하는’ 건 많은데 ‘하고 싶은’ 건 하나도 없기에 아무것도 못하겠고 아무것도 하기 싫게 된다. 또 자신에 대한 열등감으로부터 벗어나기는커녕 자기혐오가 더욱 심해지고는 한다.
뭐라도 해야 된다는 강박감에 다른 일을 찾아 하다가도 얼마 못 가 무너지고 만다. 부족하다는 듯한 믿음은 절벽 끝에 서 있음에도 한 걸음 내딛으려는 행동으로 발현된다. 결국 정신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엉망이 되어 있지만 그런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늪에 빠진 듯한 상태가 된다.
이들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이 간절히 필요하다. 본질적으로 사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영구적인 힘은 사랑밖에 없다. 열등감으로부터 비롯된 동력은 오래 가지 못하며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받아들여질 때 사람은 자신이 사랑받기에 충분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럴 때 가치에 대한 결핍감으로부터 해방된다. 결핍이 충족될 때, 남들의 기대를 맞추기 위한 일이 아닌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을 위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받아들여진다는 건 본질적으로 마음이 받아들여진다는 의미다. 하지만 모두들 자신만의 문제들로 미쳐 돌아버릴 지경에 이르러 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해를 바란다면 더욱 큰 상처만 돌려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자생 능력을 키워야 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사랑이 너무 낯설고 이질적인 것으로 다가온다. 사랑받는다는 게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사랑 비스무리한 쾌락과 집착, 우월감 등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은 만족할 수 없는 것에 만족할 수 없다. 사랑을 향한 갈구는 ‘조건 없는 사랑’ 에 달할 때까지 멈출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에 대한 대책이 바로 치유의 글쓰기다. 백지는 조건 없는 사랑의 장이다. 그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는다. 추론하거나 분석하지도 않는다. 뒷말을 덧붙이지도 않는다. 그저 무슨 말을 해도 묵묵히 들어주며 곁을 지킨다. 그로부터 우리는 진정한 사랑이 뭔지 배울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어린 아이가 되어 털어놓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엄마한테 이르듯 철 없고, 비합리적인 투정과 원망을 늘어놓을 때 사랑받는다는 감각을 되찾게 된다. 사랑이 물밀듯 밀려 오기 시작한다.
치유의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감정을 충분히 해소하고 나면 이성을 되찾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되찾게 된다. 또 스스로 사랑을 충족하고 나면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자유로워지며 자신을 표현할 용기를 지니게 된다. 부족한 사랑을 채우려 자신을 속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때 관계에서의 단절감 또한 해결된다. 그동안은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주어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돌려받았지만, 이제는 내면에서 우러나온 사랑을 주어 사랑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