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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오톱 Sep 26. 2023

대학원생 A씨 #2

운동하는 A씨


A는 며칠 뒤부터 옆 반(이과반)으로 넘어갔다. 어떻게 된 일인고 하니, 원래는 문과로 전학 신청을 했으나 이과로 변경했다고 한다. 나는 내 예상에 힘을 싣는 상황에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나와 친해질 일은 없겠구나. 역시 그럼 그렇지. 나는 매력적인 특성을 가진 학생들은 나를 안 좋아한다는 생각을 더욱더 공고히 해나갔다.


A는 학교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체육 특기생이었기 때문이다. 왜 다리가 길었는지 알 것 같았다. A는 오전에는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점심도 먹지 않고 바로 운동을 하러 갔다. 나중에 알고보니 빠진만큼 무단결석 처리가 된다고 했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시간이 없었다. 출석에 흠 하나 없고, 공부에 매달렸던 나와는 정반대였다. A와 나 사이에는 사소한 공통점마저도 없었다.  




A와 나 사이에 뭔가 생기기 시작했던 때는 한참 뒤의 일이었다. 가을, 학생들이 시험으로 바빴던 때였다. 당연하지만 그날도 어김없이 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이 돌아왔다. 앉아서 숙제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웬 그림자가 내 책 위에 드리워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A가 나를 보고 있었다. 손에는 중국어 교과서를 들고 있었다.


[혹시 중국어 시험 범위 좀 알려줄 수 있어? 내가 수업을 못 들어서...]


사실 나는 이런 부탁들에 익숙했다. 펜 좀 빌려줘, 오늘 숙제가 뭐야, 숙제 좀 보여줘, 시험범위 뭐야 등등. 반에서 웬만큼 공부를 한다면, 반장이라면 이런 부탁들은 기본적으로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 대한 대가는 없다. 합리화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도움에 대해 보상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런 사소한 부탁들은 별로 어렵지도 않았고 내가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부탁이었지만, 나는 A가 왜 나한테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인지 의아했다. 같은 반도 아닌데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접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중국어 선생님께서 시험범위를 구체적으로 페이지까지 알려주셨기 때문에 나는 들은 그대로 A에게 알려주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왕 알려주는 김에 꼼꼼히, 하나하나 짚어가며 알려주었다. A는 고맙다고 말하고는 자신의 반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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